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895년 을미사변 이후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스무살 청년김창수가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 하게됨
김창수는 동학에 입도해서 동학 접주로도 활약했을정도로
민족주의자였음
이때 우리나라는 주권을 뺏기지는 않았지만일본의 눈치를 받고있었음..
조선인 김창수는 즉시 체포되었고 사형이 내려짐
그러나
승정원 승지가 김창수의 죄명 (국모 보수) 을 보고 임금에게 보임
고종은 곧바로 어전회의로 김창수의 사형을 정지시키기로 함
죄명에 감격한 고종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형 정지 명을 내림
(이때 최초로 시외전화를 사용함이 기록됨)
이렇게 김창수는 목숨을 구하는데..
김창수는 나중에 개명을 하고
독립운동에 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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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 1876년 8월 29일 - 1949년 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