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6세의 남성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어두운 과거를 부끄럽지만
공개 하겠습니다. 저는 86년 11월에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외아
들입니다. 92~93년 1년간 유치원 생활(한국영재학원 1년 수료)을 마
치고 93년 3월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중
학교 1학년 1학기까지 성격이 거치신 아버지 밑(현재 건축업에 종사)
에서 사소한 잘못에도 많이 혼나고 맞고 자랐습니다. 그 때의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많이 다투셨습니다. 중학
교 3학년 이후로 덜하시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생활도 순탄하지 않
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적응을 잘 못하여 운동장을 많이
돌아 다녔으며 초교 2학년부터 교육이 가능한 특수반에도 놀러 갔습
니다. 초교 2학년이 되고도 학교 부적응은 여전 했습니다.일부 같은
반 급우 몇 명에게 괴롭힘도 당했습니다. 이때도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결국 저는 특수반에 들어갔습니다. 초교 3학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
고 이때도 역시 특수반에 있었고 초교 4학년 때 1학기 까지만 특수반
을 다니다가 나오고 운동장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저보다 한참
어린아이들과 놀았습니다. 그 중 초교 2학년의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때 전학을 온 한 급우에게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
한 저는 늘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그동안 어머니께서 수없이 교무실에
불려 가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께서 용돈 몇 백 원을 주셨
는데 특수반을 같이 다녔던 3학년 후배 한명에게 여러 번 갈취를 당했
습니다. 5학년 때는 체육시간 마다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만 줄
곳 있었습니다.6학년 때는5학년 후배 한명이 시비를 걸고 심심할 때
마다 저를 때렸습니다. 결국 어느 날 제 같은 반 동급생 한명이 점심
시간 급식소에서 그 후배 놈에게 경고함으로써 해결 되었습니다. 같은
해 몇몇 급우 여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같은 반 남자급우 한명
과 주먹다짐을 하였습니다.1999년 2월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 했습
니다. 1999년 3월 구미 모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수업도 잘 듣고 그나마 양호 했습니다. 하지만 교우관계는 초등
학생 때와 다를 바가 없이 여전히 소극적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
기 초에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잠시나마 친했던 아이에게
게임방(오락실)을 벗어난 곳에서 현금 670원을 폭행, 갈취를 당하였
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놈이 다니는 중학교 교장에게 편지를 보내었
습니다. 이듬해 그놈은 중 2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불량써클
에 가입해서 많은 못된 짓을 일삼더니 참 안되었습니다. 학교를 좀처
럼 적응을 못한 저는 중1때 담임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교무실을 자
주 드나들었습니다. 중1 여름방학 끝나고 개학 후 어느 날 학교 수업
을 마치고 집으로 하교하는 길에 작은 카센터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온 중학교 중퇴생(당시 만 15세) 한명에게 협박을 받았고 제가 가진
현금 1,900원 중 1, 300원을 갈취 당했습니다. 그 일은 해결된 사건
이고요 그해 겨울 같은 반 동기생 한명이 장난을 쳤는데 제가 다른 급
우가 장난을 친 것으로 오해를 하여 그 급우와 싸우게 되었고 그 급우
에게 쌍코피를 내었습니다. 그때 담임께서 싸움을 했던 두 사람을 교
무실로 데리고 갔고 조용히 일단락을 시켰습니다. 그 후 저와 싸웠던
그 급우의 다른 반 친구가 하굣길에 저를 기다린 후 저와 같이 가자고
해서 저를 데려가서 학교를 한참 내려오더니 그 때 있었던 일을 묻더
니 저의 복부를 두어 번 가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따졌고 경
고를 했습니다. 전 그 다음날 담임께 사실을 알렸고 저랑 싸웠던 급우
의 친구를 불러서 그 동급생의 잘못을 지적하며 사태를 일단락 시켰습
니다. 중2시절 초교 4학년 때 전학 왔고 저를 괴롭혔던 그 초교동창이
같은 반 급우가 되었고 저를 특수반 출신이라고 놀렸고 심심할 때 마
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당시 중2 담임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고
발을 했고 그 해 학교 결석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1주일에 한번을 하
다가 두 번을 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전 학년 통틀어서 20여일이나
되었습니다. 중2때 오후 5교시 어느 날 국어과 여교사가 같은 반 급우
들이 보는 앞에서 인간적인 모욕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중2때 여름 어
느 날 방과 후 농구반수업시간에 맞춰 농구골대가 있는 운동장으로 갔
고 동급생 한명이 나에게 농구공을 던져달라고 했고 던져준 나는 실수
로 그 동급생의 등에 던지게 되었고 그 동급생과 저는 마찰을 일으켰
고 화가 난 저는 그 길로 집으로 갔습니다. 중2때 야영을 불참 했었습
니다. 중3시절 저에게 해가 되는 동급생들을 두 손을 불교식으로 모아
저주를 했습니다. 같은 해 여름 때 일부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단짝친구로 만들기 위해 저희 집에서 놀게도 하고 라면도 끓여서 대접
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행정실 시설계 직원과
두 차례 마찰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중학교에서도 늘 혼자였습니
다. 제가 아는 몇몇 급우들에게 간단한 대화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동년해 때 중2시절 인근 반에 전학을 왔던 한 동급생이 가끔씩 저를
괴롭혔습니다. 2002년 2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002년 3
월 구미 시골의 모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
에는 복학생과 유급생들이 많았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1~2살가량 많
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급생 및 복학생들 상당수가 적응을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고 1시절 고2 휴학생 유도부원 중 대표
격 한명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유
도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사들이나 학부모에게는 온갖 착한 척 다
하는 이중적인 놈들이었습니다. 자신보다 후배이면 후배들 등쳐먹고
부려먹고 만날 때마다 인간적인 모욕을 수시로 줍니다. 나이 많은 유
도부원들 몇 명이 고교 2학년 때 복학을 하면서 동창이 되었습니다.
그 때도 저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고3때 졸업사진
촬영을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싶은 놈들입니
다. 어느 날 저보다 2살 많은 유급생이 제가 소속되어 있는 반 창문을
두드리면서 창문을 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줬더니 제 겨
드랑이 밑 부분을 만졌고 저는 얼른 선으로 뿌리쳤습니다. 좀 수치스
러웠습니다. 고1시절 어느 날 중학교 전용 화장실에서 같은 반 급우와
소변을 보고 교실(건물이 적어서 중학교 건물을 고2 때까지 사용)로
돌아가던 중 저 보다 2살 많은 유급생 두 명이 중학생 전용 화장실로
향하던 중 유급생 한명이 나와 같은 반 급우를 부르더니 "너 왜 이화
장실을 쓰냐? 혹시 담배 피우냐?" 물었고 우리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말했고 옆에 있던 유급생이 안 피웠으면 됐다고 보내라고 했는데 말을
건 유급생이 너희들 앞으로 이화장실 쓰지 말고 큰 건물 화장실을 사
용하라고 하면서 저와 급우에게 고개를 들게 한 뒤 주먹으로 각각 한
대씩 가격을 하였습니다. 전 멍이 조금 들었습니다. 고교생활 내내 행
정실 시설계장과 부딪힐 때마다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고1때 그 당시
상주대 1학년이었던 교무보조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여자가
궁금해서 그 당시 교장 선생님께 그 여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물었
습니다. 그게 죄가 되었는지 그 여자가 저를 스토커로 몰고 따지더니
2학년 한 선배에게 소문을 내었고 그 선배가 너 그 교무보조 스토커지
물으면서 추궁했고 일부 소문이 났었습니다. 제가 오해를 산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학교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교무실에
자주 드나들 이 하는 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쫓
아간 적도 없고 집이나 핸드폰 번호는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찌
됐건 당분간은 선배들과의 관계는 더 악화 되었습니다.원래 선후배 관
계가 좋지 않았지만……. 기본 적인 것도 조차도 물어볼 수 없었던 것
인지 미스터리 입니다. 고교시절 선후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도 못
했습니다. 고1때 같은 반 여자급우가 저에게 물 한 컵 떠오라고 심부
름을 시켰고 저는 거절했고 그 여자급우와 마찰이 빚었습니다. 고2때
야자 첫날 같은 반 유급생 한명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
고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잠시 누워 있었는데 그 때 야자감독(사회과)
선생이 저를 인간적으로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선생은 애들처럼 장난
이나 좋아하고 문제아들 단속도 제대로 안하는 그런 인간이었습니
다. 전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하여 엎드려서 울고 말았습니다. 이 일
을 알게 된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다음날 새벽에 양주를 드셨습니
다. 저는 고교 때 매 학년 때마다 야자를 조금씩만 하다가 빠졌습니
다. 어차피 혼자서도 공부도 못하고 대학도 갈 생각도 없고 동급생들
과의 불화도 끊이지를 않고 하니 야자를 빠졌고 보충수업도 고교시절
내내 빠졌습니다. 고2 때 상주에서 야영을 갔는데 숙소에서 고2 야자
첫날 집적거렸던 유급생 한명이 캔 음료하나 뺏어 먹더니 빵까지 뺏어
먹었습니다. 저는 보복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요-_-;; 뒤
이어 같은 반 급우와 동급생 한명이 같이 먹자고 구슬리면서 빵을 뺏
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고2 때 어느 날 체육시간 유도를 배우는 시간
인데 남자교생(유도선수 출신) 한명이 저를 반급우들 보는 앞에서 인
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새끼를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고2 가을 때 체험학습을 가기 전 학교로 가는데 3학년 선배가 제 동급
생을 불러서 간식거리를 뺏어먹고 하다가 저의간식을 뺏어 먹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거부하는 행동을 했고 열 받은 그 새끼는 저에게 시비
를 걸었고 그 때 실장이었던 여자급우가 원래 그런 놈이라 하고 일이
일단락되었습니다. 화가 난 저는 다음날 담임께 다 알렸고 그놈이 더
이상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고2때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부모님의 설득으로 겨
우 진정했지만 저를 붙잡으려는 선생님 한명이 없어서 섭섭했습니다.
고3때 그 당시 실장이 장난을 심하게 치는 편이었는데 그 실장과 한
번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2~3 때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건축일 동
료의 아들과도 가끔씩 마찰을 빚었습니다. 고3 때 오상 고에서 2학년
때 전학을 온 놈과 같은 반이었는데 그놈이 장난을 심하게 치고 저에
게 인간적인 모욕을 주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해가되는 인물을 저주하
기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그 노트에서 해당자 이름과 온갖 저주스
러운 글과 욕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하루 전 시
장에서 낮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 그들의 공간에서 치성 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세면실에서 찬물에 샤워를 하라고 시키더니 저에게 한복
을 입혔고 요상한 동작을 시키더니 절을 하게 했습니다. 선무라는 여
자가 저에게 "땅에 함부로 침을 뱉지마라 터줏 신이 있다고 말했고 당
신 아버지에게 업보가 많고 그 업이 당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고 말
했습니다." 1주일동안 누구에게도 말을 하면 치성 제를 지냈던 것 효
력이 떨어지고 복이 달아난다고 말했습니다. 총 2번 방문을 했고 첫날
밤 10까지 선감인가? 선무인가? 저에게 쇳내교육을 시켰습니다. 1주
일 뒤에야 부모님께 알렸고 부모님에 의해서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강증산을 교조로 하는 민속종교 D종파에서 분파 된
단체인 것 같습니다. 2005년 2월 고등학교 졸업 이후 2005년 3월경
군 신체검사 영장발부 이대로 군대에 가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고
2005년 3월 정신과 1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 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도 성질이 다혈질적인 중년남자와 마찰을 빚었
습니다. 어느 날 병동 휴게실에서 저녁에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
렀는데 그때 그 다혈질적인 중년남자가 시비를 걸고 달려들었는데 주
변에 있던 환자들과 PK 및 간호사들이 말렸고 다시 잠잠 해졌습니
다. 그때 제 병명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회피성 인격 장애였습니다. 4
월에 대구 지방 병무청에서 병사용 진단서를 정신과 군의관에게 보여
주고 여러분이야 검사 끝에 7급(재신체검사)을 판정받고 동년 10월?
그때 전의 병사용 진단서를 들고 재검을 했고 다시 7급을 판정받고 2
주 이상 구미의 중소병원에서 정신과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20~21살
때는 유독 눈물이 많았습니다. 2006년 3월 다시 같은 병무청에서 정
신과 담당 군의관에게 기존의 병사용 진단서와 최근에 치료를 받았던
병사용 진단서인가? 소견서인가?를 제출하고 5급(제2국민역)을 판정
을 받았고 심사실에 들어가서 재판정을 받고 검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같은 구미중소병원에서 정신과치료를 2주 이상 더 받았습니다. 이후
줄곧 집에만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5
월 "빨간 일기장"을 구입하고 제 과거고교시절 저에게 해를 끼친 동창
들과 유급생, 선배들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거나 싫어했던 고종
사촌 등을 저주하는 글을 남기고 리스트를 작성을 했습니다. 심지어
입술을 뜨거나 등 피가 날 경우에 그 책에다가 피를 발랐습니다. 전에
고교시절에 작성했던 블랙리스트에도 피를 묻혔습니다. 지난 2010년
2단계 "공공근로사업(2010.4.5~2010.6.18)" 을 통해서 일을 잠시
했습니다만 반장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두 번 이상 아버
지와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저도 아버지도 술에 만취한 상황이
었습니다. 저는 살아야 되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평생을 살면서 단짝
친구 한명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도 여전하고요
학창시절의 안 좋았던 기억 상처투성이 되었던 지난과거가 또다시 되
풀이되기가 실고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왜 나 혼자서 이렇게
세상을 부딪치며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내가 할 수
있을게 아무 것도 없고 사는 게 지루하기만 합니다. 로또에 매달려서
1주일에 천 원씩 투자를 해서 살 수 있는 희망을 노리고 있지만 잘 되
지가 않았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세 때 알아보고 작년과 요 최근에
수면제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힘든 경우가 왔을 때 죽게 되
면 얼마나 편하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터 넣고
얘기를 할 대상도 없고 저를 이해해 줄 대상도 없고 힘듭니다. 결혼도
안하려고 합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도 딸릴 터 저 하나도 추스르
고 사는 것도 힘들고 제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상처 주는 교육을 하는
아버지가 되는 게 너무 싫기 때문에 아이를 안 낳고 싶습니다. 외할
머니께서 지난 설 연휴 때 걸레질을 하시면서 "사는 게 와이리. 지엽
노?"와 막내 외삼촌께서 말씀하신 " 사는 것 가체가 지옥이다." 이 말
씀이 자꾸 와 닿습니다. 해결책이 없을까요? ㅠ_ㅠ;; 즐겁게 살 수 있
고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용이 요약도 제
대로 안되어 있고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고 그렇지만 서러웠던 감정
이 복받쳤고 감정에 쏠리다 보니 이렇게나마/이나마 글을 올리게 되
었습니다. 끝까지 봐 주셨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비난이나 비방 같은
것은 하지 말아 주세요. ㅠ_ㅠ;; 저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됩니다.
?다 읽은분 있을까요?
저는 저 글쓴사람에게 소설가나 수필가
작가를 권하고 싶습니다
재미없는글도 길게쓰는 재주를 가진분은 독특한 재량이 있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