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이라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존재입니다. 수많은 영화나 만화에서 미이라는 단골 소재이며 하나의 캐릭터로서 보편화되었죠.
각종 온라인 게임에서도 미이라는 ‘언데드’와 같은 이름으로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친숙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재밌게 묘사된 '미이라' 캐릭터에 대하여 흥미를 가졌을 뿐, 그 실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이라가 현재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왜, 어떤 연유로 미이라를 만들었을까요? 지금부터 고대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4000년 전, 고대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나일강의 축복(피라미드 편 참조)으로 고대 이집트는 번성했었죠.
만약 어떤 국가가 몇천 년에 걸쳐 번영을 누린다면, 나라 안의 백성들은 무슨 생각을 갖게 될까요?
삶이 늘 풍요롭고 즐겁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 그 기쁨을 계속 누리고 싶어 하겠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다소 해괴한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영생’에 대한 욕망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행복한 삶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죠. 그래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삶을 얻는 방법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그 결과, 인간이 죽어도 그 시체를 잘 보존할 수만 있다면 사후 세계에서도 행복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에도 살아생전에 먹었던 음식, 사치품 등을 누리길 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하인들까지도 그대로 부릴 수 있기를 바랐죠.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한 몸’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생각은 고대 이집트 문명을 인류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문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무덤을 짓기 위해 수십만 명을 동원해서 피라미드를 축조했고 죽은 사람에게 바치는 신전을 지었으며, 수백 킬로그램의 금으로 관을 만들기도 했죠.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영원한 삶에 대한 메뉴얼과 같습니다.
파라오에서부터 일반인까지, 돈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몸을 미이라로 만들 수 있었죠. 이처럼 영원한 삶에 집착한 문명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고대 이집트가 유일무이합니다.
즉, 미이라는 그들이 유일하게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였죠.
인류가 우연히 불을 발견한 것처럼, 고대 이집트인들도 미이라를 우연하게 발견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집트는 국토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태양열은 그 어떤 나라보다 뜨거웠습니다. 그 사막과 열기는 미이라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죠.
그래서 별다른 처리 없이 사체를 모래 속에 묻어둬도 모래가 습기를 빨아들여, 자연적인 미이라가 만들어졌습니다.
아마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연히 이런 미이라를 발견한 후에, 자신들의 몸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시간이 지날수록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막에 시체를 묻는 대신, 안전하고 정교한 무덤을 만들어 미이라를 그 곳에 안치시켰습니다.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12대 파라오의 무덤은 1922년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 무덤 속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약 3300년 전에 이집트 왕국을 지배했던 투탕카멘의 미이라가 있었습니다.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 무덤을 연구했고 그 결과, 파라오의 무덤은 ‘미이라’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죠.
이처럼 파라오의 무덤은 진화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기자 피라미드’와 같은 엄청난 건축물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기자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다. 어떻게 몇천 년 전의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런 장엄한 건축물을 축조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출처.피키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