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엄마 사랑해요

면죄자 작성일 12.09.29 19: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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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가난했었다.   쌀독 바닥에 쌀알 몇톨만이 모래알처럼 굴러다니면   엄마는 나에게 쌀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슈퍼라는 어마어마한 간판을 달고있는 조그마한 동네 구멍가게에서 쌀을 됫박으로 샀었다.   한되. 혹은 두되..   계란도 한알에 오십원 했었는데,  한알 두알로 샀었다.     저녁이 되고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파 할 무렵이면,   나는  생선파는 아줌마에게 가서 동태머리를 얻어오곤 했었다.   그옆의 채소와  콩나물 팔던 자리를 맴돌며,  바닥에 떨어져있는 시레기들을 줍고 콩나물을 주웠다.   그리고 집에가서 그것들로 찬을 만들어 먹었었다.     세들어 살던 집에는, 우리가족 외에도 4집이 세들어 살고있었다.   마당 한쪽에 변소가 있고,   마당 가운데 수도가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으례히 집안살림은 내몫이었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텅빈집에 9살이던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으니까.   마당의 수도에 쭈그려 앉아서,  빨래를 하고 운동화를 빨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갔었다.   안채쪽 큰방에 세들어 살던 아줌마는 그런 나를 보고 착하다고 칭찬도 해주곤 했었다.   한겨울에 빨래를 하고나면 손이 얼어서,  한참을 아랫목 이불속에 손을 집어넣고 녹이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식을까봐 밥담고 뚜껑닫고 수건으로 돌돌 싸매어놓은 엄마의 밥공기가 만져졌었다.   나는 밥이 식기전에 엄마가 일마치고 오기를 바라다 잠이들곤 했다.       일요일은 그시절에도 달력에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지만   일요일은 쉬는날이 아니었다.  그시절엔 다들 그랬다.   엄마는 한달에 두번 격주로 쉬는 공장에 다니셨는데,  엄마가 쉬는날이 되면   손잡고 같이 시장을 가는게 어린 나에겐 큰 즐거움 이었다.   시장을 다니며,  엄마가 좀더 깍아달라 흥정하는 모습과,  덤 좀 더 달라  눙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에이.. 그냥 사지.  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장을 봐오면 엄마는 요술을 부리는듯이,  물김치와 깻잎장아찌 같은 반찬을 뚝딱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면 2주동안은 그 반찬으로 모든 끼니를 해결했다.   라면이 너무 먹고싶을때면,  저금통을 뒤짚어 흔들어서 기어이 동전몇개를 빼내서는   가게에 가서 까만소 라면을 사와서 끓여먹었다.   나는 그때에 라면이 너무너무 좋았지만,  먹고 싶을때 먹기에는 너무 비싼 음식이었다.   가끔 엄마에게 고기가 먹고싶다고 졸라대면   엄마는 시장의 닭튀김집에서 파는 닭발을 사주셨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나도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마트에가서 20키로 짜리 쌀을 사고,  고기가 먹고싶으면 고기도 사고..   매운탕을 먹어도 생선머리는 건들지도 않는다.   닭발은 이제 일부러 파는곳을 찾아가야만 먹을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나이든 내가,  나이든 엄마와 시장을 갈때면   화를 낼때가 있다.   엄마는 지금도 시장상인 에게,  한켠에 놓여진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동태 대가리를 달라고  조르신다.   난 그런 모습을 볼때면,  감정이 참 복잡해지다가 기어이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 엄마 왜그래,  부족하면 더 사면 되는걸 뭐하러 생선머리를 얻어? "   " 애가 왜이래,  다 이러고 장보는 거지 어차피 저것들 다 쓰레기 될텐데 "   " 그러게 쓰레기를 왜 얻어오냐고! "   나는 빽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이제 생선머리를 먹지않아도,  몸통의 뽀얀 살들만 먹어도 배부르지 않냐고 더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만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지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질구질 하다고 보여질 정도로 살았기에,   지금 내가 배부르고 부족함 없이 살고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그리 살았던건 부끄러운게 아니라는걸   가난을 벗어난 지금에도,  엄마는 버려지는 동태 대가리를 아까워 한다는걸   자식들에겐 몸통만 발라주면서,  엄마는 생선은 머리가 맛있다며   엄마의 국그릇엔 동태 대가리만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 여기가 맛집이래 "   이제는 맛있는것 드시라고 모시고 다니면   " 이집이 맛있나?"  라는 질문보다  " 이집 비싼집 아니냐? " 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는 엄마.   항상 제일먼저 수저를 내려놓으시고 속이 불편하다고 안드시다가   자식들이 배부르게 먹고 난 다음에야,  다시 수저를 드시곤   얼마 남지않은 요리를 드시는 엄마.     사춘기때,  왜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 하게 살아야 하냐고   죄없는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부으며,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에 같이놀던 친구들끼리   " 야, 너 집에 안들어가도 되냐? "  라고 물으면   " 괜찮아. 울집에서 나 포기했어 ~ "  라는 대답이 들려오곤 했다.   그러면 애들이 " 이야 좋겠다 " 라고 부러움 섞인 맞장구를 쳐줬었다.   새벽까지 애들과 밖에서 난장을 부리고 있을때면   집 전화번호 뒷자리가 찍힌 삐삐에 음성메세지가 오곤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머리를 빡빡 밀려도,   부모에게 뒤지게 맞아도,   정말 귀신같이 집을 나와서 놀곤 했었는데   나는 하루아침에 나의 방황을 접었었다.   그 계기는 엄마의 음성 메세지.   음성사서함이 가득찰까봐 삭제하러 들었던 메세지에는   엄마의 야단도,  욕도,  집에오면 각오하라는 흔한 협박도 없었다.   " OO야, 엄마 혼자 저녁을 먹으니 너무 외롭다.  오늘은 드라마에서 무슨 장면이 나왔는데 같이 봤으면 좋았을건데 "   " OO야,  보고싶다.  너가 없으니 집이 너무 쓸쓸하네 "   " OO야, OO잘지내고 있어?  엄마가 맛있는거 해줄께,  보고싶다."   이런 메세지들이 계속 내귀에 들려오고,  내가슴을 헤집고,   " OO야 어디서 뭐하고 있니.  엄마 혼자 밤새 기도한다 "   기어이 나를 울렸다.     어설픈 어른이 되고,  이십대 특유의 깡과 혈기로 살다가 처음으로 세상의 험한꼴을 겪었을때   죽으려고 한적이 있었다.   병실에서 눈을뜬 내앞에 엄마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하고,  영문도 모른채 눈물이 줄줄 났다.   엄마는 내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젠 나도 나이든 어른이다.   엄마는 지금도 그저 엄마다.   나는 이런저런 기억의 단편들이 떠오를때면 엄마에게 화가 난다.   엄마의 국그릇에 놓인 동태 대가리를 볼때면   배부르다는 데도 억지로 더 먹으라며 기어이 나의 그릇에 고기한점 더 얹어주는 모습을 볼때면,   "에이~ 좀더 깍아줘잉~"  이라며 시장에서 흥정을 벌이는 모습을 볼때면,   엄마의 잠자리 머리맡에 항상 놓여져 있는 성경책과 돋보기를 볼때면,   멋들어진 비싼 장지갑 대신에,  지퍼가 달린 동전지갑을 들고다니는 걸 볼때면,   뭐하나 버릴때도 아깝다고 놔두면 쓸일이 있다고 한사코 다시 쟁여놓는 모습을 볼때면,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날에도 기름값 아깝다며 내복을 겹겹이 껴입고 전기매트만 켜놓는 모습을 볼때면,   내가 사드린 속옷이 너무 고와서 아깝다고 옷장 서랍에 고이고이  숨겨둔걸 볼때면,   이런저런 기억의 단편들이 떠오르면서 엄마에게 화가 난다.     하지만,  정작 화가 나는건   엄마가 겪었던 가난과,  엄마가 이겨내었던 가난과, 아직도 엄마에게 남아있는 가난의 파편들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때 이담에 크면 엄마에게 맨날 맨날 고기사주고~  레이스달린 분홍색 치마 사줄거라며 떠들어대던 내 모습이다.   내가 대가리가 굵어졌을때  이담에 크면 엄마한테 효도할께 라고 떠들어대던 내 모습이다.   내가 나도 다컸다며,  엄마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건방지게 가르치려 들던 내 모습이다.   내가 세상이 너무 무섭고 힘들다고,  엄마에게 안겨서 펑펑 울어대던 내 모습이다.   내가 이제는 살만하니까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그러지마 라고 입바른 잔소리를 하는 내모습이다.   그런 내모습에 화가 나는 거라는걸 뻔히 알면서도,  엄마에게 화를 내는 내모습이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엄마가 고맙고   엄마를 사랑한다   이제. 세월이 야속하고 슬프다.   엄마는 지금도 그저  엄마인데,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이 화가난다.   난 엄마만 생각하면 그래서 화가난다.   슬프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라는 뻔한 후회를 하는 나에게 화가난다.   이런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수가 없다.      꽃구경 시켜 드리겠다고  놀러갔을때   국도를 타고 가던 차안에서 엄마가 차창밖의 들꽃을 보면서 한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 늙어서 좋은건 호박뿐이지."   그말을 들었을때,  누가 나의 뒤통수를 뻥하고 후드려 팬거 같았다.   그제서야 엄마의 주름과,  엄마의 흰머리가 ,  좁아진 어깨가,  가늘어진 손목을 봤던것 같다.   그제서야.     엄마는 지금도 그저 엄마이고,   나는 지금도  귀한 자식이다.   나는 지금도 귀한 늙은 자식이다.   보잘거없고  나약한 내가,  엄마에겐  당신보다 더 귀한 자식이다.   이제 내걱정 말고,  나 신경쓰지 말고,  엄마 좋은거 먼저하고,  엄마 하고픈거 말하라고 다그쳐도   이나이에 뭘, 너 살 염려나 잘하라는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그냥  내가 가난하게 살았고   나는 그냥 내가  힘들게 살았고   나는 그냥  잘사는 애들과 나를 비교하며 대상없는 억울함에 괴로워 했지만   엄마는 나를 키우며 가난과 싸웠고   엄마는 나를 지켜내며 힘들게 살았고   엄마는 나만을 걱정하며 괴로워 했다.   엄마는 나를 그저 사랑하지만   나는  세상 존재하는 모든 감정으로  엄마를 느낀다.       두줄요약 1. 엄마 사랑해 2. 나도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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