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전격 은퇴 발표… 그가 달려온 축구인생 24년
2005년 7월.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에인트호번으로부터 박지성을 영입했다. 2004~2005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박지성이 보여준 활약상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영입한 3가지 이유를 언론을 통해 밝혔다. 슈팅력도, 패싱력도 아니었다. 3가지는 활동량, 자세, 총명함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은 머리가 좋고 훈련이 잘됐으며 축구를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 무명으로 히딩크에 전격 발탁… 2002년 월드컵 한국 4강 견인
에인트호번 거쳐 맨유 진출, 퍼거슨 감독 아래서 전성기
“선수들을 위한 진짜 선수” 기술보다 성실성 인정받아
박지성은 그 3가지를 맨유에서 7년 동안 확실하게 보여줬다. 맨유같이 화려한 기술을 뽐내는 선수들이 많은 팀은 공수 연결고리 노릇을 하면서 궂은일을 도맡는 살림꾼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카를로스 테베즈 등 정상급 기술을 가진 공격수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을 혼자 감당했다. 태클, 공간 침투, 뒷공간 커버, 신속한 수비전환, 가로채기, 패스길목 차단 등이었다. “선수들을 위한 진짜 선수”(A real player for players)라는 게 박지성에 대해 동료들이 내린 평가의 핵심이다. 박지성이 동료들을 위해 뛰었기에 맨유는 이길 수도 있었다.
이는 박지성의 스타일이 됐다. 박지성은 꾸준한 훈련과 노력으로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배우려는 성실한 자세로 훈련과 경기에 임했다. 어리석은 플레이, 과격한 플레이, 감정적인 몸동작 등 자칫 팀에 해가 될 수 있는 행동들을 자제하면서 팀이 공수에 걸친 균형을 잡기 위해 총명하게 플레이했다. 서형욱 해설위원은 “박지성의 발에 흰색 페인트를 바르면 그라운드가 온통 하얗게 변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상대 선수들은 “오토바이” “모기” “경비견”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영국 언론들은 “세개의 폐” “두개의 심장” “산소탱크”라는 별명을 달아줬다. 현지 언론이 박지성에게 가장 많이 내린 평가는 “공수에 걸쳐 열심히 뛰었다”였다. 얼핏 듣기에 “골을 넣어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보다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열심히 뛰었다”는 말은 박지성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다른 선수들의 기술이 부러웠지만 나는 내가 가진 활동량이라는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다”면서 “내 장점도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렇게 박지성은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자세로 쉼없이 뛰었고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감정을 컨트롤하며 오직 팀과 동료를 위해 희생했다.
박지성이 은퇴한 나이는 33세다. 현재 스포츠의학 수준을 감안하면 은퇴하기에 이른 나이다. 박지성이 예상보다 빨리 은퇴한 이유는 무릎 부상 때문이다. 박지성은 “특별히 어떤 경기에서 크게 다친 적은 없다”면서 “일본에서 뛸 때부터 좋지 않은 무릎에 자연적으로 무리가 쌓인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이 만일 기술로 승부하는 선수였다면 조금 더 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량으로 살아남은 선수였던 만큼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신체가 약해지면 선수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박지성이 지금 나이에 은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지성이 세계 최고무대에서 성공한 비결은 성실함과 노력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가 상대적으로 일찍 유니폼을 벗게 된 이유도 ‘너무나도 성실하게, 끊임없이 노력한 축구 인생’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