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이십대 후반.. (스물일곱이면 후반인 건지 중반인 건지 ㅡㅡ)
암튼 그렇게 먹었네요. 남친은 동갑이고요.
음... 남친은 자상한 편이고, 저는 성질은 막 부려도 뭘 바라지는 않는
그러니까 뭐 명품빽이니 뭐니 제가 사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는
좀 뭐랄까, 보통 여자들이랑 좀 달라요. 그러니까 무난하달까...
남들은 빽을 몇개씩도 받고 뭐 그렇던데 저는 그런 거 사준다고 해도
부담보다도 일단 그돈주고 가방 하나 사는 게 아까워서 못살 것 같고
아.. 사준다고 한 적도 없구나, 어쨌든 전 그래요.
더치페이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남친이 더 내는 걸로도 그냥 그걸로도 만족하고
내가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사귄다 생각하는 정도니까..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사귄다니까 용돈이라도 받으면서 사귀는 것 같이 들리는데
그런 거 아니고요 ㅎ 그냥 밥 먹고 영화보고 똑같아요.
밥도 항상 뭐 백반 같은 거, 어쩌다 3만원 정도 줘야 하는 피자 먹을 때면 고민하는 편.
그러니까 저는 선물 같은 건 뭐 비싼 거 바라지도 않고요, 그런 인간인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좀 이상해서요.
남친이 자상한 편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편지도 자주 써주고
100일, 200일, 300일.. 다 챙겨줬어요. 그리고 얼마전엔 500일이었는데
제가 500일에 받은 선물이 뭔 줄 아세요?
뭘 기다랗게 포장을 해왔길래 이제 곧 장마철이니까 예쁜 장우산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건 우산이 아닌... 태극기였어요..
뭐 거의 대부분 100일은 다 챙기고 200일부터는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남친은 500일까지 다 챙기긴 챙겼어요. 날짜 기억해주는 것만 해도 고맙죠..
그런데 전 차라리 그냥 편지만 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태극기가 쓸모없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커플 사이에 주고받는 선물로는 아닌 것 같아서..
아무리 500일이고 오래 만났다지만 뜬금없이 태극기 -_-
웬 태극기냐고 하니까 길거리에서 팔길래 내 생각나서 샀다고,
국경일은 꼬박 챙기는 커플이 되자면서.. ㅡㅡ
그래서 태극기 당연히 집에 있다고 했더니 그래도 새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제가 그냥 받기만 하고 이러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이번에 넥타이 사줬거든요.
6만원 정도 줬어요. 저도 500일이고 하니 큰돈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저도 그냥 많은 거 안 바라고 5만원 안팎 선물이면 만족했을 텐데
아니면 차라리 편지만 써줬으면 그게 나았을 텐데
도대체 스물일곱에 500일에 태극기가 이게 기념일 선물인지 장난인지 뭔지..
제가 이런 게 처음이면 그냥 웃고 넘어가겠는데
400일에 받은 것도 이상했어요.
물론 챙겨주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긴 한데... 편지는 받을 때마다 항상 좋은데요,
편지와 함께 주는 선물이 매번 이상했어요.
400일에 받은 건 연습장이었어요. 진짜 두꺼운 연습장.. 4개...
400일이라고 4개... 서로 영어공부 열심히 하자면서 빽빽이로 다 채우자고.. ㅡㅡ
맘 같아선 40개 사주고 싶은데 그거 다 채우려면 저 힘들까봐 그냥 4개만 산 거라고.
300일에 받은 건 옷걸이 30개.. 옷이 아니라 옷걸이요.
옷걸이, 그냥 보통 옷걸이, 플라스틱으로 된 거 그거 30개...
옷 잘 걸으라고... 그래야 오래 입는다고..
아 이거 쓰다보니 진짜 이상하고 열받네요.
그냥 혼자 생각하던 거고 워낙 바라는 게 없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까 뭐 판에 은반지 커플링 창피하다는 분들 있던데
전 그거 이미 100일에 받았고요... 그나마 그게 가장 선물같은 선물이었고
200일부터 이상했네요, 되짚어보니까.
200일날 받은 게 그거였어요. 워셔액 20개. 제가 차가 있거든요.. ㅡㅡ
그래도 생일에는 선물다운 선물받았지요.. 지갑 이십만원 정도 하는 거.
제가 지금 액수를 따지는 게 아닌 건 아시죠?
이십만원이라 괜찮고 워셔액이라 안 괜찮다는 거 아닌 거 아시죠?
그러니까 제 말은 연인 사이에, 그리고 기념일에 어울리는 선물을 말하는 거예요.
차라리 장미꽃을 접어서 꽃다발을 만들어줬다든가 했다면 그걸로는 갸우뚱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돈이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연인 사이에, 그리고 기념일에 어울리는 선물이니까..
솔직히 다른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태극기는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혹시 돈이 없거나 아까운데 챙기긴 챙겨야겠어서 그러는 걸까요?
돈이 없는 건 괜찮은데 아까워서 그러는 거라면 서운하고, 차라리 편지만 주는 게 더 낫겠는
그런 거 뭔지 아시죠? 차라리 그게 더 값어치있게 느껴지는..
편지는 감동인데 거기에 태극기가 합쳐지니 편지에서 받은 감동까지 떨어지는 뭐 그런 거..
워셔액도 옷걸이도 연습장도 날 위한 거라고 쳐요, 그런데 태극기는...
진짜 별생각 없었는데 쓰다 보니 열받네요.
태극기를 선물이라고 여자친구한테.. 아 진짜 태극기를...
돌아오는 현충일에 요긴하게 쓰라고 준 걸까요? 아님 광복절에 자기 생각하라고 준 걸까요?
아무리 제가 무덤덤하다고 해도 정말 이건 좀 아닌 것 같네요.
마스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