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을 전설적인 수비수와 골키퍼는 했고 이젠 미드필더와 공격수가 남았습니다
오늘은 미드필더 차례입니다.
현역과 전설을 섞느라 누락된 레전드 선수가 있을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감정역시 들어가 있음을 참고해주세요 누락된 선수가 있을수 있습니다
7위 차비 에르난데스
1980년 1월 25일 스페인
대표 클럽팀 바르셀로나
현 세계최고전력을 가진 클럽중 하나인 바르셀로나 팀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인 선수중 한명이며 특기는 정확한 패스를 바탕
으로한 경기조율능력.
그래서 별명이 패스마스터.
어릴때부터 바르셀로나에서 훈련하고 자란 선수로써 스스로 바르셀로나의 혈통이니 DNA니 이딴 소리를 자꾸해서 구설수
에도 잘 오르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 성격은 얌전하다는데
6위 루이스 피구
1972년 11월 4일 포르투갈
대표클럽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에 있던 강력한 선수
리스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피구는 메이저 클럽인 바르셀로나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히바우두나 호나우두 같은 최고의 공격 파트너들과 함께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줬으며 과르디올라와 함께
팀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 페레즈 회장의 작전으로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 이뤄졌고
바르셀로나 구단에서도 피구를 잡으려는 노력을 별로 보이지 않음으로써 레알은 바르셀로나의 영웅을 얻게됩니다.
바르셀로나의 충격과 증오는 경기중에 피구에게 양주병과 돼지대가리를 던지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피구는 이에 부담을 느껴 고의로 바르셀로나 경기엔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증오를 뒤로하고 레알에서도 성공을 거둔 피구는 이탈리아 명문 인터밀란을 거쳐 은퇴했으며
현재는 인터밀란의 홍보대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5위 프란체스코 토티
1976년 9월 27일 이탈리아
대표클럽팀 AS로마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로마의 왕자.
일편단심 AS로마에 충성을 다하는 로마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ac밀란은 토티의 어린시절
토티를 낚아채가려고 시도했으나 토티는 어릴때부터 로마의 팬이였기에 로마를 선택했습니다.
토티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며 로마의 부흥이 이어졌으며 이는 세리에 A의 지각구도를 흔들었고
많은 팬들이 그리워하는 세리에A의 7공주 시대가 열렸습니다.
토티는 2001년 세리에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줄곧 로마에서만 머물렀기에 우승은 별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다니엘 데 로시라는 걸출한 로마의 영웅이 등장함에 따라 토티의 별명역시 로마의 왕자에서 황제로 격상
말 그대로 로마의 팬들에겐 경배의 대상이지만 팀의 주장이며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좋지못하여 퇴장당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서 팀의 자멸을 초래한 적도 많습니다.
그 유명한 교황과 토티의 인연.
어릴때 교황에게 반드시 세계정상의 선수가 될 거라 맹세한 토티와 다시 만난 교황.
4위 미셸 플라티니
1955년 6월 21일 프랑스
대표클럽팀 as낭시.유벤투스
플라티니는 데뷔후 10여년을 프랑스에서 활약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국내 챔피언 타이틀을 따는 등 활약을 하자 이탈리아 쪽에서 서서히 입질이 오게됩니다.
이탈리아 최고클럽인 유벤투스로 이적한 플라티니는 득점왕을 3번이나 기록하는 활약을 했으며 이는 이탈리아 역사상 첫
외국인 득점왕.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거두는 성공까지 거두었습니다.
국가대표로써도 많은 활약을 했는데 정점은 바로 유로 84.
플라티니는 5경기 동안 9골을 넣는 활약을 했으며 미드필더인지 공격수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의 활약을 했습니다.
유로 84는 플라티니의 플라티니에 의한 플라티니를 위한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현재 UEFA회장을 맡고 있으며 축구계의 독재자 제프블래터를 견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나 이양반 자체도 또 다른 독재
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
3위 요한 크루이프
아 정말 싫어하는데 진짜 잘생겼다;
1947년 4월 25일 네덜란드
대표클럽팀 -아약스.바르셀로나
그 유명한 토탈사커를 선수와 감독으로써 전파하는 인간
리누스 미헬스감독의 지도아래 토탈사커를 구사하며 전 유럽을 휩쓸고 다녔습니다.
크루이프는 실력도 매우 뛰어났지만 또한 특이한 점이 바로 멘탈.
얼굴값을 하려는지 상당히 사생활에 잡음도 있었고 담배를 엄청 피우기도 하며 연습도 게을리했는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으론 깔 수가 없을정도로 최정상급.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베켄바워와의 대결에선 패배했으나 당대 최고의 선수의 상징인 발롱도르는 크루이프가 먼저
수상했습니다.
클럽경력은 아약스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입성한후 라이벌 레알마드리드를 개박살내는등 바르셀로나의 영웅이였으며
은퇴한 이후 선수생활을 했던 바르셀로나와 아약스에서 감독생활을 하며 감독으로도 좋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세운 공로중 가장 큰 공로는 우승경력이 아니라 유스시스템 .
과르디올라를 비롯한 라우드럽,쿠만등이 그의 애제자.
선수시절 실력과 감독의 경력은 매우 훌륭하지만 성격이 좀 거지같은 편이라 인터뷰 등에서 상당히 경솔하게 상대편을
디스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위 지네딘 지단
1972년 6월 23일 프랑스
대표클럽-유벤투스.레알 마드리드
프랑스 역대 최고의 선수
역사상 몇 안되는 혼자 몸으로 경기를 갈아엎을만한 선수.
축구계의 항우 여포.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것도 없지만 한가지 많이들 오해하시는 점은 지단이 아프리카 알제리 출신으로 알려졌는데 실은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
또한 선수를 시작할때는 곧잘 공격수로 뛰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와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던 그는 98년 조국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
결승전 직전까진 그냥 좋은 선수 정도의 활약이였으나 당시 세계최강이던 브라질을 결승에서 그야말로 혼자서 개박살.
천하의 호나우도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지단은 우승컵을 들고 포효했습니다.
월드컵에 이어 유로 2000에서 역시 우승컵을 따내며 지단의 경력을 정점을 찍었고
7350만 유로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습니다.
이 기록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깨기전까진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레알에서도 챔피언스리그 우승등 멋진 활약을 했으나 서서히 나이가 많아지면서 서서히 침체기가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옆동네에 외계인이 나타나며 서서히 지단의 시대는 저무는가 싶었는데
2006년 월드컵에서 퇴물이란 비아냥을 들으며 출전하더니 16강부터 갑자기 초사이언으로 변신
16강에서 스페인.8강에선 브라질을 박살내는 노익장을 보여주며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는가 싶었습니다.
당시 저도 우리나라가 탈락한 마당이라 프랑스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노장의 마지막 투혼을 보는게 참 즐거웠는데
결승전인 이탈리아전에서 마침내 사고가 터집니다.
마테라치가 지단의 옷을 자꾸 잡자 지단이 경기 끝나고 옷을 줄테니 좀 기다리시지 라고 응수.
그러자 마테라치가 니 누이를 갖고싶은디?
지단은 바로 박치기로 응수
결국 자신의 은퇴전을 퇴장으로 마무리하게 된 지단.
마테라치 개갞끼
현재 지단은 레알마드리드에서 사무총장이나 코치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 엔조지단이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레알마드리드 유스팀으로 활약중.
1위 디에고 마라도나
1960년 9월 30일 아르헨티나
대표클럽팀 바르셀로나.나폴리.보카주니어스 등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수십년간 제2의 마라도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리오넬 메시가 어느정도 해결해줬으나 국가대표로써는 아직까지 메이저 대회의 수확이 부족)
순위엔 애석하게도 끼지 못한 선수들
가린샤
1933년 10월 28일 브라질
장애를 극복한 드리블의 황제
호나우지뉴
호나우두 지 아시스 모레이라
자기관리엔 실패했으나 한때는 천하의 지단도 한수 접어줄 만큼의 '외계인'
외모가 뛰어나 되려 실력이 가려진 스타
데이비드 베컴 1975년 5월2일
마칩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