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무침, 좌좀, 산업화 등
자신들만의 전투 용어 무기로
전라도·진보·소수자들 비하
극우적이고 남성적 성향
보이며
온라인 공간에서 세력 확장
zum 뉴스 한겨례 원문
아직은 정치세력화 가능성 없는
막장놀이 수준 불과하지만
우리 사회 안에 잠재돼
있는
폭력과 이기심 여과없이 드러나
그 전염성에 대한 우려 시각도
방문한 적은 없어도 이름은 많이 들어본,
인터넷 유머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 왔다. ‘일베충’(일베를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이라고 불리는 일베의 민낯이 궁금했다.
지난 15일 오후, 짧은 눈팅을 마치고 회원가입을 했다. 가입방법은 간단했다. 아이디, 비밀번호, 닉네임을 적고 이메일로 인증을
받았더니 회원가입이 끝났다. 공개된 다른 회원의 정보라곤 가입일시뿐이었다. 무모한 시도인 줄 알면서도 채팅방에서 대화를 시도했다.
“반가욤”이라고 했을 뿐인데…
그날 채팅방에 모여 있는 일베인의 수는 15~20명을 오르내렸다.
닉네임부터 여느 사이트와 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등 정치인을 조롱하거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닉네임을 쓴 이들이 눈에 띄었다.
“방가욤. 일베 처음 왔어요.”
말을 걸었더니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공격이 들어왔다.
“일베에 인사가
어딨어.”
“니 엄니도 일베 하는 거 아냐?”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자학과 욕설과
색드립(저급한 성적 표현)이 판을 쳤다. ‘왜 욕만 하느냐’고 묻자 “전방에 씹선비(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 “전방에
수류탄”이라는 글 수십개가 채팅창에 올라왔다. 경고하는 듯했다. “나도 똑같이 반말하고 욕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두들겨 맞았다. 만나자고 하자 한 일베인이 말했다.
“그냥 꺼지라고, 꺼지라고.”
채팅창은
‘홍어(전라도 비하), 운지(자살하다는 뜻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지(여성 비하), 좌좀(좌익좀비), 오유(일베와 대척점에 서 있는
유머사이트. ‘오늘의 유머’의 줄임말)’ 등 일베에서 주로 쓰는 용어들과 욕설로 가득했다. 맥락 없는 말들이 오고갔다.
“일베
처음이지?”
‘피타’(일베 내 닉네임)라는 일베인이 그나마 말을 받아줬다. 그가 선심쓰듯 알려줬다.
“친목은
밴(강제탈퇴를 의미)이야. 아이피 차단돼서 글 못 씀.”
‘피타’ 역시 계속해서 욕으로 도배했다. 낄 틈이 없었다. 사이트 내에서
친목질(인사를 나누는 친목행위 비하)을 금지하고 있는 일베 회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일단 접었다.
일베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2010년 독립한 극우 성향의 인터넷 유머사이트다. 애완견과 성행위하는 사진을 찍어 올리고, 여성·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전라도 광주 출신의 걸그룹 가수 수지의 입간판을 상대로 성희롱을 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폭동’·‘홍어무침’이라고 부른다. 홍어는 전라도 광주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담은 용어다. ‘광주폭동’을 ‘과감하게’ 진압했다는
의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전땅크’라고도 부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남성 사용자가 가장 많고 20~40대까지도 일베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베는 매우 남성적인 공간이다.
일베를 보는 여러 시선 중에 공통된 것은 ‘원시적인 형태의 폭력성’이 넘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일베의 용어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상으로 매우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이는 일베가 다른 유머 사이트들과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점이다.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일베의 폭력성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물적 토대나 학력을 무시하고 생물학적인 수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본능에 가깝게 모든 사람을 동물적 수준으로 끌고 내려가 누구나 똑같은 수준에서 싸우고 있다는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각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황에 맞는 정제된 언어를 구사해온 일반인들이 일베에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오고가는
폭력 속에 싹트는 대리만족?
폭력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폭력의 거울은 자학과도 닿아 있다.
일베는 스스로를 ‘병신’이라고 부른다. 일베의 위악적 행동의 숨은 뜻은 ‘이성과 지성에 대한 부정’이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일베는 그들만의
용어를 만들어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예를 들어 일베 게시글의 ‘추천’과 ‘비추천’을 의미하는 단어는 각각 ‘일베로’와
‘민주화’이고, 일베 회원들은 자신들과 동조하지 않는 다른 사이트에 가 충돌하고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산업화’라고 쓴다. 동시에 일베는, 마치
운동권의 진영논리가 그러했듯이 대립구도를 만들어 일베 아닌 다른 누리꾼들과의 전투를 통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세를 확장한다.
지난 14일 새벽 2시 경기도 군포의 남궁아무개(20)씨와 부산의 대학생 이아무개(21)씨도 ‘일베충’들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일베의 몇몇 유저로 추정되는 이들이 다음 카페 ‘여성시대(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의 회원인 남궁씨와 이씨를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초대해 욕설을 퍼부었다.
남궁씨와 이씨는 카페 회원들과 게임을 함께 하기 위해 카페 게임게시판에 적어둔 자신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일베가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초대받은 카톡 단체대화방에는 ‘노무현’, ‘나는 자연인이다’, ‘노짱’, ‘일베’, ‘민주아’ 등 24명이
있었다. 이들의 닉네임은 일베에서 자주 쓰는 용어들이었다. 남궁씨가 경찰에 이들을 고소하기 위해 저장해뒀다는 12분간의 대화록 전문을 보면,
주동자 격인 ‘최아무개’가 “산업화자료”라며 약 30장의 낙태한 태아 사진 등을 보낸 기록이 있다. 자신을 ‘산업화당한 오유인’이라고 표현한
대화명 ‘담배한대피아제’가 남궁씨에게 경찰에 고소하는 방법을 설명하자, ‘최아무개’는 “민주화 당함”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남궁씨가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베를 통해 드러난 극우적 현상이 단순한 인터넷 하위문화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베가 새로운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우리 사회 안에 잠재돼 있던 폭력성이 일베를 통해 드러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일베에서 나타나는 폭력적
문화에 대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기득권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타자, 특히 소수자들을 배려하자는 주장에 반해 자신이 가진 작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그 자체가 싫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들은 일베에서 오고가는 폭력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눈팅만 한다는 서울의 한 명문대 수학과의 김아무개(26)씨도 ‘어떤 쾌감’ 때문에 일베를 한다. 일베는 회원이
아니라도 글을 읽고, 채팅을 할 수 있다. 지난 10월 이후 거의 매일 시간날 때면 일간베스트게시글 위주로 일베 글을 읽는다는 김씨는 회원은
아니다. 전라도, 여성,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은 안 읽거나 무시한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읽고 만족하고 있었다. 김씨는 “일베가 하는
‘병신’ 짓이 좀 웃기고, 나의 보수정치적 성향과 잘 맞아서” 일베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김씨처럼 일베를 오가는 이들에게는 일정한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금기시해온 친일 발언,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하는 폭력 등을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거부감을 줄일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민
교수가 말했다.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 윤리와 반윤리의 기준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앞으로 일베는 어떻게 될까? 일부에서 염려하듯 파시즘적으로 흐를 가능성은 없을까? <파시즘>을 쓴 장문석 영남대 교수는
파시즘이란 용어를 남용하면 안 된다며 일베의 파시즘화는 ‘기우’라고 판단했다. 일베의 정서가 파시즘과 유사한 정서를 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대중들이 파시즘에 매력을 느낄 때가 기존 의회체제에 대한 환멸감을 느낄 때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파시즘적 정서가 유행할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파시즘은 민족공동체를 통해 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던 만큼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마크 네오클레우스의 <파시즘>을 번역한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의 정준영 박사도 같은 생각이다. 정 박사는 파시즘과의 유사성을 우려하면서도 일베를 그들만의 놀이로 규정했다. “‘전땅크’니
‘홍어’니 역사적인 맥락을 본질화한다는 부분에서 일베는 반동적이다. 그 점이 파시즘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온라인상 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유아적인 그 놀이가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경배 교수는 황우석·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현상과 일베 현상을 비교했다. 언론이 일베가 보이는 극우적 목소리를 언론에 보도할수록 일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어느 순간 일베의 정체성이 희석돼 결국 사그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디시인사이드에서 일베가 나왔듯이, 일베 내에서 또 극단적
목소리를 가진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하위문화가 탄생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 교수가 말하는 일베의 미래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욕망에 대해 누군가 대신해서 떠들면 자극을 받는다. 익명성 속에서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진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단계적으로 어떤 자극을 원할 뿐 자신의 정체성이 노출되는 것을 싫어한다. 전라도에 대한 혐오나 극우적 발언을 표방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일베로 섞이면서 그 수가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지금의 일베는 사라질 것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