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독립전쟁(1775 ~ 1783)에서 승리한 후, 명실상부 독립국으로써 세계에 미국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천조국 이미지와는 달리, 독립 직후였던 18세기 말의 미국은 대단히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국가였습니다.
그랬던 미국이 이후,
어떻게 그리도 급격한 성장을 할 수 있었으며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1783년 9월 3일,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이제 막 세계사에 등장한 신생국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었습니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새로운 국가에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당시 '콩가루 집안'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도 없었으며, 13개의 주가 각기 독립적으로 각 주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모양새였죠
이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각 주는 서로 다른 법을 자체적으로 만들었고, 다른 화폐를 쓰며 관세가 따로 존재하여 교역하기도 힘들었죠.(한 나라 안에 화폐가 14개라능~)
이런 콩가루 집안의 모양새는 무려 11년이나 지속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독립을 했지만, 11년 동안이나 대통령이 없는 나라였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13개의 주 대표들은 1787년, 드디어 필라델피아에서 대륙 회의를 갖습니다.
그리고 한 계절을 투자하며 장기간 회의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미국 연방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헌법은 문제가 많았죠.
13개의 주들은 미국이 독립을 하는데 있어, 자신들의 주가 더 큰 공로를 세웠으니 더 많은 '국가 권한'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이 연방 헌법의 내용을 보면 꽤나 코미디입니다. 일단, 새 정부를 구성하는 의회의 '의석 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인구가 많은 주 대표들은 의석을 '인구에 비례'해 주자는 주장을 했고, 반면 인구가 적은 주 대표들은
이 주장을 거절했죠. 논란 끝에 대책안이 만들어집니다.
코네티컷(중립) 주 대표 曰
: "님들! 싸우지 마셈! 의회를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고, 상원은 각 주마다 대표 2명을 배정하고 하원은 인구에 비례하여 넣읍시다!"
이 절충안은 결국 채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죠.(여기서부터 코미디)
바로 인구를 셀 때 '어떻게 세는가?'에 대한, 북부와 남부의 의견이 또 충돌한 것입니다. 당시 남부는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북부는 반대했는데요.
남부 대표들은 희한한 주장을 펼칩니다. 남부는 지들이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노예들을 계속 존속시키면서, 정작 인구에 비례하여 의석 수를 결정할 때는 '노예들의 인구'를 포함시키자고 주장하죠
그러니까, 남부는 노예를 계속 무시하길 원하면서도 인구 계산할 때는 노예 인구를 넣어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주장을 펼쳤던 거죠.
당연히 북부인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어이없는 절충안이 만들어졌죠. 노예 인구를 넣되, 노예 1명을 '0.6명'으로 계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부 대표들은 이 기묘한 절충안에 사인을 합니다. 그 이유는, 노예 제도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었기 때문이죠.(근데 사라지기는커녕, 이로 인해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어쨌든, 당시 미국 대표들이 만든 미국 헌법은 코미디 같은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혁명적'인 법이었습니다.
헌법은 미국 연방들이 각각 지정한 법보다 위에 존재했으며, 정부를 3부(입법, 사법, 행정부)로 나눴습니다. 또한, 각 부들은 서로 견제하여 어느 한쪽에 권력이 치우쳐지는 것을 막았죠.
당시 만들어진 미국 헌법은 미국인들에게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재 미국인들의 이념과 상징이 되었죠
그렇다면, 독립 직후 미국의 경제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최악'이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던 대영제국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었으나,
독립 후, 영국과 갈라서면서 미국의 경제는 폭망하죠. 일례로, 1774년부터 1790년까지 미국의 경제 규모는 28%나 감소했는데요.
그 원인은 독립전쟁 기간에 과도한 재정이 투입되었고, 영국과의 교역이 완전히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 내 거주하던 유능한 인력의 다수가 본국(영국)으로 떠나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죠.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와 같은 대도시에서 제대로 된 '도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경제 침체의 원인이었죠
독립 직후, 미국 시민들 曰
: "뭐냐고 이게!! 독립했는데 왜 우리는 더 가난해졌지?!!"
이런 총체적 위기 속에서 헌법이 비준되었고, 미국 시민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를 점점 갈망하게 되죠
그 타깃은 '조지 워싱턴'이었습니다. 그는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으로서, 미국의 독립을 이끈 위대한 전쟁 영웅이었죠
하지만 당시 조지 워싱턴은 전쟁이 끝난 뒤 모든 현직에서 물러나서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내려 했습니다
조지 워싱턴 曰
: "뭐? 나보고 대통령을 하라고? 헐... 미안한데 난 그냥 농사나 지으면서 살게. 제발 날 찾지마!"
미국인들 曰
: "오~ 마이 갓! 이러지 마셈! 당신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깐 무조건 하셈! 꼭꼭꼭!!"
이렇게 조지 워싱턴은 졸지에 미국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미국의 첫 선거제도는 매우 기묘했는데요.
이 선거제도가 명시되어 있는 미국 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평범한 미국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 후보의 출신지와 다른 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그 후보를 잘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즉, 미국 내 모든 유권자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는 할 수 있지만,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의석 수와 동일한 숫자의 선거인단이 뽑히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출 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죠.
마침내, 1789년에는 선거인단 만장일치로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뽑혔습니다. 미국 역사상 만장일치 선출은 이 때가 유일했죠
여담으로, 최근 2000년에는 전체 유권자 표를 더 많이 얻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대통령 선거에 패한 일이 있었는데요. 민주당의 앨 고어가 공화당의 조지 부시에게 패한 일이 그것이죠...!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에 있습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었던 시점에는 백악관은 커녕, 워싱턴 DC라는 도시 자체도 없었죠.
1790년, 조지 워싱턴은 수도를 필라델피아로 옮깁니다. 그러나, 곧 미국 의회는 새로운 결단을 내립니다
미국 의회 曰
: "음..보자 보자..! 모름지기 나라의 수도는 항구가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해.. 어디가 좋을까나~~~?"
이러한 고민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1790년, 미국 영토의 정중앙은 지금과는 달리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 주의 중간 지점'였는데요.
미국 의회는 이 곳을 적합한 수도라 여기고, 이 곳에 '컬럼비아 특별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도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새롭게 건설될 도시의 이름은 조지 워싱턴이 서거한 직후 그의 이름을 따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로 바뀝니다. 이곳이 지금의 '워싱턴 DC'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