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아버지에 개같은 아들

건국대통령 작성일 13.04.03 11:22:45
댓글 10조회 13,656추천 5

 

 

심심해서 잘난 아버지에 못난 아들 연개소문-연남생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가볍게 심심할때 읽어보세요 ~

136495587216295.jpg

연개소문-고구려 말기의 독재자이자 혹은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

저기 위에 북조선애들은 민족의 영웅취급을 받으며 우리나라에선 의견이 살짝 갈린다.역사덕후들은 그를 스탈린으로 비유하는 안티세력이 존재 ㅋㅋ

동부 대인인 연태조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뒤를 이어 동부 대인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후에 정변을 일으켜서 영류왕과 반대파 귀족들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옥좌에 앉혔으며 대막리지에 올라 정권을 휘둘렀다.

136495588719707.jpg

칼을 다섯 자루 차고다니며 말을 탈때는 사람을 밟고 타고내렸다는 권력자.또한 정변을 일으켜 왕을 죽인것을 보면 역시나 스탈린과 비교되도 할말 없을정도로 호전성과 과격함을 지녔다고 볼수도 있겠다.

정변을 일으키게 된 사정은 이러하다.

아버지의 동부대인 지위를 물려받은 그는 소싯적 흉폭함을 그대로 발휘했다.

136495589763487.jpg

당시의 영류왕은 그를 경계했으며  마침내 영류왕은 여러 대인들과 함께 모의하여 연개소문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사전에 이 계획이 누설되어 연개소문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자 연개소문은  남쪽에 자신이 관할하던 동부의 군사들을 전부 모아 놓고는 술과 음식을 성대히 차린 후에 대신들을 불러 들여서 함께 군대 사열식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이에 참석하기로 했던 대신들은 서열식에 도착하는 족족 연개소문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일본서기에는 이때 죽은자가 180명이요

136495591022921.jpg

영류왕을 죽이고 나서는 분이 풀리지않았던지 그 시신을 수토막으로 토막내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당나라와는 호전스러운 그의 성격덕인지 자연스럽게 악화되었고

당연히 자기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던 영류왕을 죽인 당태종은 빡이쳤다136495375737926.jpg

야이 개시키야!'자기 임금을 죽이고 국정을 문란케 하는 역적이야 넌!

이라고 비난하는 당태종

연개소문도 처음엔 위협을 느꼈는지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며 도교의 교류를 이루기도 하였다.

허나 이후 신라에 대한 공격의 문제로 당태종의 명령 듣기를 거부했고

이에 당태종은 연개소문이 자기 나라 왕을 죽이고 신하와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황제의 명을 거역한다면서 노발대발하였다. 당나라 조정은 고구려를 정벌할 뜻을 밝히고는 사신 장엄을 보내 재차 연개소문을 나무랐으나 연개소문은 되려 장엄을 잡아서 가두어 버렸다.136495395058521.jpg
빡이 너무 쳐서 미칠지경이였던 태종은 645년 친히 고구려정벌에 참가했다.고연수가 이끄는 15만을 작살내고 요동성을 박살내며 승승장구 하던 태종의 군대.그리고 그를 막아선 136495414776069.jpg
막아낸것이 바로 안시성주!(양만춘이라는 이름인지는 사실알수없음)결국 그후에도 뜻을 이루지 못한 태종은 후회속에 병사했다.이후엔 태종아들 고종의 공격또한 몇차례 격퇴했으나 점차적으로 쇠약해져가는 나라 살림속에 665년 136495436068965.jpg
연로해가던 연개소문역시 생을 마감했다.고구려 멸망에 대한 책임에서 그가 자유로울순 없다고 봐야할것이다.왕을 비롯해 신하들을 절반넘게 처죽인 정권이 안정적일수는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저렇게 급진적으로 정권을 잡으면 국가는 분열가능성이 어느정도 존재하는데 당나라 태종을 막아낸 일등공신 안시성주는 연개소문과 상당히 적대적 이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주필산 전투에 동원된 고구려주력군은 안시성군과 연합하지 않고 단독 행동을 하다가 섬멸당했다는 분석이 있다.136495465518081.jpg
그러나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에는 송나라 신종이 왕안석과 함께 연개소문과 태종의 다툼을 다루는 일화가 기록되있는데왕안석이 태종의 패인을 연개소문의 재주가 비범하여 태종이 패한것이다라고 평가하는 대목이 나오고 있으며 당태종이 중국에서 가장 킹왕짱 임금으로 평가받는 입장이고 그를 패배시킨것은 연개소문이니 중국쪽에서는 어느정도 포스쩌는 평가를 받는듯 하다.다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선 비난도 상당한데 삼국사기에선 재주는 뛰어나지만, 나라를 올바르게 받들지 못했고 성질이 더러워서 끝내 대역죄까지 저지른 인물'이라고 평하였다.거기다 병으로 죽은거 마저 반역자 치곤 운좋다 새퀴야 ㅋㅋ라며 깐다일연의 삼국유사에서도 연개소문을 까고있는데 수양제의 신하가 고구려를 멸망시켜 양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연개소문으로 태어났다고 할정도ㅡㅡㅋ고구려의 멸망책임에 대해 자유로울순 없겠지만 그래도 전 중국의 지배자이자 역대 중국 최강으로 뽑히는 당태종과 싸워이긴 그를 호랑이에 비유하는건 무리가 없을듯. 136495514441709.jpg
이에 반해 그아들 연남생(연남건이든 뭐든 전부다)연개소문 사후에 지위를 이어받고 고구려를 팔아먹은 놈대막리지가 된 연남생은 대권을 장악하고 국정을 맡게 된 후, 지방으로 가서 여러 성을 순시하게 되었다. 이때 두 아우인 연남건과 연남산을 남겨두어 뒷일을 맡아 보도록 하였다. 근데 꼭 이간질 쟁이들이 문제연남건에게 이간질쟁이들이 와서 연남생을 갈겨버리자고 부추기지만 연남건은 거부한다.근데 연남생은 그보고를 접하고 두 동생들을 의심했고 밀정을 보냈는데 그놈이 어지간히 칠칠지 못해서 잡혔다결국 형제들 사이가 개판이 됬고 666년, 연남건과 연남산은 결국 정변을 일으켜 수도를 장악하였고 연남생의 아들도 죽여버렸다. 대막리지가 된 연남건은 연남생을 토벌하고자 했고 연남생을 국내성에 숨어서 아들 연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해달라고 졸라뎄다.그리하여 연남생은 국내성을 비롯해 6개성주민과 남소성 창암성의 백성을 이끌고 항복해서 요동도독의 지위를 받았으며 당나라의 앞잡이가 됬고 연남건의 심복인 승려는 평양성의 성문을 열기도 했다.이후엔 식읍3천호를 받고 고구려 유민을 달래기 위해 안동도호부의 관리로 살다가 46세의 나이로 죽었다. 삼국사기에선 연개소문과 연남생 다 반역자라고 욕을 하고 있으며 그나마 연개소문은 당나라와 싸운점은 높게 평가하나이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놈정도면 개같은 자식의 케이스에 적당할듯
  
건국대통령의 최근 게시물

엽기유머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