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축구스타 글을 쓰네요
오늘 살펴볼 인물은 두명.
사자군단 카메룬의 사무엘 에투
그리고
아프리카의 축구신
디디에 드록바 이야기.
먼저 에투이야기
81년에 태어난 에투는 10대때 스페인의 최고구단 레알마드리드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에투는 찬밥신세였고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마드리드보다 작은 마요르카라는 팀으로 떠납니다.
이떄 에투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며 골 폭격을 쏟아붓게되요
특히 애증이 있던 레알마드리드를 상대할땐 더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에투를 눈여겨보던 레알마드리드의 원수
바르셀로나는 에투를 단방에 낚아챕니다.
이적료는 2400만유로.
드록바도 마찬가지지만 아프리카 흑인특유의 탄력과 스피드로 무장한 에투
거기에다 바르셀로나의 선봉에 서있는 에투뒤에는 사비 에르난데스같은 쟁쟁한 미드필더들이 뒤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즐기면 무서워진다는 이 형님까지 옆에있었던 터라
바르셀로나는 05/06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재패했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즐기면 무서워지는 외계인 형님이 서서히 축구가 재미없어졌는지 죽을 쑤고
바르셀로나가 서서히 몰락하는가 싶더니
왠 땅꼬마와 문어머리 감독이 나타나서 바르셀로나를 다시금 최강으로 만듭니다.
한번더 우승하는 바르셀로나.
에투가 좀 묻어가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결승전에서 골도 넣었고 커리어 기록만으론 거의 최정상급입니다.
그 후엔 인터밀란으로 이동합니다.
인터밀란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에투+돈으로 교환이 된거에요.
에투는 존심도 상하고 팀 스타일도 잘 안맞아서 첨엔 죽을 좀 쒔지만.
에투의 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승으로 만난 조세 무링요 감독의 지휘아래 에투는 서서히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며 팀에 공헌하기 시작했고.
인터밀란이 챔스를 다시금 우승함에 따라
에투는 팀 옮기자 마자 챔피언스리그를 다시금 정복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후에 러시아 리그 안지로 이동하여 세계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선수생활을 마감하는가 싶더니..
첼시로 이동하여 무링요 감독과 재회한다는 소식이 알려집니다.
첼시빠로써 에투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아프리카의 신 드록바
아프리카와 첼시의 신이였던 드록바
그는 1978년 코트디부아르라는 조금은 생소한 나라에서 태어납니다.
5살이 됬을 무렵
프랑스로 건너왔고
프랑스 마르세유 등지에서 축구선수로 주목을 받습니다.
이때 영국에선 서서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구단을 인수하고
서서히 돈을 풀어 전세계 뛰어난 선수들을 모아 최고의 구단을 만들려고 하던 중이였습니다.
그때 드록바 역시 첼시의 목표가 됬구요.
첼시 생활 초반엔 크레스포라는 걸출한 공격수와 주전경쟁을 해야해서
심리적으로 불편했을 드록바였으나
크레스포가 영 시원치않게 떠나버리자 그때부터 첼시의 주 공격수가 됬습니다.
드록바의 장점은 상당히 많습니다.
프리킥도 제법 잘차며
등빨도 상당해서 몸싸움도 엄청납니다
최전방에서 패스가 오면 수비수들을 다 날려버리는 돌격대장같은 존재
그러나 너무 강해보이는 탓에
진짜 반칙을 당해도 불이익을 보는경우가 가끔있었습니다.
맨유의 에반스라는 싸가지없는 놈한테 발로 가슴을 맞은 적이 있는데 되려 경고는 드록바가 받았습니다ㅡ,ㅡ;
어쨌든 이러한 장점으로 첼시의 영국정복과 함께 최초 아프리카 득점왕까지 오르는 드록바
그러나 서서히 암울한 시기가 찾아와요
무링요가 떠나고 월드컵을 정복한 명장
스콜라리가 왔지만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의 사정은 달랐고 드록바와 첼시는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그때 등장한 거스 히딩크형님
비록 영국리그 우승은 이미멀어져 있던 상황이라 어쩔수 없었지만
FA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드록바의 정신도 급속도로 회복했습니다.
그 다음시즌
정신무장을 새롭게한 드록바의 활약으로 첼시는 다시금 영국 정상에 올랐으며
드록바역시 웨인루니를 누르고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29골 기록.
월드컵이 다가오자 본격적으로 방송에서 드록바를 띠워주기 시작하는데요
드록바가 전쟁을 멈춘 사나이로 불리게 된 이유가 이때 이슈가 많이 됬습니다.
때는 독일월드컵을 앞둔 2006년
드록바는 월드컵에 진출하자
카메라 앞에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1주일만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정말 1주일동안 내전이 멈추었고 2년후엔 내전이 끝났습니다.
이런 미담이 겹치면서
드록바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신으로 승격됬습니다.
농담삼아 검은예수 드록바라고 하더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겹치며 예수가 도리어 하얀 드록바라는 신성모독급 드립들도 나올정도.
나이 어린 비야스 보아스 감독이 첼시로 오면서 다시 첼시가 또 수렁에 빠집니다.
선수들과 심각한 갈등을 보여준 젊은감독.
그는 얼마안가 쫒겨났고
박명수를 닮은 코치가 감독이 됬는데
놀랍게도 이 코치가 사고를 칩니다.
최초로 첼시를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정상에 올려놓은것이죠.
결승전은 바이에른 뮌헨과 상대했는데
이 결승전역시 드록바가 좌지우지했습니다.
마지막 승부차기 역시 드록바가 넣었구요.
그리고 이어지는 미친 보싱와의 깽판.
가뜩이나 실력도 하향세여서 닭갈비 취급받는 주제에 저딴짓까지 했으니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며 바로 방출됬습니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이동하며 첼시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가
중국놈들이 뒤통수 치는 바람에 다시 터키 갈라사이타이로 이동하여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천하제일 레알마드리드와 명승부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중.
참고로 두 선수중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건 당연 드록바에요.
이유는 뭐 여러가지가 있으나 드록바는 첼시를 좌지우지하는 선수였고
에투는 약간은 묻어간다는 느낌이 있다는 점?
아니면 드록바보다 조금 못생겨서 그런가...
어쨌든 지금은 첼시에 없지만 죽을때 까지 첼시맨이라는 드록바
선수생활 화려하게 마치길 기원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