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도 모르면서.txt (약스압)

메밀밭파수꾼 작성일 14.07.23 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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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떼야 돼?”
  “몇 번을 얘기해. 떼는 게 좋다고.”
  “우리 입장만 생각할 게 아니라 얘 입장도 생각해야지.”
  “어차피 쓸데도 없어.”
  “쓸데가 있는지 없는지 자기가 어떻게 알아?”  
  “꼴에 수컷이라고 편드는 거야? 떼는 게 나아. 아니, 무조건 떼야 돼!”
  
  당장이라도 터트려버릴 것처럼 아내는 찬돌의 그것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댔다. “어, 어, 이러지마. 이건 엄연히 동물학대야.” 나는 그런 아내를 만류하며 언성을 높였고 티격태격하는 우리의 실랑이가 재미있던지 카운터에 볼일을 보던 수의사와 간호사가 큭큭 거렸다. 정작 당사자인 찬돌은 간호사가 건네준 소시지에 정신이 팔려 이 심각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으이구, 이 똥개야. 지금 소시지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니 부랄을 떼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찬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아내가 소시지 하나를 더 꺼내자, 이 미 친 강아지는 뭐가 좋은지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다. ‘전 몰라요. 뭘 떼든 상관없어요. 소시지만 주세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침까지 질질 흘려댔다. ‘으이구, 배알도 없는 개자식아.’
  혈액샘플을 채취한 수의사는 검사결과가 나오려면 며칠은 걸린다며 수술날짜를 다음 주로 잡아주었다. 아내는 오늘 당장 떼도 된다며 수의사를 재촉했고 나는 그런 아내와 소시지에 정신 팔린 찬돌을 끌고 병원문을 나섰다. 찬돌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동물병원을 나오면서도 싱글벙글 이었다.
  
  2달 전, 이곳 동물병원에서 데리고 온 강아지가 찬돌이었다. 작은 부스 안에 갇혀 있던 찬돌은 우리가 지날 때 마다 꼬리를 흔들어댔고 유리창에 착 달라붙고는 온갖 애교를 부렸다. 네발 달린 짐승이라면 딱 질색이었던 아내도 조금씩 찬돌의 재롱에 넘어가더니 결국 똥, 오줌을 내가 다 치운다는 조건으로 찬돌을 집으로 데려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찬돌이 입양되지 않았던 이유는 토이푸들치고는 덩치가 커서였다. 4개월 된 찬돌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가 2kg이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몸무게가 늘어났다. 매일같이 사료를 폭풍흡입 하더니 일주일 만에 3kg을 찍었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4kg을 가뿐히 넘어섰다. 2달이 지난 지금은 토이푸들 평균 몸무게의 2배인 6kg에 육박했다. 아내는 돌팔이 의사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날마다 커지는 찬돌을 이유 없이 구박하곤 했다. 
  
  “이거, 토이 푸들이 아니라 스탠다드 푸들 아냐?”
  “덩치가 좀 크면 어때. 귀엽기만 한 걸.”
  “코 컸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봐봐! 거시기도 더 커졌잖아.”
  “아직 성장기라 그래.”
  “코도 큰 게 좆도 커!”
  
  아내는 찬돌의 거시기를 기분 나쁘게 발로 툭툭 쳐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찬돌은 자신의 거시기를 걷어차는 아내의 발을 사랑스럽게 핥아주곤 했다. 
  
  아내가 중성화 수술을 결심하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유난히 이갈이가 심했던 찬돌은 아내와 내 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어찌나 심하게 물고 뜯고 하는지 하루라도 손가락이 성한 날이 없었다. 개껌과 인형을 사다줬지만 그때뿐이었다. 딱딱한 개껌은 수식 간에 먹어치웠고 인형은 몇 분을 못 버티고 솜 뭉텅이를 배 밖으로 토해냈다. 찬돌은 새끼사자마냥 뭐든지 물어댔고 찬돌에게 던져진 물건은 뭐든지 아작 났다. 보다 못한 아내는 찢어진 헝겊과 수건을 한데 엮어 걸레 같은 인형을 만들어줬다. 슈크레 인형을 닮아다하여 슈크림이라 불렀는데, 볼품없는 허수아비처럼 생겨먹은 누더기 인형은 슈크림이 아니라 슈레기가 더 어울릴 법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찬돌은 그것을 좋아라했다. 제 덩치만한 헝겊뭉치를 입에 물고는 바닥으로 내팽겨 치기를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했다. 예쁜 거라곤 전연 거리가 먼 슈크림이었지만, 내구성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기똥찼다. 온종일 물고 뜯고 씹고 맛보고 해도 거뜬했다. 
  찬돌은 물고 뜯고 씹는 것만으로 만족을 못했는지, 하루는 슈크림을 양손으로 껴안고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붕가붕가를 시도하려는 거였다. 처음 목격하는 찬돌의 거시기한 풍경에 아내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찬돌은 이걸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라 허리를 어설프게 돌려댔다.   
  
  “어머, 쟤 봐. 그거 하나봐.”
  
  아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찬돌의 허리놀림이 귀엽다며 까르르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찬돌은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피스톤 운동의 원리를 터득하고는 앞뒤로 강하게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그럴수록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신의 아랫도리를 슈크림에 바짝 밀착시켰다. 누더기 인형 가랑이 사이로 작은 고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흡사 바비인형으로 그 짓을 하는 것처럼 음탕하면서도 야릇했다.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따라 찬돌의 고추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 발기된 성 기가 표피를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찬돌의 거시기는 정말이지 거시기했다. 어떤 동물의 혓바닥 같이 생겨먹은 그것은 벌겋고 미끈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징그러운 해산물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해삼도 아니요, 멍게도 아니요, 말미잘도 아닌 개불이었다. 수컷인 내가 봐도 봐줄 만 한 물건이 못 되는 물건이었다. 
  
  “카악! 저. 저거 봤어?”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랬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 눈치 없는 개 새끼는 자신의 본능에 더욱 충실하게 붕가붕가를 해댔다. 
  
  “이 미 친 개 새끼!”
  
  보다 못한 아내는 찬돌의 엉덩이를 뻥하고 걷어찼다. 찬돌은 개불 같은 거시기를 휘날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천천히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그대로 머리부터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성욕에 눈을 뜬 찬돌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발딱 몸을 일으키더니 시뻘건 개불을 불끈 세우고는 또다시 슈크림에게 달려들었다. 발정난 개처럼, 아니 발정난 개가 되어버린 찬돌은 거칠게 슈크림을 몰아붙였고 흥분한 아내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찬돌의 목덜미를 낚아채고는 철창 안으로 집어던졌다. 
  찬돌의 첫 붕가붕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내는 짐승 같은 찬돌이 불결하다며 자신의 곁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아무 잘 못도 없는 나도 같은 방을 쓰지 못하게 했다. 나의 그것을 보면 찬돌의 그것이 오버랩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졸지에 거실로 쫓겨난 두 마리 수컷은 서로 껴안으며 외로운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찬돌은 첫 섹 스파트너를 잊을 수 없었던지 잠자리에 들면서도 신발장에 던져진 슈크림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찬돌이 안쓰러워 아내 몰래 슈크림을 던져주었는데, 그걸 눈치 챈 아내가 찬돌의 전부인 그녀를 찬돌에게서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찬돌이가 뻔히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짐승 같은 것들, 둘 다 불결해!”
  
  아내는 방문을 걸어 잠갔고 그날 이후로 찬돌의 붕가붕가도, 나의 붕가붕가도 끝장나버렸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아내는 찬돌의 거시기를 자르지 않으면 당장 갖다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찬돌을 대변하여 강경하게 맞섰다. 
  
  “붕가붕가는 동물의 본능이요, 종족보존을 위한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다. 한낱 인간인 우리가 그걸 하지 못하도록 거세하는 것은 동물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요, 자연의 섭리에 거역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스럽게 나둬야 한다.”
  
  그러자 아내는 어디서 뭘 준비했는지 유인물 한 장을 꺼내들고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첫째, 영역표시를 안 하게 되어 집이 청결해진다. 둘째, 성적욕구에 따른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성격이 온순해진다. 셋째, 고환종양, 전립선암, 항문주위선종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끝으로 이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개불 같은 거시기를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만일  저 개 새끼의 부랄을 떼지 않으면 당신 거시기도 내 앞으로 들이밀지 말 것!"
  
  결국, 찬돌의 거시기가 아닌 내 거시기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라도 중성화 수술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찬돌, 미안하다. 나라도 살아야겠다.’
  
  병원에서 연락이 온 것은 5일 뒤였다. 혈액검사와 엑스레이검사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몸이 아주 건강하니 언제든 수술해도 된다고 했다. 아내는 내일 당장 가겠다고 답했다. 이제 내일이면 찬돌의 그것도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몸에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뗀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걸 떼어내면 아무 이상 없는 몸도 이상해지는 게 아닌가. 뭐가 괜찮다며 수술을 부추기는지 돌팔이 수의사의 소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내 거시기를 떼는 것도 아닌데도 아랫도리가 허전하고 찝찝했다. 낼이면 찬돌은 수컷도 암컷도 아닌 그 무슨 게이가 되는 건데, 이건 엄연히 불법적인 거세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우리집 개가 동네 암캐들을 강   /간하는 성범죄견이란 말인가. 고작해야 누더기 같은 헝겊뭉치에다 자위행위를 한 것뿐인데, 이 어린 것의 작고 귀여운 고환을 왜 떼려고 하는지 아내가 야속하고 야박하기만 했다. 식탁 밑에 앉아있는 찬돌은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먹을 것을 달라며 헤헤 대고 있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는지 아내는 기분 나쁠 만큼 즐거워보였다. 
  TV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내가 즐겨보는 연속극은 한결같이 이런 내용이었다. 바람난 남편이 아내의 친구와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 친동생이었고 (어떻게 자신과 닮은 친동생도 몰라본다 말인가!) 구박받던 가난한 딸이 집에서 쫓겨나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알고 보니 부잣집 딸내미였고 (도대체 재벌회장들은 얼마나 씨를 뿌리고 다닌다 말인가!) 대부분 막장에 쌈장을 비벼 쌈을 싸먹는, 그런 드라마였다. TV화면에는 남편의 불륜장면을 목격한 순진한 아내가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통곡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보고 들으라는 듯 혀를 찼다. 
  
  “쯧쯧, 항상 그게 문제야. 저런 놈들은 거시기를 잘라야 돼.”
  
  그 얘기가 왜 안 나오나 했다. 나는 리모컨을 얼른 뺏어와 채널을 돌렸다. 뉴스에선 강력범죄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초등학생을 강제추행한 아동 성폭행범이 현장검증을 하는 화면이 흘러나왔다. 유가족과 동네 주민들이 오열하고 그 화면 위로 화학적 거세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아나운서 멘트가 이어졌다. 어김없이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수컷들은 모조리 다 거시기를 잘라야 돼!”
  “밥맛 떨어지게 진짜!”
  
  먹던 숟가락을 냅다 밥상에 던졌다. 농담인데 뭘 그러느냐며 아내는 잔소리를 해댔고 나는 아무리 농담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며 화를 냈다. 
  
  “이건 명백한 성희롱이야. 여성가족부, 아니 남성가족부에 고발하겠어. 그리고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영혼이란 게 존재해. 그러니 찬돌에게도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가.”
  “그건 또 뭔 개소리야.”
  
  흥분한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고, 지껄이는 대로 수습하느라 급급했다. 
  
  “잘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모습이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개의 형상일 수도 있어. 왜냐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자기가 키우던 개의 형상을 본 따 대충 만들었기 때문이야. 웃지마, 사실이야! 성경연구자들이 지들끼리 짜고 천지창조 대목에서 이 부분을 뺀 거야. 심판의 날, 하느님의 오른편에 예수가 찬돌의 모습으로 앉아있을 때 지금 내뱉은 말 때문에 연옥 갈 거 지옥으로 떨어질 걸. 그때 가서 찬돌의 부랄을 다시 붙이겠느니 마느니 해도 소용없어!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해?”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얘기를,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게 지껄였다. 기가 찬 아내는, “수컷끼리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며 콧방귀를 꼈다. 이 심각한 와중에도 찬돌은 엎어진 접시에 코를 박고는 계란 후라이를 먹어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으이구, 개 새끼야. 지금 목구멍으로 후라이가 넘어가니? 낼이면 후라이 두 짝이 아작 날 판국에.’ 
  
  담날, 회사에 출근하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장에게 몸이 아프다며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다. 어디가 아프냐는 부장의 질문에 하마터면 고환이 아프다고 말할 뻔했다. 
  
  “누굴 생각하면 아니, 작고 동그란 무엇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게 아랫도리가 허전하고 식욕도 없어지고 성욕도 뚝 떨어지는 게 예쁜 여자를 봐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고 아무래도 여성 기피증, 아니 암컷혐오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같은 수컷인 부장님은 이런 제 기분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이 놈 진짜 정신이 이상하다 싶었는지, 부장은 내 등을 떠밀며 얼른 병원으로 꺼지라고 했다.
  
  출근한지 한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찬돌을 껴안고 병원으로 나서려는 참이었다. 자기가 아플 땐 야근에 외박까지 잘만 하던 놈이 개 새끼 부랄 뗀다고 조퇴까지 하냐며 또 타박을 줬다. 나는 아내에게서 찬돌을 냉큼 빼앗고는 도망치듯 안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단호하게 경고했다.
  
  “내 거시기를 자르기 전에는 절대 자를 수 없어!”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내는 본인이 직접 자르겠다며 부엌에서 가위 두 개를 꺼내들었다. 정말이지 둘 다 잘라버릴 기세였다.
  
  결국 아내의 기에 눌려 집 밖을 나왔다. 찬돌은 산책 가는 줄 알고 마냥 신이 났다. 병원에 가까워지자 꼬리를 풍차처럼 돌리며 병원으로 달려들었다. 전에 먹었던 소시지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밀린 수술이 있으니 수의사는 찬돌을 맡겨두고 가라고 했다. 챙겨온 간식을 찬돌에게 건네주려고 하자 곁에 있던 간호사가 만류했다. 마취제가 독해서 먹을 것을 다 토해내니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고 했다. 결국 불쌍한 찬돌을 홀로 두고 병원을 나와야만 했다.  
  작별인사를 못한 것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문득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포경 수술을 앞두고 울고 있던 어린 내 등을 토닥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괜찮다. 너도 이제 진정한 남자가 되는 거다.’ 
  같은 남자로서 찬돌에게 마지막으로 할 얘기가 있으니 아내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쓸데없는 짓 할 생각 말라며 아내는 손가락으로 가위질을 해보였다.
  
  다시 동물병원으로 들어갔을 땐 로비에 아무도 없었다. 먼저 있던 수술을 위해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찬돌이가 갇혀있는 케이지로 조용히 걸어갔다. 케이지의 문을 열고 녀석이 젤 좋아하는 닭고기 통조림을 따다 줬다. “찬돌, 이거 먹어.” 찬돌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저게 돌았나. 웬일로 이러지?’ 하는 표정이었다. “괜찮으니 어서 먹어.” 거듭 통조림을 들이밀자, 그때서야 허겁지겁 통조림을 먹어댔다. 앞으로 다가올 무시무시한 재앙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최후의 만찬을 맛있게 먹어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맘이 짠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북받쳐왔다. “찬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나도 모르게 와락, 찬돌을 껴안았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질 찬돌의 작은 구슬을 어루만져주었다. 생명의 젖줄이자 씨앗인 그것을, 찬돌이가 나왔었고 나도 나왔었을 생명의 구슬인 그것을, 나는 한동안 쓰다듬어주었다. 채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져야 할 찬돌의 자식들에게 나는 오랫동안 미안해했다.
  
  몇 시간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간단한 수술이긴 하지만 전신마취라 회복하려면 며칠 걸려요. 그동안 먹을 거 주지말구요. 상처부위를 핥아댈 수 있으니 깔때기는 씌워 놓으세요.”  
  
  찬돌의 목에는 해바라기 모양의 고깔이 씌어 있었고 마취제에서 덜 캔 찬돌은 비몽사몽이었다. 수의사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같은 남성으로서 양심의 가책도 없냐며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대기 중인 손님들 앞에서 개쪽을 당할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품에 안은 찬돌의 수술부위를 만져보았다. 상처부위가 붕대로 꽁꽁 덮여있었지만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분명 없어진 느낌이었다. 평평하고 납작하고 허전했다. 그걸 만지는 내 기분도 납작하고 허전했다. 
  
  “아픈가봐. 계속 토하네.”
  “그럼 아프지 안 아프겠어? 몸에서 그걸 떼어 냈는데!”
  
  집에 와서도 축 쳐져 있는 것이 찬돌은 복날에 개처럼 누워있기만 했다. 가끔 불편한 몸을 일으켜 걸어 다니려 애썼지만, 약기운에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없는지 픽하고 쓰러졌다. 초롱초롱했던 눈망울은 동공이 풀려 흐리멍덩했고 술에 취한 듯 온몸을 흐느적거렸다. 매 시간마다 구역질을 해댔고 병원에서 먹었던 통조림 잔해들을 모두 토해냈다. 더 이상 토해낼 게 없는데도 노란 위액을 뱉어내며 자꾸만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런 찬돌이가 아내도 안쓰러웠는지 꿀물을 타다 주기도 하고 무릎담요로 몸을 덮어주기도 했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괜찮긴 개뿔! 이게 괜찮아 보여?”
  
  아내는 나를 한번 쏘아보더니 오늘은 참는다는 심정으로 화를 삼켰다. 자신도 궁금했는지 찬돌의 상처부위를 자꾸만 들춰보곤 했다.  
  
  “없으니깐 허전하긴 하다.”
  “그래! 없으니깐 속이 다 시원해?”
  “왜 자꾸 짜증을 내고 그래?”
  
  아내가 싫었다. 아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암컷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다 싫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맘이 편치 않았다. 거실에서 끙끙 앓아대는 찬돌을 데려와 안방 침대에 눕혔다.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기력이 없는 찬돌은 숨만 겨우 내쉬고 있었다. 열병에 앓아누운 아이를 달래듯 말없이 찬돌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가야, 나쁜 꿈을 꾼 것 뿐이야. 괜찮으니 어여 자렴.’ 
  
  꿈이었을까. 잠에서 깨워보니 곁에 있던 찬돌이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는 아내의 코고는 소리만 들렸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니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무언가 서 있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우두커니 서있는 찬돌의 뒷모습은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찬돌이 아니었다. 날 것 그대로의 한 마리 짐승이었다. 거실로 나서는 내 인기척에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찬돌, 뭐해?” 불러보았지만 돌아보지도 않는 찬돌이었다. 다른 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찬돌은 창문 너머로 뭔가를 계속 응시하기만 했다. ‘뭐야, 쟤 늑대였어?’ 둥근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던 찬돌은 천천히 고개를 젖히는가 싶더니 뭔가를 왈칵 토해내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였다. 개의 울음도, 늑대의 울음도 아닌 어떤 설움에 가까운 울부짖음이었다. 찬돌은 온몸으로 울었고 울음의 잔해들을 전부 토해냈다. 그 소리에 동네 개들이 모두 따라 짖었고 나도 한 마리 수컷이 되어 그 언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개의 언어도, 사람의 언어도 아닌 수컷만이 들을 수 있는 원시적인 몸부림에 가까웠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분명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좆도 없는 것들아! 니들이 이 고통을 알아? 좆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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