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바로 이어서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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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에버퀘스트 포럼 커뮤니티에서 내 험담을 듣고 빡친것까지 얘길 꺼냈지?
저번에 올렸던 글 댓글들을 보니 이런 얘기들이 있더라구.
'니가 얼마나 눈치없이 얘길걸고 그랬으면 한국인들이 싫어하겠느냐.'
혹은
'그렇다고 니가 비매너 짓을 한 것은 잘한 짓이냐.'
다 맞는말이야. 내가 잘못한 것이 맞지. 그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당시 모렐툴 서버에서 게임하는 모든 유저를 상대로 내가 한달이고 두달이고 장시간 동안 구걸을 하거나 트레인을 낸건 아니야.
내 기억으로는 20레벨 이후부터는 전반적인 게임 내 룰과 매너를 깨치고 다른 평범한 유저들처럼 게임에 임했었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못했던 20레벨이 되기전까지의 시간은 대락 이주일 가량의 짧은 시기였지.
그때 몇번의 사고를 쳤던 것이 그렇게 한국유저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하게 날만큼 못마땅하고 용서될 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인지
그당시 내 죶중딩의 시각에서는 답답하게만 느껴졌던거야.
눈치없이 얘길걸었다는 것도 맞는 말이야.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때 내가 눈치가 없었으니까.
미리 알아놓은 게임지식은 하나도 없지.
에버퀘스트를 처음 접한 죶중딩이다보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은 많고 호기심만 잔뜩일어나지.
어린마음에 누구하나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싶은데 외국인뿐이라 영어가 잘안되서 구체적인 정보를 습득 못하니 답답하지.
그래서 한국인만 보이면 너무나도 반가웠고, 또 필사적으로 끼어들어서 무언가를 계속 물어봤던 것 같아.
죶중딩이었던 내가 무슨 눈치가 있었겠어... 정말 귀찮았을거야....
하지만 아무리 죶중딩이라도 이런 생각은 했지...
본인들도 분명 초보인 시절이 있었을텐데, 왜 이렇게 초보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일까?
또 그들은 과연 하나부터 열까지 실수한 번 안하고 완벽한 게임진행을 이루어냈을까?
이런 생각들.
그러면서 그 커뮤니티 게시글들을 다시 하나하나 훑어봤는데,
'Superzzang X새끼 구걸이나 하는 순 나쁜새끼에요.' 와 같은 욕설이 담긴 글은 결코 없었어.
다만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서로 공유하는 글만 존재할 뿐이었지.
모두가 점잖고 교양이 흐르는 나긋나긋한 말투를 썼어.
마치 궁궐에서 바퀴벌레와 마주친 귀부인들과 비유를 하면 적절할까?
차라리 애들처럼 나에게 욕이나 싸지르면
보는이들로 하여금 욕하는 상대방과 나 사이만의 일로 여겨져 대충 넘어갈 법한 글이 되지만
누군가가 정말로 진지하게 나의 실수를 조목조목 집으니까
재판장에 나타난 여러명의 증인들처럼 그에 동조하는 다른이들이 나타나니
나로서는 그게 더 잔인하게 느껴졌던거야.
여럿 어른들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무슨 악명높은 수배자처럼 오르내리는 광경을 보고는 그만 풀이 기가 죽어버린거지.
내가 생각했던 어른들의 관대함이나 포용력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어.
자꾸 본론에서 새나가서 미안하고
어찌되었든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서,
그 커뮤니티의 글들을 본뒤로 다시 게임을 했는데 몹시 기분이 상하고 서운하더라고.
파티도 맺기 싫고 내가 모르는 한국유저가 주변에서 지켜보며 손가락질 하고 있을 것 같고.
프리포트를 나가면 오아시스와 통하는 산중턱의 동굴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두어시간을 멍하니 있었어.
천천히 흥분이 가라앉자
한국인길드고 한국인친구고 뭐고 좆까! 하던 내 마음은 눈녹듯 사라지고 있었어.
게임 속 외로움이 커서 그렇게 하기엔 자신도 없었고 어떻게든 나쁜 이미지를 떨쳐낼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지.
어쨌든 다급한건 나니까 게임 내에서 살아갈 궁리를 했던거야.
그렇게 결국 내가 택한방법은 '그래 나도 씹선비가 되보자' 였어.
기존 한국유저들처럼 그 사이에 동화되길 원한거지.
그래서 그 커뮤니티에 다시 찾아가 글을 올렸어.
대략 '안녕하세요. 모렐툴섭 뉴비 Superzzang 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간단한 내 소개와 인삿글이었지.
내자신의 평판이 안좋다는걸 몰랐던 사람처럼, 또 이 게시판에 막 처음 발을 들인 것처럼 태연하게 썼지.
죶중딩에게도 자존심은 있었어.
초조하게 댓글을 기다리자,
'반갑습니다 :)' 라는 댓글이 하나 달렸는데,
내 캐릭을 보고 인상이 찌푸려졌다는 글을 남겼던 바로 그 30대 아저씨새끼의 댓글이었지.
그리고 1시간을 또 기다렸지만 더이상 댓글은 없었어.
그래 그럴수도 있어...
하지만 그때 내가 실망했던 이유는
그 게시판에 뭍히는 글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어.
새로운 누구 한명이 자기 소개를 하면 적어도 20개 이상의 댓글이 우르르 달리던 곳이었지.
죶중딩에게도 자존심은 있었어(2).
나는 그날 이후로, 꾸준히 하루에 한번씩 게임에서 겪었던 일과를 게시판에 글로 써서 올렸지.
'오늘은 몇렙이 되었고, 어떤 몬스터를 잡았고 죽었고, 어떤 아이템을 사고 팔았고, 어떤 파티원을 만났고.' 등등....
지금 내 글을 보는 게이들은 내 글이 재밌는지 어떨지 모르지만
죶중딩이었던 그때에 내자신이 글을 재미지게 쓰는 얄팍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뼈와 살을 발라 매일매일 열심히 썼지만 나에게 댓글을 달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낙심하진 않았어.
나는 존나 긍정적인 죶중딩이었거든.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나와 매일 귓말을 하고 여행을 하고 사냥을 할 한국인 친구가 언젠간 나타나리라 믿었지.
아무튼 아무도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 뻘글들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가 20렙부터였고,
내 타고난 장사실력으로 열흘만에 값비싼 아이템을 두른 나는 빠르게 25렙을 달성하여
오아시스로 향했지.
광활한 사막엔 여기저기 몹들의 캠프가 있었고
그 여러곳에서 각자 사냥하는 파티들이 보였지만
나와 동렙인 그 어떤 누구도 나보다 템이 좋진 않았어 ㅋㅋㅋ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하나둘씩 낯익은 유저들과 마주치기 시작했어.
커뮤니피 게시판에서 보았던 그 낯익은 한국인 유저들의 캐릭터.
난 그때 겜을하면서도 게시판을 자주 눈팅했기 때문에 한국유저 캐릭들은 빠삭하게 봐왔었지.
한국유저들끼리 자기 캐릭이나 다른 사람과 같이 스크린샷 찍어서 올리고 그랬었거든.
내가 생각하기론 그때 해외섭 에버퀘스트를 하는 한국인들의 90퍼센트 이상이 그 커뮤니티를 이용했기 때문에
게시판에서 보았던 한국인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고 그사람은 게시판 닉네임이 무엇인지까지 줄줄이 꿰차고 있었지.
그리곤 아는 한국유저를 발견하면 이런 생각들을 했지.
'저사람 얼마전 네크로맨서 23렙이라고 글올렸었는데 지금은 25네. 2렙 올렸군.'
'저사람 무기 언제바꾸지. 여태 저거 차고 있네. 내가 갖고있는거 하나 주고 싶다.'
등등...
물론 생각일뿐.
그 한국유저들도 나를 결코 모를순 없지만 자기들끼리 인사들은 해도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한국인들은 아무도 없었지.
상대방 캐릭터를 클릭하고 H 를 누르면 채팅창에 자동으로 'Hail, 상대방 캐릭터이름' 이렇게 떴는데 인사하기가 아주 쉬웠지.
하지만 나한테 H 한번 눌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 ㅋㅋ
가끔씩 나에게 먼저 H 를 눌러주는 사람들은 전부 처음보는 외국인들뿐.
뭐 아무튼 나는 묵묵히 25렙부터 사막 외곽의 오아시스라는 곳에서 악어들을 사냥했는데,
이곳은 솔로잉(파티 없이 혼자 사냥하기)이 가능 했기도하고
팔라딘이라는 직업 자체가 솔로잉하기 좋았기 때문.
그러다가 조금 무료해지면 외치기창에서 파티원 구하는글 찾다가 파티에 껴서
근처의 집시캠프에서 인간형 몬스터를 잡고 놀았는데,
간혹 어쩌다가 내가 아는 한국유저가 포함된 파티에 끼게 되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지.
파티창에다 한국말 쓰지는 못하겠고,
귓말로 'Annyeong haseyo :)' 보내면 'Ne :)' 라고 답하곤 아무말 없음...
물론 그 한국유저는 파티창으로 다른 외국인들과 영어로 주저리주저리.
다음에 또 마주쳐서 내가 먼저 인사하면 쌩까기 시작...
대부분 내가 파티에서 마주친 한국유저들은 이런식이었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사막에는 가끔씩 샌드자이언트 한마리가 돌아다녔어.
크기는 무지막지하게 크고 1인칭 시점이다보니 바로 앞에서 마주치면 자이언트의 커다란 신발만 보였는데
평화롭게 파티원들과 사냥하다가 등뒤에서 갑자기 나타났을 때의 그 공포감이란....
이 샌드자이언트란 놈은 선공몹이긴 하지만 평소에 느릿느릿 걸어서 미리 발견하면 거리를 조금만 두어도 피하기 쉬웠어.
다만 거리를 두지못해서 가까이 근접했을땐 이새끼가 갑자기 존.나 빨라지면서 쿵쾅쿵쾅 뛰어와 핵꿀밤을 날리고
대부분 20~30렙에선 핵꿀밤 네다섯방에 사망하고 말았지.
문제는 에버퀘스트라는 게임이 1인칭 시점이라는거야. 정면만 보며 칼질하다가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온 자이언트를 못보는 경우가 많기에
파티원들끼리 사냥하고 있다가 누군가 자이언트를 먼저 발견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파티창에다가 자이언트가 떴다고 얘기를 해야했지.
그러면 파티원 전체가 사냥을 중단하고 잠시 물러나 숨어있다가 자이언트가 사라지면 돌아와서 다시 사냥하곤 했지.
하여튼 샌드자이언트 존니 무서운 새끼인데
혼자서 악어잡으면서 솔로잉 하고 있을 때였어.
가까운 주변에서 마찬가지로 악어를 잡던 어느 한국유저가 있었는데 그사람 뒤에 샌드자이언트가 걸어오구 있는거야.
나는 준내 깜짝놀라서 GIANT!! 한마디만 외치고 후다닥 도망갔는데
그 한국유저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핵꿀밤 맞고 운지하고 말았어 :(
샌드자이언트가 사라진후 다시 그 한국유저한테 다가가봤지.
그런데 부활버튼을 안누르고 그냥 가만히 있더라구.
이겜은 캐릭터가 운지했을때 부활버튼을 누르면 바인드가 된 지정된 장소에서 부활하게 되고
그 쓰러져 있던 자신의 캐릭터는 [ '캐릭터 이름's corpse ] 이렇게 표시되어 시체로 남아있는데(나중에 다시 와서 그 시체를 룻팅해야됨),
만약 부활버튼을 누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쓰러진 상태에서 계속 있게되고 [ 캐릭터 이름 ] 만 표시된 채 뒤에 's corpse 는 붙지 않게 돼.
그래서 이사람이 죽어도 아직 부활버튼을 안눌렀구나 확인할 수 있지.
여튼 이사람이 부활안하고 쓰러져서 계속 있었는데 그냥 혼자 멀뚱히 바라보니 미안해지더라구.
'헉... 바인드 어디에 해두셨나요? ' 라고 말을 걸어봤는데 쌩....
다시 잡던 악어나 계속 잡으면서 힐끔힐끔 쓰러진 그 한국유저를 보고 있는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황금빛 철퇴를 들고 광채가 나는 갑옷을 입은 캐릭터 하나가 존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라?
그리곤 아까 그 운지한 사람 앞에 우뚝 서더니 주문을 외우는거야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하늘에서 노짱이 바라보는듯한 성스럽고 온화로운 기운이 빛으로 뻗어져나가기 시작했지.
마지막엔 그 빛이 쏴아아 흩뿌려지는데~
갑자기 그 운지한 한국유저가 심청이 아버지 눈뜨듯이 벌떡 일어나는거야.
오우 시.발!
난 그 장면을 보고 감탄하고 말았어.
정말이지 바람의나라에서 렙99도사가 부활써주는거랑은 차원이 틀렸어.
이건 엄청난 무지막지한 신의 영역처럼 보였지.
다시 시체찾아오러 조뺑이 칠 필요없이 이 얼마나 반갑고도 위대한 주문인가.
그 부활주문을 시전한 캐릭터는 레벨 60의 클레릭이었고 마찬가지로 한국유저였어.
나는 옆에서 'Oh my god!! great!' 를 남발했지.
자세히 보니 그 클레릭 이름 위로 R모 길드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어.
흠... 명불허전 모렐툴 최고의 한국 길드라 생각되어 절로 죶중딩의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구.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그 주변에서
나 역시 똑같이,
등뒤에서 달려든 샌드 자이언트의 핵꿀밤을 맞아
똑같이 운지하고 말았지.
다시 시체를 찾으러 터덜터덜 돌아오는데
계속 비통한 마음이 드는거야.
꼭 나를 살려줄 누군가가 필요한건 아니지만....
존나 뭔가 쓸쓸했지.
졸려서............ 여기까지............... 아... 자이언트 얘기가 왜나왔지 씨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