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조국 러시아를 위해!-레드얼럿2를 했을 때 러시아를 선택해서 알 보병을 뽑으면 나오면서 소리치지요)
2두개의 전쟁은 역사를 바꾼 전쟁들이였습니다. 흔히 2차세계대전에서 서유럽측은 말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서 나치 독일이 멸망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치독일에 심장에 최후의 일격은 가한 것은 러시아 였습니다. 쿠르스크전투에서 러시아가 전술적 패배 하지만 전략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나치 독일의 예비병력은 사실상 소멸하고 러시아가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면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쿠르스크 전투 당시 소련군 약 170만 화포 19000문 전차 및 자주포 3600대 항공기 3100대 VS50개 사단으로 편성된 병력 90만, 전차 및 자주포 2,700대, 비행기 2,000대, 대포 10,000문)
쿠르스크는 지역이지만 쿠르스크가 가지고 있는 군사 지도적 지점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였습니다.
일단 이곳은 돌출부 였습니다. 돌출부는 매우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입니다. 사실 이 돌출부는 전선에 있는 병력을 쉽게 포위 섬멸시키버릴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물자에 동일한 군사력이면 선빵이 유리합니다. 일단 물자를 효율적인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동일측면에서 더많은 물자를 쏟아 부으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
그리고 조국 전쟁(나폴레옹 전쟁)때는 러시아는 진정한 전략적 후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할 수 없는 영토대국들이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휴전선에서 100km 후퇴하면 서울이 함락됩니다...... 종심이 너무 짧은 대한민국)러시아의 수도는 현재 모스크바입니다. 과거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였습니다.(소련시기에는 레닌그라드였습니다.-부산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훈련 한계점에 도달한 예비군)
군대는 공세 한계점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공세를 유지할 수 있는 시점을 말합니다. 단지 이것은 병사들을 체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세한계점은 사기. 훈련. 보급. 적군. 지형 기후가 전부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군이 고.수. 고.당 전쟁에서 끈질긴 방어력을 보여준 것은 적에게 공세 한계점을 이루게 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것일것입니다. 국가를 말아먹을 수 있는 청야작전 농성 그리고 주요 거점을 제외한 불필요한 거점을 철수 이렇게하여 적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적에게 강제적으로 전선을 고착시키는 방법을 택한것이지요(을지문적의 살수 대첩을 보면 요동에서 수나라군대는 청천강까지 기동을 합니다. 사살상 수나라의 공세 한계점은 요동성이였을 텐데...)
적이 공간을 내어주기 시작하면 사기는 오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부담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일단 전선까지 보급이 급해집니다. 물론 현대전은 더더욱 말입니다.(물론 천조국은 예외로 합시다. 천조국의 보급은 2차세계대전때부터 알아주었습니다.)그리고 이는 나폴레옹 시대에도 마찮가지였습니다. 이시대의 보급은 현지 충당이라고 쓰고 약탈이라고 읽으면 되었습니다. 과거의 경우 용병들이 였고 용병들은 약탈을 선호하기 않았습니다. 전리품을 얻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나중에 자신을 고용해 줄 고용주가 이지역의 영주일지도 모르는것이거든요) 또한 약탈을 할 경우 전선의 붕괴가 쉽게 이어졌습니다.(삼국지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각과 곽사가 헌제를 추격하면서 헌제를 지키던 도적때 들에게 사용한것이지요)하지만 시민군을 그렇지 않았습니다.“적국의 보물은 나의 보물”
(바바로사 작전vs 바그라티온 작전)
나폴레옹 군대는 6월 24일(참고로 바르바로사 작전일은 6월 22일.역사의 아이러니!) 러시아로 77만의 대군을 이끌고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에게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영토 대국입니다. 영토가 넓다는 것은 지켜야 할 곳이 많다는 것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병력을 모으는 것이 매우 오래걸리는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타에서 8인용 섬 맵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각 지역에 드랍쉽1대가 있고 그곳에 막사가 1개씩있다고 생각하고 병력을 한지역에 모으려면 엄청나게 오래걸릴것입니다.(그래서 소련은 국토를 지키기위해서 공수부대를 5개 군단이나 만들어 내었습니다.)또한 러시아의 기후가 문제였습니다. 러시아의 기후는 긴겨울과 짧은 여름을 가지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대륙성 기후로 빠르게 더워진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더워진 땅은 소나기가 쉽게 내리게 되고 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라스푸차냐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병력을 모으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러시아는 영토를 내어주고 병력을 모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훗 내가 무릎을 꿇었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적의 주력을 향해 기동을 택하는 것이 아닌 적의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기동했습니다.
그러던중 모스크바 인근 보로디노에서 러시아군과 만나게 됩니다. 러시아 군은 이곳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속옷을 입고 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러시아는 사람이 죽으면 속옷을 입혔다고 합니다.러시아군은 죽음을 결의하고 전선에 나온것 이였습니다.) 러시아 군은 기다리는 입장이였습니다. 기다리면 뭐합니까? 과거나 현재나 보병은 열심히 땅을 파는 것이 일이였습니다. 러시아군은 보루를 구축하고 러시아군은 포대를 만들었고 이를 보호할 병력까지 배치하였습니다. 전선 중앙에 위치한 러시아군의 포대는 나폴레옹군에게 위협이였지만 상승장군이였던(상승황제라고 해야하나?)
나폴레옹군은 이 보루를 손에 넣었습니다. 러시아의 장군 바그라티온(나중에 대조국전쟁에서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작전명 바그라티온 77개의 사단 5개의 전차 군단(사단 아닙니다. 군단입니다)+5개군(군단 아닙니다. 군입니다. 1군 2군 3군 할때의 그군)2개의 전차군(역시 군단 아닙니다. 군입니다.) 11개 전차 군단 총병력 140만 대군!! 어머니 조국 러시아를 위해!)은 이 보루를 손에 넣기위해서 공격을 가하지만 실패했습니다.
나폴레옹은의 군대는 보로디노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보르디노의 전투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화력과 강력한 화력이 정면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엄청난 희생! 러시아 12만5천중 4만5천. 나폴레옹군 약 3만을 손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과거의처럼 전과를 확대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때 주었던 나폴레옹은 이번에는 전과 확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생겨서..)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이기고 9월 11일 모스크바에 입성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입성한날 모스크바는 불꽃 축제가 열리고 맙니다. 모스크바는 목조건물이 많았고 모스크바의 자사 페도르 로스트프친은 태워버리라고 명령을 한것이였습니다.(페도르 포스트프친: 모스크바는 불타고 있는가?)
나폴레옹은 참모진의 간언으로 겨우 몸을 피합니다.그리고 프랑스군은 모스크바의 역사적 건물들을 구해내었습니다. 다만 도시의 75%는 파괴되었습니다.-여담이지만 금발의애송이(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모델은 나폴레옹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방화에서 2번이나 살아남고 그와중에 제국군은 미술품을 보호했으니)
나폴레옹은 러시아에 권고사절을 보냅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묵묵부답 하지만 이것은 러시아의 술책이였습니다. 이미 나폴레옹은 함정에 걸려든것이였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빈코보에서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에게 기습을 당한것이였습니다. 나폴레옹은 10월 19일 모스크바를 떠났습니다. 나폴레옹은 크렘린을 파괴해버릴려고 했지만 시간이 모자란관계로 탑3개와 성벽을 일부를 무너뜨리고 도망쳤습니다.
나폴레옹이 목표로 잡은곳은 남쪽이였습니다. 하지만 쿠르조프는 이것을 막아 버렸습니다.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이 들어온길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보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남쪽(전투가 일어난적이 없는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스몰렌스크로 이동했고 이미 파괴된 스몰렌스크에서 나폴레옹군은 약탈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명심해 포로는 없어!)
나폴레옹군의 보급체계는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러시아는 “포로는 없다”라고 이미 선포한 시점이였습니다. 즉 낙오=죽음이라는 등식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코사크 들은 계속해서 프랑스군의 후미를 치고 빠졌습니다.
또한 쿠르조프는 군대를 나눠서(공세로 전환 할 수 없는 군대와 싸울 경우 병력을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한축은 프랑스군과 나란히 이동시키고 주력은 프랑스군의 공격권 밖으로 물러 났습니다. 또한 기병대를 전방에 파견해서 프랑스군의 초소와 물자 집적소를 공격했습니다.
프랑스군 유기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열이 64km나 이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물자 집적소를 지키기위해서 병력을 파견해야 했습니다. 점점 대열은 늘어 났습니다.(대열이 늘어 나면 힘들어 집니다. 행군의 경우 1등과 꼴찌의 사이에 64km가 떨어져 있으면 후미가 공격당하면 선두가 지원하려면 64km되돌아 가야한다는것입니다.
(우왕 신난다 제설작전하면서 적 추격 따돌리면서 행군한다.)
이러한 패주길에 11월 4일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 행군을 더욱 느리게 하고 사람을 더욱 피고하게 해주었고 추위는 더욱 심해 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숙영물자를 챙기지 않았고 또한 챙겼더라도 이러한 패주길에 살기위해서 물건을 버려야 했습니다. 보급체계가 붕괴되었기에 식량을 찾는다는 것은 코사크기병들에게 공격을 당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러시아 원정 러시아에서는 조국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전쟁은 후속편이 있습니다. 2천700만명이 죽는 독소전쟁 러시에서는 흔히 대 조국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입니다.
주제가 무엇이냐고요? 그냥 갑자기 추워져서 써보고 싶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