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렸던1997년,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어,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위대한 스승,
정신적 멘토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보여주었던 로빈 윌리엄스. 그의 영화인생 28번째 작품.
유년 시절, 가정에서 학대당한 청년 윌 헌팅.
상처를 간직한 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숀 맥과이어 교수의 아름다운 감동 스토리.
오늘은 영화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영화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 대학교의
맥레넌 물리 연구소에서 촬영되었다.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벤 애플랙과 맷 데이먼.
그들은 실제로 오래된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함께 영화의 각본을 쓰며
이 영화로 헐리웃에 데뷔했다.
맷 데이먼은 친구 벤 애플랙과 함께 데뷔작인
'굿 윌 헌팅'으로 1998년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무려 각본상을 수상하였고, 골든 글로브에서도
각본상을 거머쥐며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각본은 주연 맷 데이먼과 조연 벤 애플렉이 썼지만,
감독을 맡았던 구스 반 산트는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오락실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이에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은 강하게 항의했는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은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불만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촬영이 시작되고 그 장면을 찍고 난 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사망씬이 매우 끔찍한 시나리오라는 걸 느껴 이 장면을 없앴다.
미니 드라이버가 맡았던 '스카일라'라는 캐릭터.
이는 맷 데이먼의 당시 실제 여자친구의 이름.
영화에서 윌 헌팅의 악동친구들의 연기는
거의 모두 즉흥적으로 촬영된 것인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어쨌든 재밌고, 좋기만 하면 된다며
형제였던 벤 애플렉과 케이시 애플렉에게 촬영 내내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감독의 이러한 주문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악동들의 매우 사실적인 연기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이제 간략한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美 남부의 보스턴에 사는 윌 헌팅은 천재 수준의 기억력과 수리능력을 가진 청년이지만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MIT 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윌 헌팅과 숀 교수의 우연과도 같은 첫 만남은 윌 헌팅이 복도를 청소하던 중,
칠판에 적혀있는 공개 수학문제를 그 자리에서 외우고 집에 돌아와 거울앞에서 풀어낸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윌 헌팅 역의 맷 데이먼은 1988년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해 영어영문학을 공부하였지만,
졸업을 하지 못하고 중퇴하였다.
숀 맥과이어 교수가 윌 헌팅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무실 신.
숀이 죽은 아내에 대한 추억과 아내의 방귀 장난을 이야기한 장면은 로빈 윌리엄스의 애드립이었다.
맷 데이먼은 그 자리에서 폭소를 하고 말았다.
만약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흔들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카메라맨의 웃음으로 인한 흔들림이었다.
굿 윌 헌팅은 맷 데이먼의 영화 인생에 있어
최고의 작품이라고 자부하는 작품.
로빈 윌리엄스가 굿 윌 헌팅으로
'아미스타드'의 안쏘니 홉킨스를 누르고
1998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순간,
로빈이 말했던 수상 소감.
"제가 독일에서 유명해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 독일에서 그의 목소리를 더빙했던 피어 아구스틴스키에게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이 영화의 33분 08초에
로빈 윌리엄스가 강단에 서서 등장하는 첫 장면.
그의 위에 적혀있던 문구 'Susser 1969'
1969년 레드우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美 줄리어드에 입학해 연기를 배웠던 로빈.
그가 처음으로 했던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인생의 첫 연극이었던 로빈 윌리엄스.
그런 로빈에게 크나 큰 존재로 다가왔던
당시 감독의 이름이 바로 'Harvey Susser'
로빈 윌리엄스는 구스 반 산트 감독에게 요청해
영화에서 자신이 등장한 첫 장면에서
스승의 이름을 적어 놓고 등장했다.
로빈 윌리엄스가 'Susser 1969'에 담았던 뜻.
"하비 선생님, 이걸 보십시오.
제가 이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2014년 8월 11일. 경찰과 응급대원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로빈 윌리엄스는 세상을 떠난 후였다.
하루가 지나, 자살로 판명된 그의 사인.
맷 데이먼의 2014년 8월 인터뷰.
"그의 죽음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를 마치 아는 사람처럼, 삶의 일부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밴 애플렉과 나는 로빈에게 모든 신세를 졌다.
그가 굿 윌 헌팅에 출연해준 것은 내 인생의 빚이다."
"로빈은 동료들이 지쳐있을 때면 모든 작업을 멈춘 뒤,
머릿 속에서 막 생각해 낸 스탠드업 코미디를 우리에게 20분 간 보여줬다."
"그리고 나면 우리 모두는
'좋아, 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말하며
촬영을 다시 시작하곤 했다."
1998년 제 70회 美 아카데미 어워즈.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로빈 윌리암스를
부둥켜 안고 축하해주는 벤 애플랙과 맷 데이먼.
생애 첫 각본상을 수상한 두 청년과
로빈 윌리암스가 기뻐하는 순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故 로빈 윌리엄스를 향한 추도문.
"로빈 윌리엄스는 공군사병이자, 지니였고, 보모, 대통령, 교수, 소란스런 피터팬이었으며, 그 밖에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삶에 이방인으로서 찾아왔으나 인간 정신의 모든 면에 감동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웃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울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수한 재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
해외 주둔한 군대에서부터 길거리의 소외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아낌없이 선사하였습니다."
"저희 오바마 가족은 로빈의 유가족, 그의 친구들, 그리고 로빈 윌리엄스 덕분에
자신의 목소리와 노래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보스턴 공원의 벤치.
이곳은 떠나간 배우를 위한
꽃다발과 편지로 가득해졌고,
로빈 윌리엄스를 향한 미국 전역의
추모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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