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신대륙 개척의 승리자

키토모 작성일 15.04.15 13: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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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미국의 첫 시작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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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 ~ 17C, 대항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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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당시, 중세 유럽은 바야흐로 대항해시대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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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강대국(영국,에스파냐,프랑스,네덜란드 등)들은
우수한 항해술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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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이, 이들은 북미 대륙을 나눠갔죠. 사이가 좋았냐구요?
당연히 아니죠. 신대륙 개척은 서로 뺏고 뺏기는 살육의 식민지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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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영국(대영제국)’이었습니다
어떻게 영국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식민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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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톨릭 교회? 개나 줘버려! : 종교의 자유를 찾으러 간 '필그림 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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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플리머스 해안에는 '1620'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커다란 화강암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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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620’이란 숫자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약 400년 전에 미국 땅에 처음으로 정착한 연도를 가리키죠
청교도인들은 왜 고국인 영국을 벗어나,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왔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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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출항하기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영국은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숭배하는 국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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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톨릭교회가 영국 왕실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자, 
한쪽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이 매우 심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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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로마 가톨릭교회를 때려 부수고, 교회의 숭배 방식을 정화(Purify)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청교도(Puritans)’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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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600년대부터 영국에는 개신교가 들어왔습니다.
영국 국왕이 된 제임스 1세는, 개신교와도 조금 다르고 가톨릭과도 다른 ‘영국 성공회’를 채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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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청교도인들에게 재앙과도 같았어요
청교도인들은 끔찍이도 가톨릭교회를 혐오하는데, 영국 성공회는 가톨릭과 유사한 점이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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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제임스 1세는 영국인이라면 무조건!! 영국 성공회를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계속 개기는 청교도인들에게 일침을 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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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1세 曰
: “니들~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영국에 있으려면 성공회를 믿던가, 아니면 영국을 떠라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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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曰
: “이런 ㅇ3rd%&#를 봤나! 캬악 퉤퉤~ 더러워서 내가 떠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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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국의 청교도인들은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1620년이 되자, 청교도인들은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북미 대륙 동부 해안(플리머스)에 상륙합니다
상륙날짜는 12월 21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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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국을 떠나온 청교도들을 가리켜 ‘필그림(Pilgrim, 순례자)’라고 불렀습니다
후일 이들이 상륙한 날짜인 12월 21을 ‘조상의 날(Forefathers Day)’로 지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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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필그림 파더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북미 대륙에 잘 정착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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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은 대부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가져온 농작물들은 북미 대륙 토양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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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부분의 북미 정착민들은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아야 했죠
필그림 파더스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들을 위해 구원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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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습니다. 인디언이라 불리는 이들은
필그림 파더스에게 물고기를 비료로 활용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옥수수 재배하는 법도 알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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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그림 파더스는 원주민들 덕택에, 낯선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1621년 겨울에는 원주민들이 야생 칠면조나 오리, 해산물 등을 필그림 파더스에게 베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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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미국 최대 명절로 손꼽히는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원주민들이 초기 필그림파더스에게 베풀었던 호의에서 유래되었어요
(물론, 미국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이야기란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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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의 도움 덕택에, 필그림 파더스는 뉴잉글랜드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 매사추세츠, 
코너티컷, 로드아일랜드 등의 6개 주)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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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국인 정착민들! : 북미 대륙을 지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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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북미 대륙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이 
영역 다툼을 벌이면서 각자 한자리씩을 꿰차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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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국인들은 네덜란드가 차지했던 ‘뉴암스테르담’ 영토를 빼앗고, 명칭도 ‘뉴욕’으로 바꿨죠


< 미국인들은 왜 ‘양키’라고 불렸을까? >
흔히, 미국인들을 양키라고 부르는데, 양키(Yankee)란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 답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당시 네덜란드인들 중에는 유독 얀 케이스(Jan kees)라는 이름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었고,
양케이(Yankey)라는 네덜란드 해적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죠.
흥미로운 사실은, 결국 양키란 말이 미국인을 가리키는 단어로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양키라고 해도 전혀 화를 내지 않죠. ㅋㅋ
그리고 현재, 미국 내에서는 양키는 북부 지역 사람들, 즉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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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국인 정착민들은 북미 대륙에서 번영을 누립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이런 영국인들을 진심으로 반기고 도와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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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럽인들은 점점 북미 대륙으로 몰려왔고, 원주민들의 땅과 권리를 빼앗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정착민과 원주민들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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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1675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원주민들과 영국인 정착민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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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주민들의 추장이었던 ‘필립 왕’은 더 이상 정착민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는 행위를 두고 볼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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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인 정착촌들을 습격하고 학살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승리는 결국 영국인 정착민들이었죠. 
이들은 결국, 필립 왕을 생포하여 사지를 4방향으로 찢어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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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으로 인해, 기존 원주민들은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몇 만년간 북미 대륙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웬 유럽에서 이방인들이 나타나 자신들을 멸망시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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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장에서도 건국 역사는 ‘흑역사’와 같습니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도 400년 전 있었던 원주민 탄압에 대해서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미국인들이 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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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디언’이라는 명칭도 거의 없어지고,
이를 대신하여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으로 대체된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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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렌치 vs 인디언 전쟁(1755 ~ 57) : 영국, 북미 대륙의 호랑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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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대륙 개척 초기, 영국과 더불어 프랑스도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양국은 정면 충돌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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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의 명칭은 ‘프랑스 vs 인디언 전쟁’ 입니다만, 사실은 프랑스와 영국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사실상, 이 전쟁은 아메리카 대륙을 결국 누가 통째로 가져갈 수 있는지 자웅을 겨루는 자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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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曰
: “야! 프랑스~ 너네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냐? 쳐 발리기 전에 냉큼 북미 대륙에서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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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曰
: “어쭈~ 요새 잘 나간다고 눈에 뵈는게 없구만! 우리에게는 강력한 무기와 원주민들이 있다. 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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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이러했습니다. 당시 대영제국으로 업그레이드된 영국군은 북미 대륙에서도
강력한 군사적 우위를 가져갔지만, 정작 원주민들은 프랑스 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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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원주민들이 프랑스인들을 좋아했다기 보단 영국보다는 프랑스를 덜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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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땅을 빼앗으려 했던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인들은 원주민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배우려고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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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프랑스군은 이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그리고 1763년, 프랑스군은 북미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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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영국은 북미 대륙을 거의 통일했습니다
더 이상, 영국에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없었죠. 적어도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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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영제국의 분열 : 영국의 분열은 곧 미국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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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그러나 이 전쟁을 치르느라 영국의 재정은 거의 빈털터리로 전락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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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이 전쟁을 하면서 영국은 ‘6500만 파운드’를 썼다고 합니다.
이 돈은 오늘날 화폐가치로 수백억에서 수천억 파운드 수준이었죠.(환산하면, 100조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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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재정이 파탄 난 영국 왕실은 
북미 대륙에 있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해서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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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는 타운젠트 법(수입하는 납, 차, 종이 등에도 관세 부과)을 통과시키면서,
식민지 주민들의 돈을 뜯어가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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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주민 曰
: “아니, 여태껏 죽어라 영국을 위해 싸웠는데 고작 세금폭탄이라니? 이런 쳐죽일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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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주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영국 정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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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 曰
: “그래.. 그럼, 너희들 말대로 관세는 매기지 않을게. 근데 마시는 차에 대한 관세는 걷을게.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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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당시 식민지 주민은 매일 물 마시듯이 차를 마셨는데요. 
영국 의회의 대처는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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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입니다.
당시, 차를 가득 실은 영국 배들이 보스턴 항구에 도착했는데, 식민지 주민들이 원주민으로 둔갑하고
난동을 부리면서 총 342개의 차 상자를 바다로 버려버린 사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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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빌미로, 식민지 주민과 영국 정부는 서로 극혐 관계가 되었습니다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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