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위대함

똥쌌응 작성일 12.11.25 14: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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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박지성은 1981년 2월 25일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1][2]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였고 6학년 때는 전국 대회에서 세류초등학교가 준우승을 차지해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안용중학교,수원공고를 거친 그는 명지대 김희태감독에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편집] 교토 퍼플 상가

[편집] 교토 퍼플 상가 이적

2000년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J리그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2000년 당시 한화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3]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상가로 입단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편집] 활약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동료들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FA컵 대회격인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때, 박지성과 교토 퍼플상가의 계약은 2002년 12월 31일자로 종료되었으나 팀의 컵대회 우승을 위해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찬사를 받은 바 있다.[4]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편집] PSV 에인트호번

[편집] PSV 에인트호번 이적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5]

[편집] 2002-03 시즌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6]

[편집] 2003-04 시즌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보멀이 박지성의 서툰 네덜란드어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출처 필요]

[편집] 2004-05 시즌

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프리미어리그 첼시로 떠난[7] 에레디비시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에레디비지에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다.[8][9]

이렇게 되자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2004-05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사를 보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지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최초로 골을 터뜨린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출처 필요]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의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퀴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다.[출처 필요]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프리미어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출처 필요]

[편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편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220px-Park_Ji-Sung_20080429.jpg magnify-clip.png2008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후의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UEFA 챔피언스리그 2004-05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10][11]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며 포효 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편집] 2005-06 시즌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12] 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13] 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 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이후 첫 경기를 가졌고,[14] 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15]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16] 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17] 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

[편집] 2006-07 시즌

150px-Park_Ji-Sung.jpg magnify-clip.png2008년 2월 10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전에서의 박지성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어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어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18]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19]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애스턴 빌라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 찰튼전에서 1골, 볼튼전에서 2골 (첫 멀티골)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20]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 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21][22]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23]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 시즌 일본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는 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편집] 2007-08 시즌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2007-08 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24]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25]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26]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27] 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28] 이로써 1-0 (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 (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29][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첼시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대신하여 오언 하그리브스가 출전하였고, 경기는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가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31]

[편집] 2008-09 시즌

200px-Sagna_throw_in.jpg magnify-clip.png2008 11월 아스널과의 경기에서의 박지성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과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이자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32]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 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골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 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 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 출장하여 골 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이 경기에서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33]



[편집] 2009-10 시즌

250px-Ji-Sung_Park_vs_Fulham.jpg magnify-clip.png2010년 8월 22일 풀럼과의 경기에서의 박지성

2009-10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은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시즌 첫 골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출처 필요] 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1 승리에 기여하였다.[출처 필요]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경기에서는 시즌 2번째 골이자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통산 4호골을 터트렸고 팀은 4-0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 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3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시즌 4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팀은 첼시에 밀려 준우승을 거두었다.

[편집] 2010-11 시즌

2010-11 시즌에서는 9월 22일 스컨도프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에서 시즌 1호골을 기록하였고, 10월 26일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과의 다음 라운드에서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으며, 11월 6일 리그 11라운드 울버햄튼 원더러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선제골과 종료 직전 결승골을 박지성 자신이 모두 기록하였다. 11월 28일에 열린 블랙번 로버스전에서는 두번째 골을 넣어 자신의 시즌 5호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12월 14일 아스널 FC과의 홈경기에서 헤딩 결승골을 기록, 자신의 한 시즌 최다골을 기록하였다.[출처 필요]

챔피언스리그 8강전, 첼시와의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끔으로써 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리고 2010-11 시즌 리그 36라운드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 35초 경 다비드 루이스를 제치는 패스를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에게 연결해 줌으로써 선제골을 어시스트 하였다. 박지성의 활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번째 우승을 확정하였다.[출처 필요]

그리고 2010-11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인 38라운드 블랙풀과의 경기에서는 베르바토프의 패스를 받아 시즌 8호골을 넣었고, 안데르송에게 패스를 연결하여 시즌 6호 어시스트를 성공하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출처 필요]

201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장하여 93분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팀은 바르셀로나에 3-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편집] 2011-12 시즌

2011년 8월 1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과의 2년 재계약을 2013년 6월까지 연장했다고 밝혔다.[34]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박지성은 한화로 81억 4,300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게 되었으며, 이는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낸드에 이어 팀 내 세 번째로 많은 것이다.[35]

2011-12 시즌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애슐리 영의 패스를 받아 시즌 1호골을 기록했다. 팀은 8-2 대승을 거두었다. 노리치 시티와의 7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3분 대니 웰벡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리그 1호 도움을 기록했다.

2011년 12월 27일 위건과의 18라운드 경기에서 선발 출장을 하여 전반 8분 파트리스 에브라의 패스를 받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으며 패널터킥도 얻어내어 리그 2호 도움을 기록하였다. 리버풀과의 FA컵 32강전에서 시즌 3호골을 기록하였지만, 팀은 1-2로 패배하였다.

2012년 2월 6일, 첼시와의 리그 23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0분경 대니 웰벡과 교체 투입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통산 200경기 출전을 하였는데,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92번째 기록이며,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2012년 2월 24일, AFC 아약스와의 유로파리그 32강전에서는 맨유 입단 후 최초로 선발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7시즌 동안 총 205경기 출전, 통산 27득점을 기록하였다.

[편집] 퀸즈 파크 레인저스

[편집]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2012년 7월 9일, 박지성은 이적료 500만 파운드 (약 88억원)로 2년 계약을 하며,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QPR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지성의 번호는 아델 타랍이 사용하던 등번호 7번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원래 박지성은 QPR의 비어있는 5, 8, 14번 중 8번을 선택했으나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결정 하에 7번을 달게 됐다.[출처 필요] 7번은 박지성이 선호하는 백넘버이며, 팀내 에이스의 상징이기도 하다.[36][37]

[편집] 2012-13 시즌

박지성은 2012-13 시즌 팀의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원정팀인 스완지 시티에게 5:0으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2R에서는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2012년 9월 26일 캐피털 원 컵 3라운드 레딩과 경기에서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3-2로 패배했다.


2012년 10월 22일 프리미어 8 라운드 에버튼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여 현재까지 부상자 명단에 올라있다. 가장 유력한 복귀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로 알려저 있다.

[편집] 국가대표 경력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2006년 FIFA 월드컵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 4강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2년 FIFA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프랑스와의 친선 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 골은 한국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38]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2번째 키커로 나와 골을 성공시켰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박지성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결국 박지성은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되었다.[39]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국가대표 은퇴 직전까지 주장을 맡았다.[40]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대표팀이 3승 3무라는 무패의 성적으로 본선 직행하는 데 기여하였다.[41] 2010년 5월 24일, 사이타마에서 펼쳐진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6분 득점을 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후반 7분 개인 드리블에 의한 두번째 골을 넣었다.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에 이은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로 이로써 안정환과 아시아 선수 중 월드컵 최다 골(3골)과 타이를 이루었다.

박지성은 2011년 AFC 아시안컵이 시작되기 전에 2011년 AFC 아시안컵이 끝나면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하였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대회 4강 일본전에서 박지성은 자신의 A매치 1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 대한민국 선수 중 역대 8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되었는데, 이 경기가 박지성의 마지막 A매치 경기가 되었다. 박지성은 우즈벡과의 2011년 AFC 아시안컵 3,4위전에는 뛰지 않았고, 2011년 AFC 아시안컵이 끝난 이후 그의 말대로 이영표와 함께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 1월 31일 오전 11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 은퇴 선언을 하며 11년간 뛰었던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42]

[편집] 경기 스타일

박지성은 최근,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이적 후, 포지션은 윙어 이다.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이며 중앙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다. '산소 탱크', '세 개의 폐(Three-lungs Park)'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출처 필요]

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패싱 능력과 스피드도 수준급이며,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 활용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또한 박지성은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면도 보이고 있다.[43][44] 공격 전개시에는 자신이 직접 볼을 처리하기보단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하는 팀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2009-10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팀의 측면 자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 2차전에는 중원에 배치되어 상대 공격의 핵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리그에서는 리버풀 FC과의 홈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결승골을 넣는 등 뛰어난 전술적 이해력도 보였다.

[편집] 별명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산소 탱크'라는 별명과 '멈추지 않는 심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출처 필요]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출처 필요] 최근 미드필드 중원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출처 필요]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봉산탈춤을 연상하는 세리머니로 봉산지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편집] 경기 기록

클럽 시즌 리그 컵 리그 컵 UEFA 경기 기타[45] 합계 경기 골 경기 골 경기 골 경기 골 경기 골 경기 골교토 상가 2000 13 1 1 0 2 0 ? 16 12001 38 3 1 0 1 0 ? 40 32002 25 7 4 1 0 0 ? 29 8 합계 76 11 6 1 3 0 ? 85 1222px-600px_Bianco_e_Rosso_bordato_d%27oro_con_iniziali_Nere.png PSV 2002-2003 8 0 0 0 ? 0 0 0 0 8 02003-2004 28 6 1 0 ? 10 0 1 0 40 62004-2005 28 7 3 2 ? 13 2 0 0 44 11 합계 64 13 4 2 ? 23 2 1 0 92 1722px-600px_Rosso_con_scudo_forcone_e_barca_Gialli.pn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2006 34 1 2 0 3 1 6 0 0 0 45 22006-2007 14 5 5 0 0 0 1 0 0 0 20 52007-2008 12 1 2 0 0 0 4 0 0 0 18 12008-2009 25 2 3 1 1 0 9 1 2 0 40 42009-2010 17 3 0 0 2 0 6 1 1 0 26 42010-2011 15 5 1 0 2 2 9 1 1 0 28 82011-2012 17 2 1 1 3 0 7 0 0 0 28 3 합계 134 19 14 2 11 3 42 3 4 0 205 2722px-600px_Blu_e_Bianco_%28Strisce_Orizzontali%29.png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2-2013 8 0 0 0 2 0 - 0 0 10 0 합계 8 0 0 0 2 0 - 0 0 10 0 경력 합계 282 43 24 5 16 3 65 5 5 0 392 56

최신 업데이트 : 2012년 10월 28일 (GMT+9)[46]

[편집] 국가대표팀 득점

스코어와 결과 리스트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득점을 먼저 기록하였다. (예: 스코어 1-0일 때 1이 대한민국)

# 일시 장소 상대 국가 스코어 결과 매치 형식1 2000-06-07 이란 테헤란 22px-Flag_of_Macedonia.svg.png 마케도니아 공화국 2-0 2-1 친선 경기2 2002-05-21 대한민국 서귀포 22px-Flag_of_England.svg.png 잉글랜드 1-1 1-1 친선 경기3 2002-05-26 대한민국 수원 22px-Flag_of_France.svg.png 프랑스 1-1 2-3 친선 경기4 2002-06-14 대한민국 인천 22px-Flag_of_Portugal.svg.png 포르투갈 1-0 1-0 2002년 FIFA 월드컵5 2005-06-06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22px-Flag_of_Kuwait.svg.png 쿠웨이트 4-0 4-0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6 2006-06-18 독일 라이프치히 22px-Flag_of_France.svg.png 프랑스 1-1 1-1 2006년 FIFA 월드컵7 2008-02-06 대한민국 서울 22px-Flag_of_Turkmenistan.svg.png 투르크메니스탄 3-0 4-0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8 2008-05-31 대한민국 서울 22px-Flag_of_Jordan.svg.png 요르단 1-0 2-2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9 2008-10-15 대한민국 서울 22px-Flag_of_the_United_Arab_Emirates.svg.png 아랍에미리트 2-0 4-1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10 2009-02-11 이란 테헤란 22px-Flag_of_Iran.svg.png 이란 1-1 1-1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11 2009-06-17 대한민국 서울 22px-Flag_of_Iran.svg.png 이란 1-1 1-1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12 2010-05-24 일본 사이타마 22px-Flag_of_Japan.svg.png 일본 1-0 2-0 친선 경기13 2010-06-12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22px-Flag_of_Greece.svg.png 그리스 2-0 2-0 2010년 FIFA 월드컵

[편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득점

# 일시 장소 상대 팀 매치 형식1 2005-12-21 세인트 앤드류스 버밍엄 시티 FC 칼링컵2 2006-04-09 올드 트래포드 아스널 FC EPL3 2007-01-13 올드 트래포드 애스턴 빌라 FC EPL4 2007-02-10 올드 트래포드 찰튼 애슬레틱 EPL5 2007-03-17 올드 트래포드 볼턴 원더러스 FC EPL6 2007-03-17 올드 트래포드 볼턴 원더러스 FC EPL7 2007-03-31 올드 트래포드 블랙번 로버스 FC EPL8 2008-03-02 크레이븐 코티지 풀럼 FC EPL9 2008-09-21 스탬포드 브릿지 첼시 FC EPL10 2009-03-08 크레이븐 코티지 풀럼 FC FA컵11 2009-05-02 리버사이드 스타디움 미들즈브러 EPL12 2009-05-06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아스널 FC 챔피언스리그13 2010-02-01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아스널 FC EPL14 2010-03-11 올드 트래포드 AC 밀란 챔피언스리그15 2010-03-21 올드 트래포드 리버풀 FC EPL16 2010-05-10 올드 트래포드 스토크 시티 FC EPL17 2010-09-23 글렌포드 파크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 칼링컵18 2010-10-27 올드 트래포드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 칼링컵19 2010-11-07 올드 트래포드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 EPL20 2010-11-07 올드 트래포드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 EPL21 2010-11-28 올드 트래포드 블랙번 로버스 FC EPL22 2010-12-14 올드 트래포드 아스널 FC EPL23 2011-04-13 올드 트래포드 첼시 FC 챔피언스리그24 2011-05-23 올드 트래포드 블랙풀 FC EPL25 2011-08-29 올드 트래포드 아스널 FC EPL26 2011-12-27 올드 트래포드 위건 애슬레틱 FC EPL27 2012-01-28 안필드 리버풀 FC FA컵

[편집] 퀸즈 파크 레인저스 득점

현재까지 득점기록은 없다.

[편집] 경력

[편집] 선수 경력

[편집] 국가 대표 경력

[편집] 수상 경력

[편집] 개인

[편집] 클럽

교토 상가22px-600px_Bianco_e_Rosso_bordato_d%27oro_con_iniziali_Nere.png PSV22px-600px_Rosso_con_scudo_forcone_e_barca_Gialli.pn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편집] 국가대표


 

 

 

 

 

?이상 다음에서 퍼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빠아님돠

세삼 어제 OT에서 낯익은 응원가가 들렸는데

 

설마설마해서..........

 

근데 아닌거같기도하고.....

 

FA컵 우승컵이없네요

 

레드냅감독이 FA컵 욕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유종의미를 거두고 은퇴를 바라고있습니다.

 

내심 어제 나오기를 바랬는데 ㅜㅠㅠㅠㅜㅠ

 

아프지마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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