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VS 독립운동가

Dsus4 작성일 13.08.11 2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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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600억(당시 40만원)을 순전히 독립운동하는데에만 바쳐 진정한 의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실천 그러나 이 일가의 현실은 중국땅에서 비참하게 객사하거나 행방불명 통일신라,고려,조선에서 최고의 벼슬을 한 집안 ㅡ영의정 9명배출,오성과 한음 주인공 이항복의 후손,천년동안 양반이였던 집안 일본이 조선 양반들에게 타협하는 대신 주는 귀족지위와 수십억의 돈을 거절한 집안 ㅡ대부분 양반들은 일제에 타협 급하게 처분했어도 600~800억(현재가치)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6형제가 모두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
ㅡ식솔60명이 이동,신분 해방된 노비들 일부도 주인들을 따라감*염가처분이여서 600~800억이지 실제 가치는 2조원정도로 추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 수천명 독립군 배출 ㅡ이 밖에도 헤이그말사 파견지원,고종황제 중국망명계획등 독립활동 이회영선생의 집에 시집온 명문가 규수들이 삯바느질과 고생을 많이해서 반지가 안들어갈 정도 ㅡ육형제 모두 강냉이와 풀죽으로 겨우 연명 단군이래 가장 덕망있는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최후는 실로 비참했습니다. 첫째(이건영),이건영의 둘째아들(이규면)은 신흥학교 졸업 뒤 머나먼 중국땅 상해에서 독립운동하다 병사 이건영의 셋째아들(이규훈)은 만주에서 독립운동한뒤 귀국, 국군 공군대위로 복무중 한국전쟁때 실종 가장 많은 돈을 보탠 둘째(이석영)는 중국빈민가를 80의 나이에 떠돌다 굶어죽음 이석영의 장남(이규준)은 김원봉의 의열단원으로 이해명과 함께 밀정 김달하와 박용만을 암살하고 한구에서 독립운동하다 20대의 나이에 병사 셋째(이철영)는 신흥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병사 모든계획의 중심에 섰던 넷째(이회영)는 일흔이 다되어가는 나이에 독립활동하다 걸려 모진고문끝에 숨짐 이회영의 둘째아들(이규학)은 사촌 이규준과 함께 밀정 암살가담 이회영의 셋째아들(이규창)은 친일파 암살사건으로 경찰에 체포, 13년의 징역을 살고 광복뒤 석방 유일하게 살아남아 해방을 맛본 다섯째(이시영)는 독립후 김구선생님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초대부통령이 됨 하지만 이승만의 전횡에 반대하여 결국 국민방위군사건,거창 양민 학살사건등 이해할수 없는 1인천하 독재만행에 항거 부통령직 사임 막내(이호영)는 만주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33년 소식이 끊김 이호영의 아들 이규황,이규준도 함께 실종(몰살당한걸로 추정함)           이회영선생은 나라를 지키기위해 임시정부를 만들면 또 그안에서 분열된다 하여 임시정부 참여불참 양반가문집안의 머리에서 이런 발상이 나온다는것 자체가 엄청나게 진보적인 일이며.... 세계적으로 육형제가 독립운동의 뜻을 함께한건 유래가 없는 일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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