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 8. 26 경북 대구~1970. 11. 13 서울.
노동운동가.
1970년 11월 13일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 분신자살한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이다.
1964년 17세의 나이로 평화시장 피복공장 미싱사보조로 취직했다.
1969년 재단사들의 친목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는 한편, 근로기준법을 탐독하면서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철저히 조사, 그 개선방안을 노동청(지금의 노동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으로 해고를 당했지만 1970년 9월 다시 재단사로 취직해 '삼동친목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곧바로 설문지를 돌렸으며, 그 결과를 분석해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 선처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시정을 약속한 기한인 11월 7일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는 동료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하자"고 제의하여 13일을 시위날짜로 잡았다.
1970년 11월 13일 피켓 시위를 벌이기 직전에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을 당하게 되자 전태일은 분신을 감행, 화염에 휩싸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두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