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te.com/view/20121009n06539
일본 침략역사 박물관, 결국 일본에 팔린다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 한국 정부가 매입 의사를 밝혀놓고도 '나 몰라라' 하는 동안 재정난을 견디지 못한 평화박물관 측이 일본 측과 매각절차에 들어가는 각서를 체결했다. 평화박물관은 일본군 땅굴진지가 복원된 곳으로 한국 정부에 의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이주빈
한국 정부가 '나 몰라라' 외면하는 동안 일본 침략 역사를 보관하고 있는
제주도 평화박물관(한경면 청수리 소재)이 결국 일본에 매각되는 절차에 들어갔다. 평화박물관 측과 일본 측 한 인사가 지난 9월 30일 일본
도쿄에서 매각에 따른 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평화박물관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308호다.
8일
<오마이뉴스>는 평화박물관 측과 일본의 한 인사가 맺은 평화박물관 매각에 따른 각서를 단독으로 확인했다. 지난달 30일 도쿄에서
작성된 '각서'는 한글과 일본어로 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서의 주 내용은 ▲평화박물관의 자산을 일본 측이 직접 매입하거나 대행할 수 있고
▲일본 측은 평화박물관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는 물론 충분한 보상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각서에는 ▲평화박물관 측은 일본 측이 요청하면 평화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가마오름 동굴진지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전쟁유산)으로 등록하는
데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가 사실상 외면하고 있는 가마오름 동굴진지를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전쟁유산 부문으로
등록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시간 끌며 사실상 알아서 매각하기를 유도"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은 "지난 3월 누적된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매각
의사를 밝히자 문화재청이 매입 의사를 밝혀 조치를 기다려 왔지만, 문화재청은 시간을 끌며 사실상 우리가 알아서 매각하기를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평화박물관은 이영근 관장이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은행빚까지 내어 약 75억
원을 들여 일본군이 지하 3층 구조, 총 2km 길이로 만들었던 지하요새인 가마오름 진지를 복원해 지난 2004년 2월 개관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엔 이 가마오름 진지 일대에 일본군 제58군 소속 111사단 병력 약 5000명이 주둔했다.
이
관장은 일본군이 이 진지 구축을 위해 강제징용한 아버지의 한을 풀고, 일본의 침략역사를 일깨우겠다며 가마오름 일본진지를 복원했다. 이외에도
평화박물관엔 조선총독부 정보과가 발행했던 <조선통보> 등 희귀한 일제시대 역사유물 2000여 점도 전시돼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알려지자 나라 안팎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근대역사 박물관을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짐이
너무 컸다. 갈수록 재정여건이 악화된 것이다.(관련기사 : 그가 사재 털어 일본군 땅굴 발굴한 까닭은)
악화되는 재정여건을 견디지 못하고 평화박물관은 지난 3월 일본에 매각 의사를
밝혔다(당시엔 이번에 각서를 체결한 일본 측 인사와 종교단체 등 두 곳에서 매입의사를 밝혀오고 있었다). 작년까지 매월 이자만 2천만 원을
충당해야 했고, 급기야 올해부턴 이자가 이자를 낳아 매달 5천만 원의 이자를 갚아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선조의 한과 피가 서린 문화유산을 일본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인터넷 청원운동까지 벌어지자 제주도는
등록문화재인 평화박물관을 국비를 들여 매입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수락하고 자산 감정 평가 등의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 9일 "역사·문화 공익적 가치 평가
반영 요청은 비시장 가치를 반영 요청한 것으로 부동산 매매 등에 유사 사례가 없음"이라는 공문을 제주도에 보낸 이후 평화박물관 매입과 관련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공문의 내용은 쉽게 말해 "문화재로 지정된 가마오름 일대 토지만 매입할 의사가 있고 기타 관련 문화재는 가치를
인정할 수 없기에 매입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정부가 외면하는 사이 일본 측은 적극 움직였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 외면하고 있는 사이 일본 측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오래 전부터 평화박물관에 관심을 보이던 일본의 한 인사는 정부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자 여러 조건을 제시하면서 매각의사를 적극적으로 타진해왔다.
지난
9월 초에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직접 제주도를 찾았다. 이 일본 측 인사는 "한국 정부가 박물관을 매수할 의사가 없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며
"우리에게 매수할 기회를 달라, 자산 평가는 물론 문화재 가치평가까지 해서 충분하게 보상해주겠다"고 평화박물관 측을 설득했다.
한국
정부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놓고도 외면한 문화적 가치를 일본 측이 보상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평화박물관 측은 결국 일본 측의 끈질긴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지난달 30일 도쿄에서 매각 절차에 따른 각서에 서명한다.
평화박물관 측과 일본 측 인사가 체결한 각서는 2012년 12월 1일부터
효력을 가진다. 일본의 침략역사를 온전히 복원해 한국 정부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문화재가, 한국 정부의 외면을 견디지 못하고 일본에 팔리게 된
것이다.
* '일본 침략역사 박물관이 일본에 매각되는 각서 체결되는 동안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나?' 기사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