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전화번호부. 노래를 들었다. 기하형 노래.
과연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핸드폰을 새로 사고 카톡 목록이 다 돌아온 어느 날.
어짜피 유학와서 남아도는 시간, 전화번호부에 있는 사람들 안부나 한 번씩 물어볼 생각이 들었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사람 다 연락해보기는 아무래도 좀 힘들었고,
카톡에 있는 사람들만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3월 12일부터 시작해서 약 50일에 걸친 '카톡에 있는 사람들 안부 묻기' 프로젝트가 오늘에서야 드디어 끝이 났다.
할 일 하면서 하다 보니, 못하는 날도 있었고 삘 받는 날은 5~6명씩 하기도 했었다.
그 결과 180명 정도 있던 사람들은 150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줄어든 사람 수 많음 뭔가 소소하게 깨닳은 것도 있다.
연락을 한 것에 대한 기준은 기본적으로 카톡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한 번씩 연락 하되,
번호를 저장한지 1년 이상 된 사람들 중 6월 이상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을 우선 연락 대상으로 꼽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
다시 말해 번호를 저장한지 1년 이상 됐는데 6개월 내에 연락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10명을 겨우 웃돌았다.
시작은 대부분 비슷하게, 내가
“ㅇㅇ야~
잘 지내?
오랜만에 연락 함 해봤어ㅋㅋ”
같은 식으로 첫 톡을 날렸다.
그리고 답장 유형에 이들을 따라 크게 다섯가지로 나누어 구분지었다.
1.답장을 잘 해준 사람
2.답장이 건성인 사람(응ㅋㅋ 아니ㅋㅋ 같은 말만 한 사람)
3.확인 하고도 답장을 안 한 사람 ㅡ 한마디로 씹은 사람
4.이틀 이상 문자 확인을 안 한 사람
5.바빠서 제대로 얘길 못한 사람
으로 나눠서 1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카톡 차단 혹은 전화번호 자체를 지워버렸다.
3번 그룹은 볼 것도 없이 전화번호 자체를 지워버렸고,
2 3 4 에 해당되지만 앞으로 마주칠 일이 잦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목록 차단 번호 잔류,
5번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50여일에 걸친 이 프로젝트는
'그 사람에게 있어 나는 어떤 사람?' 인가
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일단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1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월등하게 많았다는 것.
그래도 내가 질 나쁘지 않게 인간관계를 대했다는 증거 일 테니 말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서울에서 수학하고 있는 동갑내기 P군.
P군은 칼답이 왔을 뿐만 아니라, “답장 완전 빠르네!?” 라는 내 놀람에 “기본 매너지” 라는 명언을 남겨주었다.
P군과 사귄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았다. 나는 물론이고 그 친구도 나를
서로를 평생 곁에 두고 교류할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반응에 나는 십분 감사했다.
사람들의 교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예절은 존재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네티켓 이고, 스마트폰이 확산됨에 따라 모티켓 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다.
문자를 함에 있어서 기본 매너는 답장의 신속함과 그 답장의 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10명에 9명은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아서 신속함은 부차적인 문제로 넘길 수 있고,
중요한 것은 답장의 질이다. 답장이 늦더라도 답장의 내용이 그 사람의 예절 역량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래서 내가 2번 그룹과 3번 그룹의 사람들은 대부분 번호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와 친구(동갑내기의 의미가 아닌 벗 의 의미)관계 이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자 예절이란 어떤것일까.
일단 예절 이라는 것 자체가 "모범" 답안 만 있을 뿐이지,
같은 예절로 대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 제대로 된 예절이라고 할 순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내가 이번에 안부묻기 프로젝트에서 적용했던 예절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1. 늦더라도 답장은 한다.
문자를 받고도 답장을 안한다는 것은 전화를 하는데 나만 말하고 상대방은 숨만 쉬고 있는 경우와 똑같다.
생각해보길.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대화는 의사소통의 기본중의 기본이라 두 번 입력하면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다.
문자를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싫소" 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 연락을 끊고 지낼 심보가 아니라면 늦더라도 답장은 해야한다.
많이 늦어질 경우는 간단하게라도 이유를 말 하고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는것이 매너라고 생각한다.
2. 현재 자신의 상태를 표현해서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건 무슨 소린고 하니, 사람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상황을 간결하게나마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자신이 일하는 중이라 바쁜데 문자가 왔다면"나 지금 일하는 중이라 바빠서 답장이 늦을거 같아ㅜㅜ" 라고 하거나
혹은 친한 사이라면 "일하는 중" 이라고만 보내도 ' 아 이사람이 바빠서 문자질을 잘 못하겠구나' 하고 이해 해 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야 말로 문자예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름을 불러줘라.
연말연시나 행사같은것이 있으면 흔히 보내는 단체문자. '흔히'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무시한다.
나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기 때문에, 이는
"당신은 나에게 있어 그저 다른사람과 똑같은 아는 사람중에 한 명일 뿐이다" 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ㅇㅇ님, ㅇㅇ야 하고 이름 두 글자 입력 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사람은 나에게 "이름을 적기 위에 다른 사람들보다 몇 초라도 더 투자한 조금이라도 더 의미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왜 김춘수 님의 시 "꽃" 에도 똑같은 말 나오지 않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4. 번외편-카톡의 경우, 답장을 못할거면 읽지를 말아라.
이건 카톡에만 해당되는 얘긴데 (다른 문자어플은 안써봐서..), 카톡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신확인" 기능이다.
2번과 같은 예로, 무지 바쁜데 카톡이 왔으면 차라리 읽지를 말아라.
바쁘다고 읽기만 하고 답장을 안하는 것은, 카톡에 있어서는 1번과 다름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5. 대화의 끊고 맺음을 확실히 하라.
문자 예절의 마무리 라고 할 수 있다. 이걸 하지 않는다고 해서 예절바르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자를 흐지부지 끝내는 경우이다.
내 경우에서 비춰볼 때 5번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 경우가 많았다.
문자를 씹지는 않아도 바쁘기 때문에 대화를 꾸준이 이끌어 나갈 수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대화 도중 한 쪽이 답장이 끊긴 경우이다.
문자를 받아줄거면 끝까지 받아주고, 끝낼 때도
" 담에 또 연락하자", "잘 지내라" 등등의 맺음 말을 확실히 해주는게 좋다.
무르팍도사 였나? 최강희가 언젠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을때 핸드폰을 보다가 최강희씨 옛날 번호가 있어서 전화를 해봤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왔더란다.
그때 그 친구가 "아.. 지금 내가 죽어도 강희는 이 사실을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때 자기가 전화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나와 마지막 통화를 하고 싶어했을때 전화가 안되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고.
언젠가 친구였나 선배가 말했다. 저장 돼 있는 번호들이 자신의 미래의 재산이라고. 많을 수록 내 재산도 늘어나는 거라고.
그 때 내가 되물었다.
"그 사람도 너(선배)를 자기 미래의 재산이라고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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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없는 필력으로 블로그에 기재한 글입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