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최대의 적.

새로운오후 작성일 13.05.22 22:54:52
댓글 30조회 16,376추천 13

1993년 남들보다 1년 늦게 입학한 대학.

'우리들의 천국'의 최수종이나 하희라 뭐 이런 학창 생활을 생각 했었는데

이건 뭐 강의실에 앉아보니까 실제로 코흘리는 놈이 있질 않나,

여학생이라고는 무슨 초등학생 삘이 풀풀 풍기는 섹시함과는 전혀무관한 애기 몸매들이 주로 눈 앞에 왔다갔다 하는게 현실은 드라마와 무척 다릅디다.

 

대학 생활하면 떠올리는거... 뭐시냐 미팅도 하고, 생맥주도 마시고, 다양한 동아리활동 OT, MT 이런건데, 실상은 입학하고 얼마안되서 중간고사... 잠시 쉴만하면 기말고사...

공부는 원래 취미가 하나도 없기때문에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를 버리고자 선택한게

군 입대 였습니다.

 

논산 기초훈련 받고 배치받은곳은 육군 화학학교...학교...학교...?

약간의 훈련과 군사적 문화만 빼면 강의실에서 교육 받는게 대학 생활과 거의 유사합니다.

근데 문제는 매주 토요일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낮으면 육체적인 징벌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때도 구타는 없다 없다 하면서도 약간은 있었구요. 

아니 공부를...바가지가 안에서 새는데 군대라고 잘 하겠습니까?

공부하기 싫어서 온 곳인데 여긴 시험을 못보면 구타까지 존재하는 막장 지옥이였던 겁니다.

 

그래 저래 전역을 하고 공백기 동안 간판하던 친한 형님 일을 도우며 간판기술도 배우고, 틈틈히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복학을 했습니다.

 

독하게 맘먹고 이젠 공부를 좀 해보자 해서 강의실 맨 앞 교수님과 독대하는 듯한 자리만 골라잡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칠판을 째려보길 몇일 했는데...

점점 각오는 흐지부지되고 자리가 뒤로 뒤로 옳겨 지더군요.

바로 그때쯤.

말도 별로 섞지 않던  뿔테 안경의 학구파 여학생 진숙이가 갑자기

 

"오빠!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여기 부분좀 해석좀 해주세요."

'아니! 얘가 왜? 나 한테...? 이 어려운 책을?  내가 공부 잘하게 생겼나?'

차마 모른다고는 못하고

 

"진숙아! 내가 쉽게 가르쳐 줄 순 있어. 하지만 그러면 네께 되질 않아. 사전 찾아보고, 그래도 않되면 얘기해~"

고개 푹숙인 그 21살 여학생은

"네 오빠"

'휴~'

 

함께 복학한 친구들과 즐겁게 학창 생활을 영위 하던 몇일 후,

가장 어려운 담당교수님의 공학계산 강의를 당연히 멍 때리고 흘려 보낸 뒤,

쉬는 시간에 담배나 하나 피러 갈까하는데...

글쎄 눈치없는 이 계집애가 또 전공책을 들고 제 앞에 오더군요.

"오빠! 아까 교수님 말씀 중에 요기가 어려워요."

 

속 마음은

'야~ 솔직히 난 너보다 더 몰라, 쪽팔리게 왜이래 증말!'

하지만 꾸욱 누르며

 

"진숙아!  너 교수님 말씀하실 때 잘 들었어야지. 답답하다. 그리고, 너가 조금더 생각해봐... 풀수 있을거야!,  생각을 먼저 해보고 그래도 않되면 다시 와 그래야 정말 네꺼 된다~"

 

얘가 뭔가 생각하는 눈치더니 처연히 답하고 돌아섭니다.

"네! 오빠"

'휴~ 다행이다."

 

아니 나도 학교 생활에 체면이 있는데 꼭 사람 많을 때만 이 기집애 어려운걸 들고 와서

골탕을 먹이는것도 아니고, 이젠 살살 화가 납디다.

 

그러길 또 몇일 후.

또 뭔가를 물어 보길래

"진숙아! 내가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얘기하자"하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내 등 뒤에 대고 비수를 꽂는 한마디 외침!

 

"오빠 모르는거죠?"

 

 

복학생 최대의 적 = 눈치 없는 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음부턴 이 녀석에게 먼저 선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진숙이 내가 한번 맛있는거 사주고 싶다"

"정말요? 언제요?"

"내가 지금은 약속이 있으니까 다음에 사줄께~"

"네^^ 오빠"

 

그리고 또 볼때마다

 

"우리 찐숙이 맛있는거 사줘야 되는데..."

"네 저 맛있는거 먹고 싶어요^^"

"오빠가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나중에 꼭 사줄께~알았지?"

"네 정말 약속하신거에요^^."

 

이 말을 한 30번쯤 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매번 기대에 찬 우리 찐숙이의 초롱초롱한 눈빛. 그 눈빛.

그러면서도 항상 못 사주는 다양한 레파토리의 이유들...

 

졸업식 하는날 양복 잘 차려입고, 동기들과 즐기던중 또 진숙이를 만났습니다.

 

"어이쿠! 우리 찐숙이 맛있는거 사줘야 되는데~"

 

난 그때 결국 보았습니다. 진숙이의 힘없는 눈빛을...그리고 처연한 작은 목소리의 대답.

 

"네! 오빠 T.T"

 

우리 찐숙이 맛있는거 사줘야 되는데...

지금 어디서 나 처럼 늙어갈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공부를 잘 해야 하는 이유 *

136923085334048.jpg

 

136923088110414.jpg

 

새로운오후의 최근 게시물

엽기유머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