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무명배우의 이야기

검선 작성일 13.05.25 11: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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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무명배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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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지구의 자선병원에서 태어났다.

경험이 부족한 아마추어 의사의 실수로 왼편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됐다

 

바보같은 말투와, 이상한 생김새, 특이한 이름 때문에 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육체적 장애도 없고 음악적 재능도 타고난 그의 동생에 대한 부모의 편애로

집에서도 왕따를 당했다.

 

12살 때는 그의 부모가 이혼했다.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으로 얼룩졌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인맥도 자본도 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역은 별로 없었다.

 

그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화관 안내인, 수위,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배우 보디가드...

시시한 단역 배우와 포.르노 배우를 오가기도 했다.

 

어느덧 배우로써는 가능성이 희박해보였던 서른 살

사랑하는 아내와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였다.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아 아내는 1.15 달러를 주고 작은 케이크를 사 왔다.

생일 축가를 부른 뒤,  “소원을 말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빌었다. “제발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는 운명적으로 1975년 3월 24일 한 권투 경기를 보았고 비장한 각오로 각본을 써냈다.

그리고는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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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각본에 제작자는 7만 5천 달러의 거금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25만 5천 달러까지 각본료가 오를때까지 거절했다.

 

"이 대본을 사용해 달라, 대신 나를 주연으로 써야 한다!"

 

무명배우를 쓰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제작자들은 대신에 단 100만달러만을 지원했고

각본료는 약 2만 달러로 ‘폭삭’ 낮아졌으며, 대신 그는 영화 흥행 수입의 10%를 받기로 했다.

 

영화는 28일 만에 만들어졌다.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예외 없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들 중 태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극장문을 나섰다.

 

그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의 이름은 <록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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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이름은 실버스타 스탤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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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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