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 내 오래된 트라우마 극복기

새로운오후 작성일 14.05.29 15: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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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하는 동창을 우연히 알았는데 이글을 기억하길래 다시 올려봅니다.  

 

년 전 까지만 해도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서 "X8, 우쒸, 악,악,악" 거렸다.

사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그런 않좋은 습관이 적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어떠한 상황에 걸리면 작동되는 욕설과 비명의 잔치가 남아 있음을 오늘 또한번 보았지.

 

트라우마.

아무 이유없는듯 해도 모든 반응에는 원인이 있는것이다.

 

따따따블 * 트리플 A형이어서 그런다고?

어느정도 맞다고 보는데, 주변에 이런 사람은 나 아니고도 많기 때문에 혼자만의 병은 아니야.

 

초등학교 6년,

부천으로 전학을 온 어느 학생이 있었어.

이 학생은 공부에 관심도 없고, 하라는 사람도 없고, 방목으로 자라는 데다가

못 견딜때 쯤 이발소가서 머릴 깍을 정도로 꼬질 꼬질하기도 했을 것이야.

 

6학년 5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 이혜진.

혜진이는 등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머리에 공부도 잘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이영애 어린 시절이 저러지 않았나 싶어

 

2학기 짝을 정할때,

1학기 때와는 반대로 남학생이 앉고 싶은 자리에 한칸씩 자리를 하면

여학생들이 맘에드는 짝에 가서 앉는 방식을 선생님이 지시하셨어.

 

아무래도 예민한 여학생들은 선듯 먼저 남학생 옆으로 가질 못하고 있었는데

착하기도 착하고 예뻤던 그녀가 내 쪽으로 맨 먼저 걸어 오고 있었다.

언감생심 어린마음이지만 쉽게 좋아할 수 없을 만큼 차원이 다른듯한 혜진이가 가까이 올수록

'설마 내 옆자리겠어?' 하고 있는데

사뿐히 내 짝궁을 자처하고 온것이다.

'뭐지?'

 

난 부러워하는 여느 친구들 시선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그냥 좋은 맘만 있었던건 아니였던 기억이고.  

얘는 왜 하필 내 자리로 왔을까 생각해봐도 도통 하느님만 알뿐 이해할 수 없었지.

 

아마도 선생님 말 잘듣는 여린 마음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 난처할 선생님을 배려한거 같기도 하고

나를 선택한것은 더 좋은 자리를 타 여학생에게 양보(?)한게 아닐까도 싶었다는건

머리가 어느정도 컸을 무렵 짐작 되더군.

그러고도 다른 여학생들은 계속 주저하며 움직이지 않자

선생님은 1학기와 동일하게 여학생들을 앉히고 남학생들이 짝궁을 차지하게 하는 방식로 바꾸면서

 

결국 혜진이와는 다시 짝이 되진 않았다.

그리 아쉽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참 마음이 따듯했던 동창으로 기억이 남는다.

 

어느 날!

초딩 동네가 뻔하다 보니 우리 엄마와 함께 대화하는 아줌마가 나한테 몇반이냐 물어보더만...

혜진이 엄마였다.

혜진이 엄마는 연달아 담배를 피우는데 뭔가 납득이 않되~!!

 

지금도 만나는 친구 정균이한테 딱 한번 얘기 했다. 정말로 딱 한번!

 

"혜진이네 엄마 담배 피더라~!"

 

이윽고 반에 조용히 말들이 퍼졌겠지.

 

어느 날 만난 혜진이 엄마가 나를 매우 타박하셨어.

애들 모르게 담배도 밖에서만 피워 왔는데 딸이 그걸 알고 학교를 안가겠다고 울며 집에만 있다고.

 

'내 마음이 매우 아프다.'

자책도 했지만 딱히 내가 해결할 일도 없고, 할 수도 없다.

 

8살 터울 우리 둘째 형과 부천에서 전철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리는데 한마디 하더만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너는 왜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이후 머리속에 계속 맴도는 이말...

 

상처가 더 깊어졌다.

 

잊을만하면 어떤 이유를 알수 없는 자책감이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데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원인은 초등학교때라는걸 알고 실소를 하지만 잊을만 하면 발작이 나온다.

뭔가 어떤 시스템이 내 안에 생겨버린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 결혼뒤 애를 낳고 사는데도 그랬다. 

화장실에 혼자 있을때 문득 생각나면 나름 절제된 비명이랄까 소리랄까 지르고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서 무슨 일이 있는것 처럼 욱하는 심정이 분출 되고

 

이 증상을 해결 한다고 생각 해본적도 없고 , 그냥 어쩔 수 없는 오래된 고질병처럼 남아 있었는데

'이게 어디 부끄러워서 집 사람한테도 얘기할 꺼리나 되겠어?'

 

또다시 자다가 발작~!!

"아 뭤 때문에 그러는지 말을 해보라니까? 도대체 왜그러는건데?'

 

집사람 채근에 담담히 자초지종을 얘기를 했다.

 

"헐~!! 20년 전 있었던 초등학교때 일이라고? 나원참 뭐라 할 말이 없네...그냥 잠이나 자~!"

"그렇지? 나도 이럴 때마다 힘들어"

 

매우 신기한건 아무도한테 말하지 못하고 간직(?)했던 부끄러운 사연을 털어 놓는 순간

그 시스템에서 해방이 됬다는 것이다.

 

"어라?~!! 누구 한테라도 얘기를 하면 오래된 상처가 아물수 있구나!

 하지만 반려자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 있었던거지 이런 말을 어디가서 하겠어?  좀 그렇잖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건 그로 부터도 완전한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 아침

운전 중 또다른 내용으로 발작을 했다.

어느 분의 성함을 어젯밤 보던 책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27살쯤 때던가? 14년 전쯤

지역 청년모임을 하고 있던 나는 어느 유명한 분을 모셔서 말씀을 듣는 자리를 기획하였다.

어찌 어찌 소개와 추천으로 경실련에 계신 그 분을 내가 전화로 섭외하는데.

 

"신 사무총장님 부천의 청년들을 위해서 이러 이러한 주제로 말씀을 주실수 있을까요?" 

"아! 청년들이 부른다면야 저는 언제든지 갑니다. "

 

당시의 주제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강의가 끝나고

부천YMCA 7층에서 둘이 엘레베이터로 내려가며 봉투를 드렸다.

강의료라고 할순 없고 차비를 드린다는 생각으로...

5만원을 넣어서..

 

정말 우리 모임에 돈이 없었다. 한 3만원만 할까 하다가 딴에는 조금 무리해서 넣은건데...

당시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이분.. 사회적으로 상당히 높은 분이였다.

 

' 십만원을 넣었어야 했어... 무리했어도 십만원은 드렸어야 했어 " 가?

(너무 작은 금액이였어~!, 너무 작은 금액이였어~!, 너무 작은 금액이였어~!, 너무 작은 금액이였어~!) 

 

14년간 나를 괴롭히는 이 생각이... 참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시스템이 작동을 한 오늘 아침.

운전중 옆에 타고 있던 집 사람에게 이런 자초지종을 길게 설명했다. 왜? 해방되기 위해서... 방법을 알았잖아~!!

물론 어디에도 하지 못했던 처음하는 고해성사 였다.

 

묵묵히 듣던 이 사람. 갑자기 내 가슴을 턱 잡으며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거야 도대췌~!!"

"하하하하하하~"    '해방이다.'

 

아직 또 어떤 이유들이 깊은 상처가 되서 더 괴롭힐게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걸리기만 걸려라 내 아내한테 다 이를거야~!!

 

 

항상 내 주변에 문제가 생기고 상처가 남고, 또 해결을 하고 잊혀지고,

달리며 잊고, 톱질하며 잊고, 몰입해서 잊고, 술먹으며 재발하고 -,.-;; 

 

문제가 따블에 따따블로 닥쳐오면, 멈추지 말고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면 그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아마 난 그땐 숫가락 놓은 시점이 될거야. 계속 문제가 있는게 당연해 

쉽게 편하게만 사는 넘이 어디 있겠나 땅속에 들어가기 전에야...  

 

트라우마?

그거 별거 아니더라고... 그걸 몇 십년째 헤메고 있었던 시간이 아깝기에

이런 글로 내 기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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