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마지막으로 얼른 나가야겠군요.
나 분명히 한가했는데...
(역시 각키의 짤로 상큼하게 시작합시다.)
마지막으로 풀 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디데이에 일어난 연합군의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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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치밀하고 용의주도하게 짜여있다하더라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날씨다.
독일군은 해안이 얕은 바다에서 해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장애물을 설치해놓고 있었으므로 이곳에 상륙용 주정을 몰고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따라서 썰물일 때를 이용하여 이 장애물 지역을 걸어가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달빛이 있는 새벽이 유리하다.
그리고 이런 조건이 딱 맞는 날은 6월 초순의 5,6,7일 사흘뿐이므로
이 기간을 놓치면 다시 19일까지 기다려야하는데, 그날은 달이 없는 그믐밤이었다.
게다가 상륙용 주정이 풍속에 영향을 안받고 해안까지 도달하려면 풍속이 시속 28km 이하가 되어야했다.
함포사격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소 5km이상의 시계가 보장되어야하므로 안개가 끼어서도 안되었고
공수부대의 성공적인 강하를 위해서 해돋이가 늦고 보름달이 뜬 구름없는 밤이어야했다.
게다가 낙하한 공수부대가 흩어지지 않으려면 풍속이 시속32km이하여야했다.
작전참모 모건장군이 10년간의 기상기록을 뒤져서 이런 이상적인 날씨가 돌아올 확률을 계산했는데,
이 모든 조건의 70%이상을 만족시킬 날씨가 6월 첫주에 찾아올 가능성은 1/60이며
그나마도 6월 5일이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작전 당일, 스태그대령이 펼쳐놓은 기상도를 본 사령부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지표가 과거 40~50년간을 통털어 최악의 기상조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작전예정일에 +2일까지 여유기간으로 둔 7일까지는
비바람과 강풍이 불고 짙은 구름이 끼고 해상150m까지 구름이 깔릴 상황이었다.
함포사격, 공중폭격, 공수낙하 모든 것이 무효화 될 상황.
까딱하면 디에프 기습작전의 재판이 될 판이었다.
그렇다고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자원이 소모되었고 독일 사령부도 더이상 속지 않을 것.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패튼같은 투사도 아니었고 롬멜같은 천재도 아니었지만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고 중재하는데 탁월했다는 아이젠하워. 그래서 더욱 연합군 총사령에 어울렸다고.)
"하루만 연기해봅시다. 이미 승선한 병력은 함내에 대기시키고, 출발한 함대는 불러들이시오."
기도하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는 시간이 흘러가던 순간.
스태그 대령이 방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여러분!"
그의 표정이 밝았다.
"좋은 소식입니다. 예기치 않았던 한랭전선이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이동해오고 있습니다."
(뭔소리야?)
번역하자면 이 악천후 속에 작은 '틈'이 생겼다는 것이며,
날씨가 개이기 시작해서 6월 6일 저녁까지는 좋은 날씨가 계속될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모두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만약 이 예보가 빗나간다면...?
한사람의 결정에 의해 18만명의 병력을 개죽음 시킬수 있음을 아는 아이젠하워는 신중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내일 새벽 네시까지는 결론을 내리겠소."
그리고 5일 새벽 네시, 확실한 보고를 들은 아이젠하워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넵튠작전을 개시한다."
결과적으로 스태그 대령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리고 믿기힘든,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
18만명의 병력을 태운 5000척의 함대가 도버해협을 뒤덮고,
2000여대의 비행기가 2만의 공수부대를 실어날으는 북새통에도
독일군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날씨였다.
40~50년만에 온 최악의 날씨라는 것은 독일군도 알고 있었고,
이것은 모든 독일군 58개사단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 날씨에서는 상륙지가 어디냐는 논쟁 자체가 무의미 했기에
통상적으로 하던 어뢰정의 해상순찰도 중지시킨 상황.
독일 제7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돌만'대장은
오늘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적어도 수주일 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휘하 사단장과 연대장들에게 6월 6일 오전 10시에 '랭스'에서 벌어질
전술 훈련 시범 행사에 참가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공수부대가 선도하는 적의 대규모 상륙작전을 분쇄하는 요령'이라는 주제의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 놓은 상황에서
각 부대의 병사들은 긴장이 풀린 채 잠에 빠져있었다.
(아이러니를 부르는 원더걸스.)
롬멜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6월 6일은 그의 아내의 생일이었고, 생일을 축하한 후
히틀러를 만나 2개사단 전차부대를 자신의 휘하로 넣어달라고 할 생각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차부대가 있으면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쉽게 분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반면 서부전선 사령부의 정보장교들은 레지스탕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BBC방송에서 나오는 시 낭송이 레지스탕스에게 반독 봉기를 일으킬 개시 신호라는 첩보를 듣고는 보고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보고는 총통 대본영과 B집단군 사령부 모두에서 무시당했는데,
이유는 역시 날씨였다.
그리고 때마침, 이 악천후속에서 포티튜드 작전-기만작술이 펼쳐지게 되고
독일군은 갈피를 못잡게 된다.
또한 공수부대에 의해 완벽하게 기습을 당한 독일군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공수부대는 바람 때문에 정상적인 착륙지점이 아닌 넓은 방면에 흩뿌려지게 되는데,
기만책의 일종으로 목표의 반대지점에 인형을 뿌리고 목표지점에 공수부대를 투입시키려는 계획이
이 바람 때문에 마구 뒤섞이게 된다.
이것 또한 독일군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이렇게 흩뿌려진 공수부대는 그 나름대로의 팀을 짜 본래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공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렸던 밴드오브브라더스. 초반부 강하한 공수부대원들이 부대원을 잃고 헤매는 장면이 나온다)
주요 다리를 날려보내거나 급파되는 기갑부대를 지연시키는 식으로 게릴라전을 펼쳤고,
이런 활약 덕분에 독일군의 병력이 제 때에 노르망디 해안으로 오는 것을 늦출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마구잡이식의 게릴라전 덕분에 독일군은 이 대규모 공수부대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었고
정확한 목적 또한 알 수 없었다.
이 때까지도 독일군은 '주공은 파 드 깔레이고 노르망디는 양동작전이다'라는 판단에 매달리고 있었다.
(승리의 포티튜드 작전.)
그중 단연 압권은 6일 실시된 기동훈련 참관을 갔다가 허겁지겁 복귀하던
제91 공수사단장 '막스 팔레이'소장이 몇명의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전사해버린 사건이다.
예정대로라면 그 시간에 미군들이 그곳에 얼쩡거릴 이유도 없었고
독일군 장성이 그곳을 지나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들이 알지도 못하는 독일군 숙소를 기습해 모두 사살시켰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유타 해안의 해안포 진지에서 근무하던 독일병사들이었고,
때문에 해안포가 상륙작전 내내 침묵시킨 일도 있었다.
게다가 서부전선군 총 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가 총통에게 상황을 알리려했지만
총통부관실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총통께서는 수면제를 드시고 막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적의 대규모 진공작전이라는 사실이 확실하지 않으면 깨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여파로 서부전선에 배치된 최고의 두 정예사단인
제 12 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와 전차 교도사단이 발이 묶인채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고
상륙부대가 무사히 작전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전쟁 내내 연합군을 괴롭혔던 독일전차. 만약 이들의 투입이 신속히 이루어졌다면 연합군의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첫날 하룻밤을 고스란히 잃어버렸고, 노르망디 싸움은 그때부터 이미 패하고 있었다."
-작전참모 짐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