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투구는 손기정 선생이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받게 되어 있었지만, 당시 손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베를린박물관에 50여 년간 보관되어 있었다.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가 유물을 주는 관행은 제2회 파리 올림픽(1900년)부터 실시된 것으로 기원전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약 40㎞를 달려온 병사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된 유물은 ‘헤르메스’의 흉상과 같은 실제 유물이었으며, 이러한 유물 수여는 고대 유물의 유출 방지령이 내려진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다.
1936년에 베를린올림픽 당시에는 그리스의 브라디니(Vradyni) 신문사가 투구를 마라톤 우승자에게 선물로 내놓았던 것인데,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메달 이외에 어떠한 선물도 공식적으로 수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손기정에게 이 투구를 수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손기정은 마라톤 우승자에게 메달 이외에 수여될 부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귀국하였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 출신 우승자의 권리를 대변할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손기정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거나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건의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실은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975년 손기정 선생은 우연히 앨범을 정리하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직후에 일본 임원으로부터 받은 사진 속에 자신이 받아야 할 부상으로 그리스 투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선생은 이 투구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베를린 샤로텐부르그(Charlottenburg)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반환을 추진
하게 되었다.당시 베를린 샤로텐부르그 박물관에 전시된 이 투구의 설명판에는 ‘그리스 코린트 시대의 투구 / 마라톤 승자를 위해 아테네의 브라디니 신문사가 제공한 기념상 /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1936년 / 손기떼이(손기정의 일본어 표기) / 일본 / 2시간 29분 19초’라고 독일어로 명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투구를 반환 받기 위한 노력은 그 후 10여 년간 계속되었다.반환을 위한 노력에는 국내 언론사와 대한올림픽위원회는 물론 투구를 부상으로 내놓은 그리스의 브라디니 신문사와 그리스올림픽위원회가 앞장섰다. 독일올림픽위원회
는 이 기간 동안 절대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고, 대신 복제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으나 손기정 선생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다 1986년 베를린올림픽 개최 5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올림픽위원회에서 마련한 기념행사에서 투구를 손기정 선생에게 헌정하기로 하면서 반환 받게 되었다.
50년 만에 주인의 손에 돌아온 그리스 투구는 비록 외국의 유물이기는 하지만 2천 6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긍지를 높여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부상품이라는 역사적 가치
를 높게 평가하여 1987년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제904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손기정 선생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뜻을 밝히고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도록 국가에 이 투구를 기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