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고구려의 기상을 이은 고려의 별무반(別武班)
①소속 : 고려
②병과 : 보병 / 기병 / 승군
③인원 : 약 17만 명
④시기 : 1107년 ~ 1109년
⑤강점 : 다양한 병종의 상호 보완, 대기병전 특화
⑥약점 : 미검증
고려가 방어적인 군대의 한계를 느껴 만든 군대가 바로 별무반이다.
별무반은 신기군(神騎軍), 신보군(神步軍), 항마군(降魔軍)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중 중심이 된 것은 단연 기병대인 신기군으로 거기에 도탕, 경궁, 정노, 발화군 등의 특수 병과가 추가로 있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양인만이 군적에 오르던 당시의 군 제도에서 별무반에는
산관(관품은 있지만 하는 일이 없는 관원), 상인, 노비까지 징병의 대상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즉, 별무반은 고려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거국적인 군사 조직이었고
징병된 자 중 말이 있는 자는 신기군에 없는 자는 나머지 병과에 집어넣었다.
이는 당시 사병을 거느리고 있던 문벌귀족의 세력을 약화하고자 하는 예종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별무반의 인원은 무려 17만에 달했으며 그 군율은 과거 거란과의 전쟁 때와 같이 하여 무척 엄정했다고 한다.
윤관은 이 별무반을 이끌고 당시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했던 여진과의 전투에 나서
여진을 토벌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완옌부 세력을 함경도 일대에서 완전히 축출할 수 있었다.
윤관은 그곳에 9개의 성을 쌓고 그 방어를 별무반이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후 여진의 세력은 더욱 커져 방어가 어렵게 되었고 여진에서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며 해당 지역의 반환을 요청하자 고려는 동북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그 주둔군이었던 별무반 역시 결성된지 불과 1년만에 해산되고 말았다.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 북벌을 목표로 한 최후의 군대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 이종에서 자주 거론되는 척준경 역시 별무반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장수이다.
★바다★
♣조선 최후의 자존심 조선 수군(朝鮮 水軍)
①소속 : 조선
②병과 : 해군
③인원 : 약 5만 명 (조선 전반)
④시기 : 조선
⑤강점 : 함포 성능, 연안 전투
⑥약점 : 항속, 원양 항해
설명이 필요없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강의 군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량해전은 단 13척의 배로 적선 133척을 무찌른 실로 기적적인 승리였다.
이날 분멸한 적선의 수는 모두 31척, 격침되지는 않았으나 전투능력이 손실된
적선의 수는 92척에 달했으며 물리친 적의 수는 모두 1만8천명에 이른다.
당시 일본군은 이순신의 파직과 원균의 패전으로 인해 한산에서 여수까지
재해권을 확대하고 수륙병진을 통한 도성장악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명량대첩은 바로 그 일본군의 전략을 모조리 무산시킨 일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과
휘하장수들, 이름없는 군사들과 백성들, 그들의 강인한 투지와 저력이 이루어낸 투지였다.
또한, 이후 정유년에서 무술년으로 이어질 수군재건과
23전 23승에 빛나는 전승신화, 그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