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기사 vs 유럽기사

면죄자 작성일 12.09.26 16: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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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기사단 피규어,튜튼기사단 기사의 모습도 보인다 ( 맨오른쪽 )

 

 

< 13세기 중세 유럽의 3대 기사단 >

 

-  ' 템플 기사단 ' Ordre des Templiers

- ' 성 요한 기사단 ' Ordo Equitum Sancti Johannis

- ' 튜튼 기사단 ' Teutonic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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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 전쟁의 참여와 공로를 유럽에서 인정받아, 당당하게 유럽 3대 기사단에 이름이 올라있었던 튜튼기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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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의 칸 친위대 ' 케식텐 ' 주로 근접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

 

 

< 13세기 몽골제국 3대 정예부대 >

 

 

-  2만명의 칸 친위대, ' 케식텐 ' ('친위대' 라는 뜻)

- 몽골제국 최강의 궁병부대 ' 타문자르가 ' ('저승사자' 라는 뜻)

 - 역사상 최강의 궁기병으로 손꼽히는 ' 만구다이 ' ('붉은전사' 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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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에서 유럽의 기사들과 맞붙은 부대들이 있었는데,

 바로 몽골제국의 유럽원정사령관 바투가 이끌던 ' 만구다이 ' 와 ' 케식텐 ' 이다.

 

케식텐은 기병으로 이루어진 친위대로 , 말그대로 지휘관의 자제, 장군들의 측근들이 많이 가입했던 부대로,

주로 근접전을 담당했으며 마상술이 매우 뛰어났고 무기로도 손도끼 , 갈고리 , 반월도 같은 무기들을 소지하였다.

 

 만구다이는 걸음마 때부터 말타고 활쏘던 몽골의 장정들 중에서도  능력이 출중한 자들을 뽑아 만든 최정예 궁기병부대였다.

파르티안샷은 물론이고, 말 위에서 갖가지 자세로 활을 쏠 수 있는 부대로써,

기록에 의하면, 만구다이들은 화살을 걸지 않은 채로 1분에 최대 70번의 활시위를 당길 수 있었다고 한다.

(왠만한 사람들은 국궁 몇번 당기는것도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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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년 , 드디어 오고타이 칸의 명을 받들어 바투가 이끄는 몽골제국 유럽원정군 12만명이 러시아로 출발했다.

혹한의 겨울기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러시아의 강들을 몽골군은 고속도로 처럼 사용하며

파죽지세로 모스크바와 주위의 공국들을 복속시킨다.

 

( 훗날 러시아의 겨울에 나폴레옹도 물러나고 히틀러도 무릎꿇었으나 , 몽골만은 성공하였다. )

 

그리고

 

12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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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이 러시아를 점령한지 4년만에

당시 동유럽의 강대국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폴란드 일부까지 손에 넣었다.

이렇게 되자 몽고군의 존재에 드디어 서방 기독교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유럽을 일대를 점령한 몽고군의 서유럽 진출에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러자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9세의 명령으로

 슐레이지엔 공국의 (公國)공(公) 하인리히 2세는

독일과 폴란드의 병사 17만명과 당시 유럽 3대 기사단이자 독일 최강의 기사단이었던 튜튼기사단 3만명을 포함한

20만 연합군을 결성하여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는 몽고군에 대항해 맞서기로 하였다.

 

 

유럽 연합군은 병력을 5진으로 나누어 몽골군의 축차소모를 노렸다.

 

제 1진은 폴란드 농민들로 구성된 보병대로 몽골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제 2진과 3진은 지방 영주를 중심으로 기사와 그 종자, 그리고 영지에서 징병한 농민 보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4진과 5진은 결정적 시기에 전장에 뛰어들어 승부를 마무리 할 중장갑 기병으로,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와 독일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럽군의 최정예병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군 사령관 하인리히는 제 5진에 진영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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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이는 첫번째 전투에서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몽골의 선발대가 유럽연합군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제 1진 지휘관이었던 모라비아 변경백의 아들 ‘볼레슬라프’가 장난감 같은 활과

볼품없는 갑옷을 지닌 몽골군을 얕잡아보고 단독으로 돌격해버린 것이다.

 

그때 공을 뺏길까 두려웠던 2,3진의 지휘관들도 덩달아 출진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달아나는 척 하며 몽골 선발대가 그들을 바투가 있는곳까지 깊이 유인하여 포위시키고 일제히 공격했다.

그러자 1,2,3진의 농민병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 속절없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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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5진에 있었던 유럽군사령관 하인리히 2세가 이 소식을 듣고 불같이 대노하여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 경이 이끄는 튜튼기사단과 폴란드 기사단을 이끌고

1,2,3진을 구하기 위하여 레그니치로 달려갔다.

 

그러나 , 레그니치로 가는 왈슈타트(Wahlstatt) 평원에서 기사들은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곳에 , 몽골제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 케식텐' 과 ' 만구다이 '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서양이 자랑하는 정예병과 동양 정예병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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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은 몽골군을 잠시 바라보더니 크게 웃으며

 

" 저것도 군대라고 할 수 있는가 , 조잡한 갑옷과 저렇게 작은 말을 타면서 어찌 군대라고 자청하는가 "

 

하며 곧바로 랜스를 들고 기사들을 통솔하여 차지(Charge)대형을 짜고는 일제히 성호를 긋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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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채 적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만구다이가 쏘아내는 엄청난 화살비가 기사들의 머리위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화살비는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떨어졌고, 튜튼기사단은 계속 돌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기사들을 앗아간 죽음의 화살비가 그치자, 이번엔 몽골군 진형이 좌우로 벌어지더니

몽골의 정예기병 케식텐이 곡도를 빼어들고 기사단과 맞부딪혀왔다.

 

케식텐은 경기병대의 빠른 기동력을 이용, 유럽기사단의 측면을 뚫고들어가 허리를 자르고,

자연스레 고립되어버린 전방의 기사단과 맞붙었기 시작했다.

 

기동력이 사라진 기병이란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기 때문에, 유럽기사단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만구다이까지 기사단 주위를 선회하며 활을 쏘아대자 튜튼기사단은 공격도 하지못하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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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전투에서, 튜튼기사단과 기사대장 헤르마이스터 포포 폰 오스테른, 하인리히 2세는 전사했고

고립된 1,2,3진도 궤멸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몽골군이 시체에서 적의 귀를 일부 배어내었는데, 그 수량이 무려

사람만한 자루 아홉개에 가득 찰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서유럽은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서유럽에 신의 축복이 내린것인지는 몰라도,

그 해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면서 몽골의 수칙에 따라 바투는 발을 돌릴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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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철저히 파괴되었던지, 몽골군의 침입이 있은 지 6년 뒤 이곳을 방문했던 한 여행자는

자신이 본 것이 “벌판에 흩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해골뿐이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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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구 100만명의 유목민족 몽골이 점령했던 영토

 

( 고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몽골에 저항했으나 훗날 쿠빌라이 칸 시절에 항복하였음, 작은지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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