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시리즈
이런 권력들 하면 떠오르는 인물1위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과정을 써보겠습니다.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히틀러
아버지인 알로이스의 재혼으로 태어났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히틀러와 관계가 좋지 못했습니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이였으며 이러한 아버지와 관계덕에 히틀러역시 어린시절 음침한 성격을 띄었다고 합니다.
진학에서도 역시문제를 나타냈는데 히틀러는 미대에 가고싶었으나
알로이스는 자신과 같은 공무원이 되길 강요했고 히틀러는 결국 꿈을접습니다.
그러나 13살때 아버지가 막상 매우 슬퍼했다고
1907년 어머니 마저 사망한후 나날히 떨어져가던 학업성적을 뒤로하고
국립미술아카데미에 지원을 합니다.
결과는 낙방
심사위원들은
자네그림은 예술보단 건축의 느낌일세~라고했고
히틀러는 재수까지 했으나 그래도 낙방
건축가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이는 좋은 학업성적을 가지고 있어야했기에 히틀러에겐 무리였습니다.
그는 이떄쯤부터 반 유대인의 사상을 품게 됩니다.
히틀러가 왜 유대인을 증오하게 됬는지는 너무나 많은 낭설과 유언비어가 있으나 근거가 충분한것은 별로없습니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군징집명령을 피해 도망다니던 히틀러는 입대를 합니다.
상당히 열심히 싸워서 부상을 입었다는데 이떄 부상으로 고환...................이 하나 날라갔다는 풍문이 있습니다만
이또한 뭐 믿을수는 없어요
허나 그리 열심히 싸웠건만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그는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이후 그는 뮌헨으로 갔는데 그 당시 뮌헨은 공산주의자들의 천국
히틀러는 종전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있었습니다.
1919년 상부의 지시가 하달되는데 그 당시 많은 민족주의 운동이 있엇고 이를 조사하라는 내용이였습니다.
히틀러는 갑자기 독일 노동자당에 가입하였고 연설을 잘하는 특기를 살려 선전부 책임자가 됬으며
1년뒤 당의 이름을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나치당)으로 바꿉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로마진군을 전해듣고 나도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한 히틀러는
뮌헨에서 무장봉기를 감행헀으나 실패합니다.
감옥에 반년정도 투옥된후 출소했는데 당은 와해됬고 히틀러는 당을 재건하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만 했으나
독일은 1차대전후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고 나치같은 극단적인 정당은 지지를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오니 이는 바로 경제공황
독일 경제역시 대공황덕에 작살나기 시작했고 1930년에 나치당은 제2당으로 성장합니다.
32년대선에서 역시 그는 36퍼센트의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1933년 히틀러는 총리가 됬으며 그는 기회를 잡고 자신의 독재를 위한 계획을 실행해 나갑니다.
그는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강조하며 인기를 끄는 한편 기존 야당인사들을 작살내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그는 총리+대통령
총통으로 불리게 됩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종말을 맞이했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세계는 천천히 전쟁의 연기가 피어오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