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죠....

maika 작성일 13.07.04 16: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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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 가입한지는 오래되었는데, 그저 눈팅만 하다보니 계급은 형편없네요.

요즘 자작글이 유행인지라 저도 제가 살아온, 길지는 않지만 인생 반정도를 살아 본 경험을 좀 써볼까 합니다.

 

다들 그렇듯이 저 또한 20대 초반에 어떻게, 뭘하며 살아야 하나 하며, 고민이 많았던 남자입니다.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사실 아버지께서 잦은 사업실패로 집안은 정말 형편없는데다 가장으로써,

가정을 돌보지 않으신지 오래라 거의 어머니가 하시는 장사로 근근히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사업실패에 따른 빚독촉(은행권)에 고등학교 때부터 가족 모두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차압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집안 꼴이란 정말.... ㅠ.,ㅠ 지금 생각해도 안습이네요.

이 때문에 매일 같은 가정불화로 정말 고등학교 다닐때는 거의 친구집 아니면, 독서실에서 잤던 것 같네요.

독서실은 어머니께서 집안 상황이 이러니 공부하라고, 어려운 살림에 끊어주셨음에도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데만 열중했죠.

그도 그럴것이 끼리끼리 모인다고, 친구들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가정형편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술, 담배도 고등학교 2학년부터 하게 되고, 뭐 그때는 나름 일탈이라고 생각하고 똥폼

잡기도 했습니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전기모집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다르게 선지원 후 시험을 봤는데, 전기모집, 후기모집, 전문대 이렇게 총 3번 시험을 볼 수

있었죠.

사실 대학을 가봐야 등록금 낼 만한 형편도 안되는 살림에도 어머니는 꼭 대학가야 좋은 직장 얻는다고,

제가 맏이다 보니 형인 네가, 오빠인 네가 잘되야 동생들도 잘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아... 지금이야 이해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말씀이 그땐 정말이지.. 그런 부담과 책임감이 싫어 어머니께 성질도

많이 부렸었네요. 대학 붙어도 지금 이런 살림살이에 다니기 힘들텐데 가서 뭐하냐는 식으로 말이죠......

그땐 정말 못되게 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그렇게 된 삶의 원인이 가정형편에 있다고 탓한듯 합니다.

어머님의 성화로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이미 손 놓은 공부가 될리 없고 거의 틈만 나면 재수학원을 땡땡이 친 후

친구들과 일용직 노가다를 뛰거나, 공치는 날에는 당구장에서 살곤 했죠.

갖 스물의 젊은이다 보니 여자도 만나고 싶고, 놀고도 싶은데 돈이 없다보니 손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일용직

노가다 사무실을 찾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랬는지 지금 직업이 건설계통에 있습니다.

재수는 당연히 실패, 잠시 기술 배우겠다고 학원도 다녀봤는데 역시 적응을 못하고 실패...

그러다가 군입대... 제대하니 어느덧 스물넷이더군요.

아 정말 난 뭐하는 놈인가 하는 생각에, 뭐하며 살아야 하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형의 소개로 친구들과 지방의 발전소 건설하는 현장 잡부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철골설치 하는 팀에서 잡부로 생활하게 되었는데, 얼마 후 도면을 볼 줄 알게 되면서 일이 수월해 지더군요.

제가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건축설계 기능사 공부를 했었는데, 기능사 자격증은 못 땄지만 그게 도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리곤 잡부에서 야적장 자재를 설치공정에 따라 현장에 반입하는 일을 맡게 되고, 일당도 더 올라가고,

아... 이게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월급을 타면 집에 올 때 무조건 건설현장 지침서, 배관실무, 기계실무와 같은 책을 구입하고,

현장일 끝나면 숙소에 와서 매일 공부를 했습니다.

모르는게 있으면 물어보고, 메모하고, 담날 현장가면 실무에 바로 적용이 되고, 정말 재미지더군요.

그때 자주 일에 대해 물어봤던 아저씨가 저를 보곤 "야, OO아!! 난 너처럼 노가다 하려고 공부하는 놈 첨봤다" 하시더군요.

계속 도면, 실무 공부를 하다보니, 제법 현장에서 어린 나이에 비해 일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고, 어느날 공사과장이

저를 부르더군요. 사무실에서 근무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저야 뭐 망설일 이유가 없는데다 덥거나, 추운 현장보다야 사무실 근무가 훠얼씬 편해 보여서 바로 OK이 했죠.

아.. 근데 이게 건설현장 사무직은 현장보다 더 빡시더군요.

근로자 보다 먼저 출근해서 조간회의, 일마치고 석간회의 및 일일공정보고, 그리곤 저녁먹고 와서 야근...ㄷㄷㄷ..

아침 6시 30분에 현장도착해서 퇴근은 밤 10시 넘어야 합니다. 참고로 현장은 7시부터 18시까지...

그런데 현장에서 일할땐 야간 수당을 받았는데 사무실 근무는 그런게 아예 없더군요... 걍 월정직...

그래도 현장직에서 사무실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보람감에 힘든 줄 몰랐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절 사무실 근무로 끌어 주셨던 공사과장님을 따라 한국에서 7년, 해외에서 8년 거의 15년을 함께

근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동안 그 분은 이사로 진급하시고, 전 어느덧 현장소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결혼해서 지금은 초딩 4년 아들이 하나 있고, 뭐 결혼한지 15년째이나 같이 산 날은 3년이 안되는

마눌도 있고, 해외근무 하면서 제법 돈도 벌어 집도 한채 있습니다.

지금은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회사의 해외법인에서 근무 중인데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나름 만족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젊어서 해외생활 할 땐 몰랐는데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니 가족이 많이 그립고,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늘 간절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 해외에서 근무해야 하고, 가족은 한국에서 떨어져 살아야 하겠지요.

다만 지금 바라는게 있다면 회사가 좀 더 성장하고, 안정되어 맘편히 가족을 데리고 와서 살았으면 하는 겁니다.

 

짧은 글재주라 두서 없이 쓰긴 했는데, 제 경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20대의 누구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게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불확실하니까 그런거지요.

그러나 고민만 해서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게 현실이고, 가정형편탓, 학력탓, 국가 경제탓 해봐야 소용없으며,

그보다는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본인을 먼저 탓해야 본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적성에 맞는가를 많이들 따지시던데, 적성은 노력하면 맞춰지기도 합디다.

왜? 절실하니까.. 가능하더라는 겁니다.

좀 더 노력해 보시고, 주위에 있는 기회를 찾아보세요.

의지가 있으면, 자연스레 길도 열립니다.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노가다 잡부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신기할 때도 있지만,

정말로 내가 노력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그 결과로 답한다는 것입니다.

힘들 내세요.

그리고 가끔은 컴퓨터를 끄고 집밖의 세상을 둘러보세요.

움직이세요.

그래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변수도 늘어납니다.

 

그럼 이만 글을 줄이며, 짱공인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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