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이슬 마시고 톳 씹으며..제주 앞바다 '19시간 표류'
[한겨레] 100여m 떨어진 곳에서 서치라이트가 보였다. 차가운 밤바다에서 10시간 넘게표류하던 김기준(41)씨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미친 듯이 휴대용 전등을 흔들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해경 함정은 김씨를 보지 못한 채 되돌아갔다. 눈앞까지 다가왔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제주도에서 스쿠버다이빙 업체를 운영하는 김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제주 차귀도 북서쪽1.1㎞ 지점에서 파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수중 촬영을 하고 있었다. 강한 조류 탓에 동료와 헤어져 수면 위로 올라온 직후 표류가 시작됐다. "금방 구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시간이 지나고, 결국 밤이 될 때까지 저를 찾지 못하더군요."
19시간 표류한 끝에 구조된 김씨를 살린 것은 '로빈슨 크루소'에 버금가는 생존 본능과기술이었다. 그는 8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새까만 밤바다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비결을 털어놨다.
스쿠버다이빙업체 운영 40대
드라이슈트엔 공기 채우고
휴대용 부표도 목에 감아
스티로폼 조각 모아 올라탄채
전문가답게 침착하게 대응
100m 앞 해경에 고함쳤지만 지나쳐
한치앞 안보이는 밤바다서 버티다
다음날 아침 극적으로 구조돼
김씨는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구조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생존 '연장'에 온 힘을 쏟았다.'물밥'을 먹고사는 전문가답게 침착한 대응이 큰 도움이 됐다. 물이 직접 몸에 닿지 않는잠수복인 드라이슈트를 입었지만, 체온 유지를 위해 주변에 떠다니던 스티로폼 조각을 이어붙인 뒤 상반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드라이슈트에 공기를 채워넣으면 가슴 위로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어쨌든 몸을 최대한 물밖에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이버들이 '소시지'라고 부르는, 공기를 채워넣으면 2m까지 길어지는 휴대용 부표를 목에 감아 고정했다. 기절하더라도 얼굴을 물 위로 내놓고 있기 위해서였다. 뚜껑이 닫힌 채떠다니던 빈 페트병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그 안에 맺힌 이슬을 마시며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해조류인 톳을 씹으며 버텼다. 김씨는 날이 저물자 마음을 다잡았다. 항공기나 배가 접근하는 상황에 대비해 전등의 배터리를 아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해경 함정이 눈앞에서 멀어지자 베테랑 다이버인 그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니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제주스쿠버연합회 회원 20여명 등 동료들도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표류 예상 지점을 찍어 해경에 알리고, 헬기 출동을 요청했다. 하지만 해경은 헬기 출항지인 제주공항에 초속18m의 강풍이 분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허천범(40) 연합회 회장은 "당시 표류 예상 지역이 좁혀졌기 때문에 낮에 헬기만 띄웠어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사고 해역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사비를 털어 어선을 섭외하고 직접수색에도 뛰어들었다. 결국 김씨는 다음날 오전 9시31분 해경과 민간 어선의 합동 수색과정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
김씨는 지난 2일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다. 그는 "처음에는 해경이 고마웠는데, 헬기를 띄우지 않은 점이나 야간에 해경 배가 나를 발견하지 못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더라. 좀 더적극적인 수색이 이뤄졌다면 밤새 표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경 관계자는"헬기는 해경 항공대 관측에 따라 투입할 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선을 다해 수색과구조 작업을 했다"고 했다.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608200006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