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할머니

똥꾀 작성일 13.04.23 01: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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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을 위한 봄 나들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니 낯익은 고향사람들의 모습에 정말 반가웠다. 한국 생활 몇 년이 지나도 푸들지 않는 까무짭짭한 나그네들의 얼굴들과 악센트 높은 여인네들의 북쪽 사투리는 그저 정겹게만 들려왔다.

 

할머니1 : 그래 집에는 누가 있소? 다 왔소?

할머니2 : 다 왔시오~ 아들 먼저 와서 제 식구들 몽땅 델꾸 왔시어, 에구, 시름 낫디~~~

 

뒤 좌석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은 초면에 만나 통성명 하는 분위기였다. 말투를 보니 한 분은 함경도, 한 분은 평남도 쪽에서 오신 것 같았다.

 

오랜 만에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앉았는데, 무정한 북쪽 태생 할머니, 순식간에 분위기를 뒤집어 놓으셨다.

 

할머니1 : , 근디 이번에 그... 여기서 뭐 진돗개 하나 풀어놨다나 어쨌다나? 거 뭔 소리여? 남은 대포 쏘고 총 쏘구 하는데 개 한마릴 갖구 뭘 한다구 그런다오?

 

순간 하하하!” 평남도 할머니와 난 동시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배그러쥐고 웃다 웃다 평남도 할머닌 기도에 숨이 고르지 않아 콜록 콜록 기침까지 하셨다. 너무 웃어대니 함경도 할머닌 조금 언짢은 표정을 지으시며, “, 뭐 그리 좋다구 숨이 넘어가게 웃소??” 하고 퉁명스럽게 던지셨다.

 

보아하니 함경도 할머닌 한국에 오신지 얼마 안되 신 듯 했다. 난 할머니께 진돗개는 개가 아니라 진돗개 이름을 따서 만든 경보조치이며, 또 나라에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이 경보를 발령한다고 설명해드렸다. 그제야 할머니도 어이없으신 듯 허허허 소리 내어 웃으셨다.

 

재미있게 깔깔 웃으시는 할머니를 보니, 나도 처음 진돗개를 진짜 개로 알았던 생각이 난다. 다행히 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금방 알았지만 컴퓨터 활용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이야 어련하랴,

 

한바탕 웃으시고 난 두 할머니 연이어 수다를 이어갔다. 서로 어디서 사는지, 누구랑 같이 사는지, 생활비는 어떻게 쓰는지 등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셨다. 그러다 이번엔 평남도 할머니가 평일엔 집에서 뭘 하냐고 함경도 할머니에게 물으셨다.

 

그러자 한참 멍한 표정으로 버스 한 구석만 응시하고 계시던 함경도 할머니, 순간 고개를 홱 돌리시더니 평일이 뭐요?” 하고 툭 내쐈다.

 

순간 또다시 웃음이 터져 버린 버스 안, 이번엔 우리 일행을 인솔하러 온 시청 아저씨들까지 합류해 온 버스 안이 떠나 갈 것 같았다. 내 고향 함경도 할머니 오늘 참 우리에게 정말 큰 웃음 주신다.

 

평일과 휴일의 구별이 없는 고향에선 통하지도 않는 말을 어찌 알 수가 있으랴, 언제 한번 편히 쉴 새도 없이 생존전투를 벌려야 하는 고향 사람들 생각에 유쾌하게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사르르 고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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