日 충격 소녀살인사건

단홍비 작성일 12.04.25 11: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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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살해 암매장 범인들의 사건 재연 현장

 

지난 18일 또래 여자 친구를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뒤 사체를 유기했다가 암매장한 청소년들이 구속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속된 이들은 17~19세 남자 4명, 여자 5명으로 7명이 전과를 갖고 있었으며 남매 2쌍과 커플 2쌍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 친구 A(18세)가 범행이 벌어진 집에 놀러온 후, 험담을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 등으로 마구 때렸다. 때리는 사이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또 계속 폭행했다고 한다. 폭행에 가담한 또래 중에는 임신부와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산모도 있었다고 한다. 폭행 당하던 도중에 놀러온 다른 여자 친구에게 숨진 A가 “죽을 것 같아, 신고 좀 해 줘”라고 문자를 보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A는 사망했다.


비정상적인 폭행도 그렇지만 A가 사망한 후 청테이프로 입을 막고 옷장에 시신을 하루 이상 보관하고 암매장하는 등, 믿기 힘든 범행을 청소년들이 저지렀다는 사실에 대다수 국민이 경악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믿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진인하고 끔찍한 청소년 범죄가 일본에서 발생한 적이 있다. ‘엽혹진’ 등에 당시 범죄를 근거로 만든 만화도 돌아 다니고, 수년 후 해당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는 당시 기사도 있었던 세계적인 충격 실화다. 시간대 별로 정리한 자료가 있으나 워낙 잔인한 사건이라서 위키백과 글을 간추려 싣는다. 

[콘크리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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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행 청소년의 실명을 공개했던 당시 ‘주간문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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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고생 후루타 준코

 

이 사건은 일본 열도를 경악에 빠트린 전대미문의 충격실화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女子高生コンクリ?ト詰め殺人事件 조시코세이 콘크리토츠메 사츠진지켄)은 1988년 11월 26일부터 1989년 1월 4일에 걸쳐, 일본 도쿄 도 아다치 구 아야세에서 일어난 유괴·약취, 감금, 강 간, 폭행, 살인, 사체 유기 사건의 통칭이다. 사건번호는 ‘헤이세이 21058′.
 
범행에 가담한 소년들은 하교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 중이던 여고생을 납치, 감금한 뒤 약 40여 일간 폭행했다. 인분과 토사물 등 배설물, 쓰레기, 곤충을 강제로 먹게 했다. 다수의 청소년이 성 폭행과 폭행에 가담했다. 무수한 폭행으로 소녀는 사망에 이르렀다. 소년들은 소녀의 사체를 이불에 말아 드럼통에 넣은 뒤 콘크리트를 부어 인근 공원에 암매장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가 모두 소년이면서도 범죄 내용이 중대하고 고의적이고 악질적이며, 범죄 기간도 장기간이며,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 여고생 소녀가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주위의 목격자들도 피해자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다.
 
[주요 범인]
리더격인 미야노 히로시(宮野裕史, ‘소년 A’로 통칭, 당시 18세), 부 리더 격인 오구라 유즈루(小倉?, ‘소년 B’, 당시 17세)를 비롯, 미나토 노부하루(湊伸治, ‘소년 C’, 당시 16), 와타나베 야스시(渡邊恭史, ‘소년 D’, 당시 17)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소년들.
 
[사건의 배경]
소년들이 범행을 벌인 집은 맞벌이 부모 가정. 생업 때문에 부모가 집을 자주 비우는 점, 가정불화가 있어 부모에 의한 가정 내 폭력이 잦았다는 점, 이를 보고 배운 자녀도 폭행청소년으로 자라 부모가 자식들의 폭행을 무서워 하는 지경이 되어 주택의 2층 전체가 불량 청소년 집단의 아지트로 변질, 잔인한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범행 수사기록]
평소 여고생 후루타 준코(古田順子, 사진 속 여고생, 당시 16세)를 눈 여겨 보았던 소년 A, B, C가 소녀를 납치하기로 작정하고 1988년 11월 25일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보통 때처럼 수업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이던 소녀는 소년들의 이유 없는 시비에 자전거에서 내려 항의하다가 가격을 당한 후 주범 미나토 노부하루의 집 2층에 감금 당한다.
 
이들은 40일 이상에 걸쳐 강 간 행위나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다. 소녀에게는 가족이나 경찰에 신고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시킬 거라고 위협해 겁을 주었다. 소녀를 공중전화로 끌고 가 “친구 집에 있으니, 걱정말고 신고같은 것을 하지 말라”고 소녀의 부모를 안심시킨 후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악행이 벌어졌다.
 
소녀는 범인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에 불과했다. 매일마다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 등을 당했다. 집으로 제발 돌려 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강도는 더욱 세졌다.
 
소녀는 한 번 신고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곧바로 이 사실이 발각되어 전화가 강제로 끊겼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추적해 역탐지로 미나토 노부하루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소년들은 장난 전화였다고 둘러대고 무마시켰다. 이후 이들은 여학생에게 엄청나고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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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여학생에게 가했던 짓들은 인간으로서 실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굶주림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즐기다가 우유와 건포도를 먹였다. 오랜 동안 굶주린 소녀의 몸이 음식물을 거부해 토해내면 더럽다고 구타햇다. 또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하며 토해내는 모습을 즐긴 후 더럽다고 폭행했다.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터의 기름을 발라 불을 붙였다. 여학생이 몸에 불이 붙자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즐기며, 불을 끄기 위해 몸부림치지 말라고 폭행하고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였다.
 
불 폭행으로 인한 화상이 심해 무릎 연골이 파괴돼 소녀는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됐다.
 
진술서에 따르면 폭행은 여기가 다가 아니다. 소녀의 안면을 얼마나 구터했는지 코 높이까지 부어오른 볼과 눈에 촛농을 떨어뜨려 양초를 고정시키고 뜨거워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구타했다.
 
성폭행은 더욱 심각했다. 강 간 폭행은 약과였다. 성경험이 없던 소녀의 억지로 다리를 벌리게 만든 뒤 항문과 성 기 등에 온갖 이물질을 강제 삽입했다.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고 한다. 이들은 폭죽도 넣었다고 진술했다.
 
폭죽이 인체에서 발화하도록 거꾸로 꽂은 후 심지를 터뜨렸다. 불꽃놀이 성폭행의 상처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 부검의에 따르면 당시 소녀는 대장과 자궁및 질벽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부검 당시 안면부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되어 있었다고 한다.
 
너무 끔찍한 사실은 이 모든 폭행에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고 진술서에 기록된 사실이다.
 
여학생에게 알 몸으로 춤과 노래를 하라고 지시했고, 미 친 짓을 해보라는 등 엽기적인 행위를  요했다. 혹한기에 알 몸으로 베란다로 쫓아내 여러 개피의 담배를 한꺼번에 피우게 하였으며, 모든 행위 후에 웃지 않으면 폭행을 가했다.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피까지 먹어야 했다. 이런 폭행 때는 소년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손과 발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폭행을 당하다가 넘어진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자 이를 꾀병이라며 6kg짜리 철아령을 복부에 던졌다. 아령에 맞고도 반응을 하지 않으니 몸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였다고 한다. 불로 인해 뜨거움을 느끼고 소녀가 반응을 보이자 불을 끈 뒤 2시간 가까이 폭행을 가했다.
 
더 경악할 사실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 주위에 이 사실을 아는 주변사람이 100명이 넘었다는 것. 소년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자신의 집에 재 있는 것이 있다”며, 주변인들에게 자랑하며 다녔고 이중 10여 명은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하였다.
 
소년 C의 부모도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평소 못된 행동을 일삼는 아들의 반응이 두려워 이런 사실을 묵과했다고 한다. 범행 전모가 드러난 후 C의 부모는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참회했다고 한다.
-’17세, 악의 이력서’에 나오는 그들이 저지른 범행의 일부
 
 
[범행 후 사건일지]
극악무도한 범행 결과 후루타는 사망했다. 소년들은 후루타의 사망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1989년 1월 5일 사망을 눈치챈 이들은 시체 처리를 궁리하다가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 도 고토 구 와카스의 한 매립지에 유기했다.
 
이후 주변에서 이상한 부패한 냄새가 난다는 행인들의 제보가 경찰서에 접수되어 본격 수사가 진행됐다. 그 해 3월 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한 강 간, 절도 등의 혐의에 의해 소년감호소에 보내진 소년A의 진술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공개되었다.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소년A를 조사하던 중 담당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일행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했던 것이다. 소녀가 죽고 4개월 만에야 범행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경찰 조사가 끝난 후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평소 못된 행동을 일삼는 아들의 반응이 두려워 이런 사실을 묵과한 이유로 “차마 이 정도일 줄 몰랐다”며 참회했다고 한다.
 
소년 A의부모는 이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 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다. 하지만 억울하게 사망한 소녀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소녀의 부모는 정신과에 입원하는 등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사건 후 사회 반응]
언론 등 이 사건의 주범이 모두 미 성년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법에 따르면 미성년 범죄자의 경우 실명보도를 금지했으나 “사건이 너무나 흉악하였으며, 짐승의 인권은 존중 받을 수 없다”며 실명으로 사건 보도를 했던 <주간문춘>은 출간 후 책이 전량 매진되기도 했다.
 
200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 ’17세, 악의 이력서’가 출판되었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콘크리트’가 제작됐다. 영화의 개봉을 둘러싸고, 사건의 잔혹성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급속히 퍼져 불과 1주일 개봉하고 막을 내렸다. 영화의 등급은 ‘R-15’로 15세 관람가였다고 하니 제작자가 수위 조절을 충분히 했음에도, 비디오나 기타 방법으로 판매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주범들의 이후 생활]
범행 당시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 징역형이 구형되었고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이들은 현재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국화와 칼’로 비유하는 나라, 미소와 상냥함 뒤에 징그러운 군국 패권주의를 감추고 있는 나라, 벚꽃(사꾸라)의 찰라성을 희구하며 축제마다 불꽃놀이로 욕망을 사르는 이면에 변태적 욕망이 뒤범벅된 나라… G7 국가지만 유독 성과 관련한 엽기적인 범죄가 빈발하는 ‘성진국’ 일본은 여전히 이해불가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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