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던 642명의 재일동포 청년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명문대 학생들과 엘리트 청년들이었다.그들은 안정된 현재와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나라'를 택했다.그 선택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언어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퇴각명령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투에 임하다가 죽어간 청년도 있었다.결국 153명의 청년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전사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1952년 4월 샌프라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한 일본이 허가 없이 떠난 청년들의 재입국을 거부한 것이다.242명의 청년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았다. 김운태 씨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일본을 떠나올 때 그에게는 어린 딸과 만삭의 일본인 아내가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가족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불행이었다. 우리의 조국을 위해 싸워주셨던 참전용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