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순두부튀김 작성일 14.11.01 18: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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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기기' 하면, 매끈한 디자인에 하얀 사과 로고를 떠올린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맥의 디자인은 절제미를 살렸지만 불편함이 없도록 했고, 사과 로고는 단순하지만 미학의 상징이 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공적인 디자인의 중심에 있었던 디자이너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애플의 디자인총괄 수석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 (Jonathan Ive)'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혁신의 대표주자로 만들었다면,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을 디자인의 명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연 조너선 아이브가 걸어온 길은 어떠했는지, 그의 디자인 철학은 어떠한지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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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을 디자인 명가로 끌어올린 조너선 아이브. <출처: 위키피디아>

 

디자이너의 자질, 아버지에게 물려받다

조너선 아이브는 1967년 2월 27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이크 존 아이브는 대학에서 은세공을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그는 아들이 디자이너의 잠재 능력을 함양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마이크의 동료 교수인 랠프 태버러에 따르면, 마이크는 아들에게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 구조물은 왜 이곳에 설치됐고, 이 구조물의 디자인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의 대학 작업실에 아들을 데려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만들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재능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의 작품을 유심히 눈여겨보던 사람이 있었다. 런던의 유명 디자인 회사 '로버츠 위버 그룹 (RWC)'의 전무 이사였던 필립 그레이였다. 그는 열여섯 살의 아이브에게 산업 디자인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을 몇 개 추천해주었고, 졸업 후 RWC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연간 약 1500 파운드에 달하는 장학금을 후원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브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국 북부의 뉴캐슬 과학 기술 대학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전공한다.

 

성장기 속 애플과의 인연?

조너선 아이브는 어릴 적부터 제품이 작동되고 부품이 구성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어린 시절 손에 닿는 물건은 모두 분해해 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호기심은 제품 디자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그는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몇 가지 휴대용 전화기를 디자인했다. 물론 당시의 그는 몰랐겠지만, 이러한 과정 역시 아이폰의 디자인에 일부 영향을 끼쳤으리라.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의 제품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시절이다. 그가 처음 접한 애플의 제품은 맥 (MAC)이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컴퓨터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맥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는 이제까지 쓰던 그 어떤 기계보다 맥이 훨씬 사용하기 쉽다는 것을 알았고, 사용자 경험을 반영한 맥의 디자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결국 그는 애플과 인연을 맺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지. 초등학생 때, 조너선 아이브는 학습장애 난독증 진단을 받았는데 추후에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스티브 잡스다.

디자이너로서의 성장과 고뇌

물론, 조너선 아이브가 처음부터 애플에서 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수많은 기업에 러브콜을 받지만, 장학금을 받는 대가로 졸업 후 일하겠다고 약속했던 RWG에 입사한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게 작업을 수행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 여러 개를 직관적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다만, RWG는 외부 컨설팅 회사였다. 컨설팅 회사는 고객의 입맛에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욕구와 충돌했고 그는 좌절감을 느낀다.

향후 조너선 아이브는 RWG를 나와 친하게 지내던 클라이브 그리니어를 찾아간다. 그리니어는 런던의 디자이너 마틴 다비셔와 함께 '탠저린 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여기에 조너선 아이브도 합류했다. 실력이 출중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재능을 알아본 기업들이 앞다퉈 프로젝트를 제시했고, 세 동업자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조너선 아이브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탠저린 디자인도 결국은 디자인 컨설팅 업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회사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답답해했다. 열정을 바쳐 고안한 디자인을 고객사가 일부만 발췌해, 오히려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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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출시된 뉴턴 메시지패드. <출처: 위키피디아>

 

 

1991년, 그는 새로운 기회를 만난다. 바로 애플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 그가 알고 지내던 로버트 브러너는 당시 애플에서 산업 디자인 팀장을 맡고 있었고, 최정예 디자인 팀을 구축해 둔 상태였다. 브러너는 당시 애플의 특별 프로젝트를 함께할 디자인 회사를 물색하고 있었고, 여러 번의 설득 끝에 조너선 아이브를 프로젝트에 참여시킨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1992년 애플에 정식 입사한다. 당시 애플의 수장은 스티브 잡스가 아닌 존 스컬리였다 (존 스컬리는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애플의 CEO였다).

아이브는 애플 입사 후 뉴턴 메시지패드 110, 애플의 20주년 기념 맥 등을 디자인했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산업 디자인 팀을 이끌게 됐다. 하지만 당시 애플은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다. 애플 내부에는 임직원 교체가 일어났고, 1997년 애플의 CEO였던 길버트 아멜리오가 사임했다. 그 대신, 새로운 리더가 등장했다. 바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

1997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로 복귀하고, 애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목표 중 하나는 '애플을 디자인 중심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스티브 잡스는 외부에서 디자인 인재 찾기에 나섰다. 이에 조너선 아이브는 자신과 산업 디자인 팀의 역량을 잡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팀의 역량을 선보이는 책자를 만들었다. 물론 이는 잡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티브 잡스는 정식으로 디자인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에 대한 감각은 뛰어났다. 스티브 잡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인이 겉치장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디자인은 겉모습에 불과한 것이 아닌, 제품의 모든 기능 및 사용자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바로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과도 일치했다. 이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된다.

조너선 아이브가 스티브 잡스를 만나 본격적으로 만든 제품이 아이맥 (1998)이다. 스티브 잡스는 일체형 데스크탑인 아이맥을 개발하기로 하고 아이브는 달걀형 모델을 선보였다. 아이맥은 기존의 여느 컴퓨터와는 달리 반투명 플라스틱 케이스를 적용하고, 부드러운 곡선 디자인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아이맥은 1998년 한 해 동안 80만 대 가량 팔리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애플은 아이맥에 다양한 색상의 모델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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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출시된 아이맥. <출처: 위키피디아>

 

 

두 사람은 각별한 유대 관계를 맺고 제품과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의 주요 전략과 설계를, 조너선 아이브는 제품의 기능과 심미성을 높이는 디자인을 연구했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애플은 10억 달러의 적자를 4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했다. 아이맥에 이어 아이북도 큰 인기를 끌며 애플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애플에 단순함의 미학을 심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최근 우리에게 익숙한 애플의 제품들이다. 그리고 이들 제품의 디자인을 논함에 있어 조너선 아이브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근간이 되기도 했던 아이팟에서 그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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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출시된 오리지널 아이팟. <출처: 위키피디아>

 

 

 

스티브 잡스가 MP3 플레이어를 생각했을 때, 조너선 아이브는 MP3 배터리를 교체하는 사용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에 여느 휴대용 전자기기와는 달리 배터리 공간을 생략했다. 그러자 배터리 덮개와 내부 부품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내벽이 불필요하게 됐고, 좀더 작고 깔끔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아이팟의 색상을 흰색으로 정한 것 역시 조너선 아이브의 의견이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흰색 제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이맥에 화려한 색상을 입혔으니, 이제는 화려한 색상의 대안으로 흰색을 택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오늘날 애플의 제품에는 흰색이 많은데, 여기에는 단순함의 미학을 강조하는 조너선 아이브의 철학이 담겨 있다.

2001년, 애플은 첫 아이팟을 공개한다. 아이팟은 애플의 기술력, 사용자 편의를 지향하는 철학, 단순한 디자인을 결합한 산물이다. 2002년 7월 미국 산업 디자이너 협회는 올해의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으로 오리지널 아이팟을 선정하고, 애플과 조너선 아이브에게 디자인 업계 최고의 영예인 IDEA 금상을 수여한다.

여전한 애플의 지휘자

아이팟에 반영된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은 신제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다. 사용자 편의를 위한 단순함, 그리고 이를 통한 절제미는 아이폰, 아이패드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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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WWDC 2014. <출처: IT동아>

 

 

비록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조너선 아이브는 여전히 애플에서 산업 디자인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현재 그는 회사 전반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며, 애플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편, 조너선 아이브는 디자인 및 기업 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2등급 훈장 (KBE)을 받는다. 이는 기사단 서열 2위를 의미하며 기사 작위에 해당한다. 2005년에는 대영 제국 3등급 훈장 (CBE)를 받았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철학

조너선 아이브는 디자인을 고민할 때 물리적 측면보다는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한다. 그는 탠저린 디자인에서 근무할 때도 제품에 깃든 스토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프로젝트를 토의했다. 여기서 스토리란,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경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품의 용도와 취지에 적합한 디자인을 고안하고, 그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들이 편의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디자인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디자인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사용자가 제품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흔히 애플 디자인의 특징으로 단순함을 꼽는데, 이는 사용자가 디자인을 의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즉, 조너선 아이브에게 있어 디자인이란 외적인 미학보다는 철학에 가깝다. 사용자가 어떻게 이 제품을 사용하고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는 것은, 디자인이 곧 인간을 중심으로 향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의 디자인 철학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디자인이 디자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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