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콘돔을 제작하는 회사로 유명한 일본의 O사. O사는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국내 콘돔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업은 과거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소에 콘돔을 공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 때문에 국내 한 시민단체는 지난 2006년 이 기업을 전범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21일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강정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1934년 공업소를 설립한 O사는 1939년 임시육군동경경리부 지정공장이 된 이후 빠르게 성장 했습니다. 이후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을 앞두고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수품창을 발족하자 O사는 기업 창립자 간 인척 관계를 활용해 군부와 결탁했습니다. 군부와의 결탁으로 O사는 안정적인 수요를 얻을 수 있었고, 군 납품을 하며 번 돈으로 1944년 당시 조선의 경성에 고무공업소를 건설해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생산한 콘돔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무기 등을 수집해 소개하는 사이트인 후지타병기연구소의 관계자는 “실제로 나눔의 집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돌격일번(O사가 태평양 전쟁 당시 생산한 콘돔의 이름)을 사용했고 심지어 보급량이 적어 콘돔 하나를 물에 씻어 계속 썼다고 증언했다”고 밝혔습니다.
강정숙 책임연구원은 "콘돔이 전쟁물자로 가다시피한 상황에서 일본군의 목적에 맞게 독과점 상태로 물자를 제공하고 이익을 얻은 만큼 O사는 전범기업이다. 또한, 이들이 생산한 물자가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밝혔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평일 낮에는 주로 내 옷을 빨거나 삿쿠(콘돔)를 씻었다. 군인들이 쓰고 간 삿쿠를 안팎으로 깨끗이 씻어서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가 다시 사용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연구회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집> 1, 한울, 1993, 114쪽 문필기할머니-
“삿쿠는 우리에게 맡겼다. 그런데 삿쿠가 아주 귀했다. 그래서 한번 쓴 삿쿠를 병에 모아 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 냇가에 가서 빨았다. 비누로 씻어서 햇볕에 말린 다음 하얀 가루로 된 소독제를 뿌려 다시 사용했다. 이 일을 할 때가 제일 싫고 죽고 싶었다.”
-앞책, 235쪽 김복선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