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 레인부츠 열풍… 과시욕 맞물려 고가 수입품 불티
“지금은 사이즈가 없습니다. 다른 매장에서 재고를 찾아봐야겠네요.”
17일 서울 A백화점의 레인부츠 브랜드 헌터 부츠 매장은 평일인데도 사이즈에 맞는 제품이 있는지 문의하는 손님들로 오전부터 붐볐다. 이 백화점의 락피쉬 매장도 사정이 비슷했다. 매장 직원은 “네이비와 블랙은 전 사이즈가 빠졌고 쇼트부츠는 입고되자마자 바로 ‘완판’돼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며 “28일이나 돼야 다시 물건이 들어올 것 같다”고 손님들에게 말했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레인부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레인부츠는 고무나 비닐 재질로 만들어져 비가 올 때 신는 신발이지만 최근엔 젊은 여성들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제품은 가격대가 70만 원대에 이를 정도지만 찾는 이들은 계속 늘고 있다.
○ 거리를 휩쓰는 레인부츠 열풍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국내에 시판되는 레인부츠 브랜드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레인부츠란 아이템 자체가 생소한 데다 재질과 디자인이 작업용 장화와 비슷해 ‘영농 후계자 패션’ 등의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B백화점의 구두 담당 바이어는 “2009년경 레인부츠를 매장에 처음 들여올 때만 해도 바이어들 가운데서도 ‘이런 걸 누가 신겠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인부츠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올해 5월부터 이달 14일까지 C백화점의 레인부츠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6.8% 급증했다. 이 백화점이 장마 시작 직전인 10일부터 16일까지 온라인몰에서 진행한 레인부츠 이벤트에선 하루 평균 50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주로 10대 후반부터 30대 중후반 여성들의 폭발적인 성원을 받고 있는 일부 레인부츠 브랜드는 상당히 비싸다. 헌터 부츠의 경우 구매대행 사이트 등에서 해외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모델은 최고 70만 원대에 판매된다. 인터넷쇼핑몰 등에선 병행 수입한 기본 모델을 10만 원 안팎에 팔기도 하지만 국내에 공식 수입돼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보통 20만∼30만 원대이다. 레인부츠 안에 신는 전용 양말 ‘헌터 웰리삭스’도 6만∼14만 원에 이른다.
에이글도 40만∼50만 원대 고가 에디션 구매 대행이 활발하다. 한 인터넷 쇼핑몰 관계자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제품들은 없어서 못 판다”고 말했다. 에이글 측은 “찾는 이들이 많아 지난해보다 물량과 상품 종류를 두 배 이상 늘렸다”고 전했다.
○ ‘등골 브레이커’ 여름 버전?
다프나, 락피쉬, 크록스 등 다양한 수입 브랜드들과 노스페이스, 밀레, K2 같은 아웃도어 업체들도 레인부츠를 내놓고 있다. 레인부츠 브랜드를 놓고 등급이 매겨지면서 마크제이콥스, 루이뷔통, 샤넬 등 50만∼100만 원에 이르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레인부츠도 차별화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레인부츠 열기는 일차적으로는 한국의 기후가 비가 잦은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발업계 관계자는 “최근 레인부츠의 인기는 구두와 운동화로 양분되던 과거와 달리 러닝화 등산화 일상화 등 신발시장이 갈수록 세분화되는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유행에 민감하고 자기 과시적 소비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등골 브레이커’(가격이 비싸 등골을 휘게 만드는 제품)라는 지적도 나온다. 겨울에 수백만 원대의 패딩이 인기를 끄는 것과 같은 이유로 여름에 수십만 원짜리 레인부츠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는 “고가 패딩과 레인부츠는 모두 기후 변화에 따라 수요가 생긴 상황에서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자 폭발적 호응을 받게 된 경우”라며 “여기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과시형 소비가 더해지며 집단적 유행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