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명체의 발원지
우리가 딛고 있는 육지보다 훨씬 더 광활한 '바다'
우리가 바다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서 발원되었으니까요.
그러나 평온해 보이는 바다 풍경과는 달리, 바닷속 세상은 아직 인간에게 그 비밀을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심해'라고 불리는 깊은 바다는, 우주만큼이나 인류가 정복해야 할 난제로 남아있습니다. 인류는 우주를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얼마나 바다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천문학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지구로부터 약 130억 광년이나 떨어진 '천체'들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화성이나 금성은 일반 망원경으로도 어느 정도 선명한 관측이 가능한 수준이죠.
그러나 바닷속 세상은 아무리 깊어 봐야 '약 11km'이지만, 아직도 인류는 온전히 심해를 관측하거나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심해'란 대체 어떤 곳일까요?
심해에 대한 뚜렷한 정의는 없지만, 흔히 수심이 200미터가 넘는 깊은 바다를 '심해(abyss)'라 부르곤 하죠.
현재까지 추측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태평양 서쪽에 위치한 '마리아나 해구'인데, 최고 수심은 약 11,000미터에 이르죠.
이 정도 수심이면, 63빌딩(264미터)을 일렬로 쌓아도 41개가 들어갈 수 있는 깊이입니다.
그리고 바닷속은 보통 10미터 당 1기압씩 수압이 상승합니다. 따라서 수심이 11,000미터인 마리아나 해구의 수압은 약 1,100 정도 되는 셈입니다.
1,100기압은 대략 계산해서, 손가락 끝에 무려 110톤의 힘이 가해지는 것과 같아요. 예컨대, 손톱에 100톤 급 화물선을 올려놓는 정도의 가히 살인적인 압력이죠.
그러니 이러한 잔인할 정도의 환경을 직접 탐사한다는 것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압이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바닷속을 탐사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일단 수심 10미터의 수압은 지표면의 2배인데, 수면 밖으로 스노클을 연결해도 수압으로 인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수심 150미터에 이르면,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전문 다이버도 버티기 힘들 만큼의 두통과 근육 경련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수심 318미터는,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잠수한 깊이죠.(남아공의 다이버인 누노 곰즈가 세운 2005년 기록)
수심 1,000미터가 되면, 인간은 커녕 군사용 잠수함도 들어갈 수가 없고 햇빛은 완전히 차단됩니다. 참고로 2,500미터는 향유 고래가 잠수할 수 있는 수심이며 3,784미터는 타이타닉호의 잔해가 발견된 수심이죠.
<수심에 따른 수온 변화>
: 수심 1,000미터까지 급변하지만, 심해로 갈수록 수온 변동값이 적다.
이 정도의 심해는 분명 인간이 놀러 가기엔 부적합한 장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바닷속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까요?
인류는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로, 바다 위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렇다 할 잠수복도 없었으니 바닷속은 미지의 세계였죠.
16세기에는 흔히, 잠수종(다이빙 벨)이라 불리는 잠수 장치가 개발되어 얕은 바다나 호수를 탐사할 수 있었어요.
그 후, 몇 백 년 동안 인류의 잠수 기술 진보는 미비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 획기적인 잠수정이 등장합니다.
1934년, 미국의 발명가였던 윌리엄 비브는 잠수정 '배시스피어'를 만들어, 버뮤다 앞바다에서 923미터 잠수에 성공하죠.
그러나 이 정도의 잠수 기술로는 진정한 심해를 탐사할 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심해 탐사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됩니다.
역시 최종 목표는 11km의 깊이의 마리아나 해구 탐사였어요. 그런 측면에서, 1960년 심해 탐사는 매우 성공적이었죠.
1960년 2월 23일, 미국 해군 소속인 윌쉬와 피커드는 심해 잠수정인 '트리에스테(Triestie)'를 타고 마리아나 해구(1만 916미터)를 잠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이 기록은 몇 십 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한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에 의해 경신되죠. 그는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마리아나 해구 중에서도 가장 깊다는 비티아즈 해연(11,033미터)을 단독으로 잠수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그는 이미 전문가 수준의 해양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 속에도 들어갔는데요.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이는 '탐사'가 아닌 잠수 기록이죠.
심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단지 깊이 잠수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 연구와 환경, 채집 등의 포괄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심해 탐사의 시초는, 1964년에 미국 해양연구소에서 만든 '앨빈 호'입니다. 앨빈호는 3인승 유인 잠수정인데, 대서양에 침몰한 타이타닉 잔해를 발견하는 데도 사용되었죠.
1980년대에는 6,000미터 급의 심해를 탐사할 수 있는 '심해 탐사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대표적인 심해 탐사 선진국은 '일본, 미국, 프랑스, 러시아' 정도인데요.
1985년에 일본과 프랑스는 공동으로, 일본 주변의 심해(3,000 ~ 6,000미터)를 탐사하겠다는 'KAIKO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총 27회를 잠항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일본 해양연구소(JAMSTEC)가 '신카이 6500'을 개발하여 1,300회 이상 잠항하면서 심해 탐사의 절정기를 이끌죠.
신카이 6500은 일본 주변의 심해 뿐 아니라, 대서양과 동태평양의 깊은 심해를 탐사하면서 수많은 연구 성과를 올립니다.
<신카이 6500이 포착한 희귀 사진>
: 수심 2450미터, 블랙 스모커
(해저의 퇴적물에서 분출하는 열수가 침전물을 내뿜어서 검은 연기처럼 보이는 것)
<신카이 6500이 포착한 희귀 사진>
: 블랙 스모커 주변의 침니에서 발견된 심해 새우
<신카이 6500이 포착한 희귀 사진>
: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진원 해역에서 발견된 균열
<지진 전에 촬영된 진원 해역 모습>
: 지진 전의 해저는 퇴적물로 덮이고 균열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미잘류도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1995년, 마침내 인류는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하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적 역시, 일본에 의해 이루어졌는데요.
일본의 1만 미터급 심해 탐사선 '가이코(KAIKO)'는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10,911미터)을 탐사하여, 인류 최초로 지구의 가장 깊은 바닷속의 풍경 사진을 얻었습니다.
<가이코가 찍은 마리아나 화구의 모습>
언급했다시피, 수심 11,000미터의 수압은 1,100기압입니다. 말 그대로 '지옥'인데요. 가이코는 이러한 엄청난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획기적인 장치를 부착한 심해 탐사선이었습니다.
탐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무지막지한 수압과 깊이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나 해구에는 해삼이나 갯지렁이와 같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이코는 2003년 잠항 중에 비클(항해 로봇)을 잃어버려, 현재는 '가이코 7000 Ⅱ'가 운용되고 있죠.
여담으로, 일본 해양 연구소에서는 특이한 심해 실험을 했는데요. 다양한 실험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500미터 수심에 있는 열수 분출공에 날계란을 넣으면 과연 어떻게 될지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한번 추측해보세요)
< 더 알고싶은 분들을 위해 >
먼저, 열수 분출공은 지하의 마그마가 뿜어져 나와 바닷물과 결합하여 '열수'가 나오는 구멍을 말합니다.
그리고 열수 분출공은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유력한 후보지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 곳에서 생명체 탄생의 근원이 되는 메탄과 암모니아 등이 풍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죠.
또한, 열수 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수는 약 400도입니다. 심해의 수온이 약 2도인 것을 보면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죠.
이 열수 분출공에 날계란이 투입되면 어떻게 될까요? 실험은 4개의 계란을 각각 250℃, 200℃, 150℃, 100℃에서 5분 간 가열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수압으로 인해 계란이 금방 깨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250℃에서 가열한 계란은 2분 만에 깨졌으나, 200℃와 150℃인 것은 노른자 부분이 반숙으로 익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00℃인 것은 거의 생계란 그대로였습니다.(위 사진은 실험과 무관)
그리고 이 실험에 사용된 계란을 먹어본 결과, 바닷물 덕분에 맛은 적당히 짭짤했지만 열수 안에 있던 황 성분 냄새가 강하게 배어 맛이 상당히 비호감이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