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을 기부하신 어느 할아버지의 방

아이스키 작성일 12.12.24 23: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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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38명에 장학금, 민정기씨
자신을 위해서는 돈 안 써… 입고 있는 옷·세탁기도 주민센터 직원들이 사 줘
"사회에 모두 환원하고 가라는 아버님 말씀에 따를 뿐"

서울 종로구 필운동 골목길에 들어서자 나무 대문이 두꺼운 구옥(舊屋)이 나왔다. 집 마당엔 낙엽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1.5L짜리 생수병은 꽁꽁 얼어 있었다. 냉장고 문은 붉게 녹슬어 있었고, 그 안에 있는 반찬은 김치뿐이었다. 안방에는 이불과 신문,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방안에선 한기가 느껴졌다.

이 방의 주인은 민정기(77)씨. 최근 30억원 상당의 재산을 장학 재단으로 등기 이전 중인 자산가다. 하지만 민씨가 이날 입고 있던 점퍼와 바지는 모두 인근 주민센터 직원들이 사줬다. 집안의 세탁기와 청소기, TV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전 세탁기가 생기기 전까지 민씨는 손빨래를 했다. 김기선 사직동 주민센터장은 "매번 성금을 내시는데 본인한테는 전혀 투자를 안 해 보다 못한 직원들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회사 생활과 사업을 한 민씨는 1970년 즈음부터 이 집에서 아버지 고(故) 민병욱씨와 살았다. 25년 가까이 한동네에서 산 김종구(61)씨는 "'회사 생활과 장사 때문에 결혼 시기를 놓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형제는 모두 출가했다고 한다. 3남 2녀 중 막내아들인 민씨는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아침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해삼을 사와 논에서 잡은 우렁과 함께 밥상에 올렸다. 아버지가 2003년 병원에 입원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 수발을 들었다. 2005년 초 민씨 본인도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이틀 만에 퇴원해 병구완을 계속했다. 이듬해 어버이날에 그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잘했다'는 말 한 번 안 한 아버지가 훈장을 보여드렸을 때는 눈물을 흘리셨다"며 울먹였다. 아버지는 반년 뒤 세상을 떴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유달리 강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자식들을 모두 서울 등지로 유학 보냈다. 민씨는 전남대 문리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민씨는 아버지 재산으로 장학 재단을 세웠다. 재단 이름은 아버지 호와 이름을 따 '제봉민병욱장학재단'으로 지었다. 들어간 부동산은 공시지가로 20억원에 달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장학금을 받은 인원만 38명. 1억8335만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민씨는 "'세상에 태어나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평소 뜻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재단 재산은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김명좌 법무사는 "민씨가 보유한 땅과 상가를 모두 장학 재단으로 등기 이전하는 중"이라며 "시가로 32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민씨가 재산을 모두 내놓는 건 작년 말부터 건강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씨는 "요즘엔 꿈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며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인 장학 재단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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