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계급 단순화' 논란..병장 없애면 군대 좋아질까?
“병사 계급을 단순화한다고 해서 병영부조리가 해결될까요? 그 생각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잘못된 접근입니다. 병사들은 계급장을 새로 달 때 제대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계급장을 바꿔 달때마다 위안을 받고 마지막까지 견뎌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작은 행복마저 빼앗아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육군 이모(23) 상병)
지난해부터 임 병장, 윤 일병 사건 등 군부대 내 병영 부조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자 제기된 대책 중 하나가 병사 계급체계 단순화 방안이다. 지난해 12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는 병사 간 서열화에 따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병사 계급체계를 단순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軍 이등병·병장 없애 병영내 부조리 개선
병영혁신위 권고 이전 병사 계급체계 단순화 논란에 불을 붙인 곳은 육군이다. 육군은 지난해 10월 ‘이등병(훈련병)-일병-상병 3계급을 기본으로 한 계급체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신병훈련소를 마치면 바로 일병 계급을 부여해 ‘이등병 괴롭히기’를 원천 차단하고 평가가 우수한 병사만 병장을 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일병-상병’ 2계급 체계, ‘일병-상병-병장’의 3계급 체계 등 다양한 계급 단순화 방안들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병사의 숙련도에 따라 계급을 부여하자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제시되기도 했다.
우리 군은 61년 전인 1954년 현재의 4개 병사 계급 체계를 도입했다. 이 때 처음 전역 제도가 시행됐고, 복무기간이 36개월로 정해졌다. 복무기간이 길다보니 계급을 4단계로 나눈 것이다. 그 이전에는 병사는 2개 계급뿐이었다. 1946년 1월 국방경비대 창설 당시 병사 계급은 이등병사와 일등병사 두 계급만 있었다. 같은 해 12월 이등병, 일등병으로 명칭만 바뀌었다.
계급 단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 복무기간이 36개월이던 시절 만들어진 계급제도를 복무기간이 크게 단축된 현재에도 유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육군 기준 최초 36개월이던 복무기간은 1957년 30개월로 준 뒤 1993년 26개월로 단축됐다. 다시 10년 뒤인 2003년에는 24개월로, 현재는 2010년 정해진 21개월이다.
그러나 병사 계급 단순화의 당사자인 장병들은 부정적이다. 계급을 단순화하면 병영부조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현장을 모르는 간부들의 ‘탁상공론’이라는 것이다. 계급을 단순화한다고 해서 병영내 서열문화가 사라질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모윤석(22·가명) 상병은 “계급 단계를 줄이든 늘리든 병사 사이에는 호봉 개념이 널리 퍼져 있어서 나름의 상하관계를 두고 있다”며 “계급체계 단순화보다는 현재 각 부대별로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계급별 등 천차만별로 적용 중인 병사 동기제도를 합리적인 기간으로 통일해 병사들의 고립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병장 달았다고 놀고 먹는 꼴 못 본다?”
군 당국이 병사 계급 단순화 방안을 꺼내든 데는 병영내 부조리 타파라는 대외 명분외에 또다른 속셈이 숨어 있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소위 ‘짬밥’이 쌓여 숙련도 또한 높아지지만 오히려 활용도는 떨어진다. TV드라마, 개그프로, 영화 등에 등장하는 말년병장을 생각하면 된다. 복무기간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단축됐음에도 병장 진급만 하면 ‘말년에 무슨 작업이고 훈련이냐’를 외치며 열외를 당연시 하는 풍토를 더이상 못봐주겠다는 것이다.
병장 계급을 없애 군 병력의 13%를 차지하는 병장들이 생활관에서 TV 리모콘을 들고 제대날짜를 세는 대신 작업장과 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도록 함으로서 병력자원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은 “병사 계급체계 단순화는 병영부조리 근절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 병력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군이 고민 중인 내용”이라며 “다만 계급을 3단계로 줄였을 때 병사 봉급으로 지출되는 예산이 늘어날 수 있어 이를 확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