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항공전 (3) - 배틀 오브 브리튼 데이

케이즈 작성일 14.06.08 0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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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기간에 놀다 놀다 지쳐서 올리다 못올린 글이나 올려볼까합니다.

 

이 글은 세계2차대전사에 대한 흥미위주의 글이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를 보면서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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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절판되었다는건 함정. 남은 재고로 팔고있다는건 안함정)

 

유럽 항공전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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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항공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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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용 한줄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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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놈들이 온다.

 

괴링이 부하들에게 '런던을 폭격한다!'라고 선언한 시각.

영국 정보부도 독일군의 이상징후를 포착해 내었고, 정보부는 '그날'이 왔다고 직감했다.

정확한 예측이긴 했지만, 정보부가 생각한 '그날'은 독일군의 영국본토 상륙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위험을 감지하긴 했지만 미묘하게 다르게 감지해내었다.

 

9월 7일 오후 8시를 기해 전 영국군에 '크롬웰 작전 개시'라는 급전이 하달되었다.

이것은 독일군의 바다사자 작전에 대비한 영국측의 대안으로,

이날을 위해 영국 육군은 약 5000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전원이 최신형 미국제 무기인 '톰슨' 기관단총과 '피아트' 대전차 로켓, 백린 수류탄,

돌멩이나 말똥으로 위장할 수 있는 특수폭탄, 고성능 저격소총등의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이 특수부대는

'코만도'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영국이 독일에 점령된 후에도 국토 전역에 산재한 폐광이나 동굴,

혹은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에 은신하여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공군에도 '1호 작전개시'의 명령이 떨어졌는데, 이것은 크롬웰 작전의 공군버전으로,

이 명령과 동시에 영국공군이 보유한 모든 항공기는 일제히 출격하여

남부 해안선에서 독일군의 상륙선단을 공격하도록 되어있었다.

다시말해 영국 공군의 목표가 독일 항공기에서 육군상륙부대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명령에 따라 출격한 비행단은 해안선을 따라 비행하며 주의깊게 관찰했지만,

독일군의 상륙선단은 발견할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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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 적이 없었거든.)

한참을 경계하던 끝에 기지로부터 그냥 귀환하라는 무전이 날아왔을 뿐이었다.

해안에 배치된 시민방위군이 밤을 꼬박 새며 경계를 했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독일군의 선단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비장한 각오로 시작된 크롬웰 작전은 불발로 끝났지만,

진정한 시련은 바다가 아닌 하늘로부터 런던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9월 8일 오전 11시.

영국 전투기대 사령부의 문을 열어젖히며 작전참모 '라이트'대령이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다우닝 장군에게 외쳤다.

"몰려오고 있습니다, 장군님! 이번에는 전례없이 큰 규모입니다!"

두 사람은 급히 방을 나와 작전 상황실로 내려갔다.

공군 여성 보조대원들이 표시한 대형 지도에는 전례없는 붉은색 나무조각으로 덮여있었다.

그것은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적기 편대가 영불해협을 건너오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장군은 그들의 목표가 런던이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기체가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 해안으로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공습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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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은 하늘로부터)

독일군이 이정도의 항공기를 동원했다면 그것은 아직 상륙작전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생각한 장군은 일단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이 독일 공군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냐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과연 영국 공군에 이 최후의 심판의 날과도 같은 공세를 버틸 힘이 남아있을까?

하지만 반드시 막아내어야 했다.

장군의 시선 끝에 걸린 상황판은 수개 중대의 허리케인과 스핏파이어가 이미 발진하여

요격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은 또다시 젊은 조종사들의 피가 하늘에 뿌려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하는 수 없는 일이다."

다우닝 장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영국 전투기들이 독일 폭격기를 요격하는 기본 전술은

폭격기가 목표를 찾아 편대 대형을 푸는 순간을 노려 일제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강철 덩어리처럼 한 덩이로 단단히 뭉쳐 있던 폭격기 사이로 뛰어들기 충분한 공간이 생기고,

적의 호위 전투기 Me-109가 방어해야하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전법의 가장 큰 약점이라면 공격의 타이밍이 지극히 짧다는 것이었다.

폭격기가 대형을 푸는 것은 폭격이 시작되기 몇초 전이며, 폭탄창 뚜껑을 열어놓기 전에 격추시켜야했다.

이 순간을 놓쳐버린다면 설사 폭격기를 격추시켰다 하더라도 지상시설이 파괴되는 것을 모면할 길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국군의 전투기들은 그 순간만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라이트'대령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상하군요. 놈들이 좀처럼 대형을 풀려고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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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뒤에는 늦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때처럼 폭격기에 명확한 폭격지점이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저 런던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 요량이었기에 어디에 폭탄을 뿌리든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폭격기들이 대형을 풀 이유가 전혀 없었다.

300대 남짓한 Do-17, He-111 폭격기의 밀집 대형과 그것을 빙 둘러싼 Me-109, Me-110 호위 전투기로 구성된

거대한 하늘의 선단은 테임즈 강을 따라 곧바로 런던 상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최초로 피해를 입은 곳은 '템즈 헤이븐'에 있는 거대한 군용 유류탱크였다.

직격탄을 맞은 석유탱크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불덩이로 변했고,

폭격기들은 그 불길을 뒤로한채 유유히 런던 중심부를 향해 갔다.

테임즈 강 기슭에 설치된 방공포대의 고사포가 사격을 개시했지만,

폭격선단의 비행고도가 너무 높았던 탓에 시한신관이 달린 고사포탄들은 독일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두번째로 피해를 입은 곳은 각종 포탄이 제조되고 있던 '울 워치' 조병창이었다.

고도가 매우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폭탄이 정확히 공장을 직격한 이후의 상황은 지옥 그 자체였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밝은 오렌지 색의 화염이 테임즈강 한복판까지 뻗쳐 나갔다.

로켓탄들이 점화되어 주변 주택까지 날아가면서 피해는 더욱 커져갔다.

계속해서 런던 부두, 선착장, 화물 창고들이 차례차례 박살났다.

테임즈강 하구 전체가 거대한 불바다로 변해버렸고, 정박해있던 선박들까지 모두 불타버렸다.

 

뒤이어 몰려온 제 2파의 폭격대는 고공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는 검은 연기를 목표로 삼아서

닥치는대로 폭탄창을 열어제꼈고,

실버타운, 커닝타운, 라임하우스등의 오랜 주택가와 상업지구들이 무너져내렸다.

특히 목조 주택들이 밀집되어있던 이스트엔드의 빈민가에서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격 개시 10분만에 아비규환이 되었고, 피폭현장을 헤쳐 나오던 사람들의 등 뒤에는

검은 십자가를 크게 그려넣은 독일 폭격기의 잔해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영국 전투기들이 반격을 개시한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잠시 공포를 잊고 분투를 벌이는 아군 전투기를 향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800만의 런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이날 상공전에서 영국 전투기는 47대의 적기를 격추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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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검은 십자가는 독일기를 뜻하는 마크였다)

 

폭격기들은 물러갔지만, 9월 8일 런던에는 밤이 오지 않았다.

폭격에 당한 오래된 주택들과 고층 건물이 타오르며 런던의 밤을 대낮처럼 밝혔고,

이 불길은 이튿날 아침까지 타올랐다.

성경에서나 나올법한 '최후의 날'같은 장면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공포에 떨었지만,

이런 폭격은 7일간이나 계속 되었고, 폭격에 의한 사망자는 3000여명,

무너진 건물속에 깔려 생매장당한 시민은 1만여명 이상이었다.

이처럼 아비규환인 가운데 하늘의 조종사들 못지않은 영웅들이 속속 태어나고 있었는데,

바로 전시를 대비하여 소집해둔 3만여명의 의용 소방대원들이 그들이었다.

바로 전 해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조롱을 받았던 그들은

밤새 불길과 싸우며 생존자들을 구조하는 일에 헌신을 다했고,

시민들은 이들의 헌신에 열렬한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폭격을 모면한 선술집들은 소방대원들에게 홍차와 빵을 무료로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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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조종사의 인기는 최고였는데, 대공습당시 소방대원들도 그에 못지 않았다고)

 

계속되는 독일군의 폭격에 시민들의 생활 형태까지 자연스레 변했는데,

이미 18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형편없는 위생시설과 매몰사고를 우려한 정부가 이를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몰려드는 시민에 결국 두손을 들어버렸고

런던의 지하철은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로 변했다.

집이 폭격당했을 때 소방대원의 생존자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외박'이라는 표지를 걸어놓은 빈집이 늘어갔다.

많은 이들이 모여듦에 따라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극장 단원들이나 서커스단의 광대들은 재주를 발휘해서 시민들의 공포를 잠시 잊게해주었고,

'로렌스 올리비에'나 '비비안 리'같은 당대 대스타들을 가까이서 만나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이처럼 많은 런던 토박이들이 하루하루 단련되어가면서 일치단결하여 투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제공되었고,

이것은 공포를 불러일으켜서 전의를 꺾어놓겠다는 괴링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왔다.

 

그리고 1940년 9월 15일의 일요일 -

훗날 '배틀 오브 브리튼 데이'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인 날이 다가왔다.

영국의 날씨로선 매우 드물게 햇빛이 쨍쨍한 초가을날이었다.

오전 10시쯤, 영국군의 레이더 스크린에는 무수한 흑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700여대의 전투기와 400여대의 폭격기로 구성된 독일군의 대편대였다.

오전 11시 3분, 전투 비행 사령부 예하 제11 전투 비행단의 선임 통제관 '에릭 존슨'중령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섯개의 전화기 중 첫번째 전화를 집어들고 소리쳤다.

"경보! 적기 내습!"

때마침 상공을 초계중이던 12 전투 비행단의 전투기 60대가 이들을 마중나갔다.

조종사 '안톤 맥도날드'소위가 기체를 급강하시켜 적의 폭격기 무리속으로 뛰어들어가며

 내지르는 함성이 지상 관제탑에서도 들렸다.

"텔리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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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大 항공전의 시작)

 

국회의사당 '빅벤'의 시계가 정오를 가리킬 무렵, 약 150여대의 폭격기가 런던 상공에 도달했다.

한대의 도르니에 Do-17 폭격기가 버킹검 궁전의 앞뜰에 폭탄 하나를 떨구는데 성공했지만,

곧바로 격분한 제 504 전투기 중대의 기총소사를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그대로 격추되고 말았다.

이 폭격기는 빅토리아 철도역의 광장 한복판에 말뚝처럼 처박혔고, 탑승원 전원이 즉사하였다.

바로 그 순간 제 504 전투기 중대의 '레이 홈즈'상사의 전투기도 적탄에 피격되었고,

낙하산을 타고 탈출한 상사는 어느 주택가 골목길에 놓여있던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욕설을 내뱉으며 기어나온 홈즈 상사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지만,

같은 방법으로 비행기에서 탈출한 독일 조종사들에게는 가혹한 대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캐링턴 오벌'의 크리켓 경기장 한복판에 떨어진 독일 폭격기 승무원은 쇠몽둥이를 들고 달려온 시민들에 의해

초주검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과 헌병의 순찰차들이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독일 승무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다.

"빨리 손 들고 나와요. 서두르지 않으면 당신들 맞아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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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탈출했지만 맞아쥬금.jpg)

 

오후 2시 무렵에 영국 상공에 일대회전을 벌이고 있는 양편 항공기 숫자는 최고조에 달했다.

제 11 전투 비행단 사령부로 달려온 처칠 수상이 비행단장 '키드파크' 소장에게 물었다.

"지금 예비기체가 얼마나 남아있소?"

"한대도 없습니다."

장군이 대답했다.

"지금 우리 영국공군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투기가 모두 공중에 떠있습니다."

BBC 방송의 아나운서는 머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공중전 상황을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실감나게 생중계하고 있었다.

"막 적기의 머리 위로 우리 공군의 스핏파이어가 내리 꽂힙니다. 총소리...! 아! 불이 붙었습니다!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적기가 차링크로스 역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인명피해가 예상됩니다... 지금 남동쪽에서 또 한무리의 적기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라디오 앞에 모여든 지하철역의 시민들은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환호와 신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열심히 중계하던 방송은 오후 2시 30분경까지 계속되다가 BBC 방송국의 안테나가 폭격에 날아가면서 중단되었다.

 

영국 남부해안에서 런던 상공에 이르는 길이 130km, 폭 50km, 고도 8000km의 공간에서는

글자 그대로 인류사상 최대규모의 대회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켄트주 상공에서 엄호 전투기가 없는 두대의 도르니에 폭격기를 발견한 '패디 스티븐스'소위는

기관총을 발사할 타이밍을 놓쳐버리자 그대로 적기 두대의 작은 틈사이로 급강하시켰다.

두개의 주익으로 좌우의 적기 꼬리를 잘라버린 그는 낙하산을 타고 탈출했다.

총탄 한발을 쏘지 않고 두대를 격추시킨 유일한 조종사인 스티븐스 소위처럼

이 대혈전을 치뤄 낸 영국 조종사들 중에는 유난히 소위 계급을 가진 사람이 많다.

비행 교육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한 신참 조종사가 중위로 진급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매우 낮았던 것이다.

 

오후 4시 경, 치열한 격전을 반복한 끝에 독일기들이 물러갔다.

온종일 전투 비행단의 통제실에서 공중전 상황을 지켜보던 처칠 수상이 작전 통제관 존슨 중령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네들 정말 잘해주었네."

라며 진심어린 칭찬을 해주었지만, 긴장이 풀린 중령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영국공군 사령부가 손실조사를 하였는데,

아군의 손실이 전투기 26대에 조종사 13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반해 독일기는 모두 185대였다!!

이 사실에 모두들 환호성을 올렸다.

비록 며칠 후 정밀조사를 통해 독일기의 실제 손실이 56대 정도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대승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1940년 9월 15일 - 배틀 오브 브리튼 데이는 영국 공군의 불멸의 투혼을 상징하는 자랑스런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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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만큼 영화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독일군의 참패였고,

'9월 15일 이후에는 오나전히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이라던 괴링의 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비록 그것이 기대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지만 어쨌든 제2차 대전의 향방을 결정지은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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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 괴링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코벤트리 폭격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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