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카다피
이라크 사담 후세인
번외였던 북쪽 삼돼지의 수용소에 이은
일본의 도조히데키 편을 써볼게요
일본 극우의 대명사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어야할 인물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동조영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풍신수길~
이놈들하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박빙 대결이 예상되지요 ㅋㅋ
어쨌든 도조히데키 이놈은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지는 이와테 현 입니다.
1884년 12월 30일날 태어났습니다.
1909년에 결혼했으며 아들셋과 딸 넷을 두었습니다 많이도 낳았네요
1915년에 육군 대위가 되었으며
그 후엔 해외파견근무를 하며 승진을 해댔습니다.
1920년대엔 군의 파벌싸움에 참여해서 서서히 군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도조의 별명은 가미소리(면도날)이였다는데
이는 그의 부지런함과 빠른 일처리 덕에 붙은 별명이라고 해요
파벌과 부지런함덕을 봤는지 헌병대 사령관이나 참모장같은 고위직까지 올라간 도조
1940년에 육군대신이 되어 중국과의 전쟁전선 확대를 주장하다가 1년뒤 수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41년 12월
진주만을 공습했습니다.
수상에 취임하고나선 권력에 맛이 들렸는지 여러가지 관직을 겸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대략 장관직이란 장관직은 거의다 꿰차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전쟁 초반엔 분명 잘나가서 도조의 입지도 탄탄했으나
그가 상대해야 할 나라는 천조국
결국 작살나기 시작
참고로 그는 40년대 초반
살아서 적에게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전진훈을 만들었는데
막상 지놈은 포로ㅡ,ㅡㅋ
결국 일본이 항복했고 그전에 낌새를 차린 도조는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듯하나 짤 없이 전범으로 체포됬습니다.
재판전엔 자기 가슴을 권총으로 쏘면서 자살 소동을 벌였지만 실패해서
살았습니다
왜 머리를 안쏘고ㅡ,ㅡ;
뒈지지 못한 죄로 전범재판에 선 도조는 대가리가 돌았는지
전쟁의 책임을 일왕과 일본국민에게 돌리는 발언으로 자기스스로를 변호했습니다.
난 죄가 없어!
왕이 시켜서 한것뿐이라구~
개소리하네 ㅄ아 찰싹
결과는 교수형
죽은후 시신은 화장되어 태평양에 뿌려집니다.
그러나 어느 절 주지가 태평양에 뿌려지기 전 화장터에서 유골일부를 훔쳐서 갖고 튀었다네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욕을 오질나게 먹는 인물이며
일본 순사 이미지가 주로 콧수염이나
안경잽이로 각인된 이유가 도조 히데키 떄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