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역대급 범죄 실화(스포주의)

키토모 작성일 15.05.06 15:20:20
댓글 21조회 22,301추천 10
143089275276473.jpg

 

 

2b37ac32-5d6f-4b9d-894c-781197e20d9e_20150430213945055.jpg

 

오늘은 1978년,
부산에서 발생했지만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

  8e37c294-2a88-48fe-92b4-7f29a560aed3_20150429180817604.jpg   

 

이 사건은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땅콩 회항 사건’만큼이나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다. 실제로, 1978년은 세계 어린이의 해였지만 오히려 유괴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해였다.

  01c3563f-894a-4289-8063-015cfb39c024_20150430192924113.jpg   

 

그 수많은 유괴 사건들 중 이 사건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관련된 기사들이 도배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역대급 사건 중 하나였다.

  45c69760-fd9e-402c-b188-764acfc6b13b_20150430191620265.jpg   

 

1978년 9월 15일, 부산의 한성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효주가 납치되었다.

  e4875377-5c5c-45fe-9e87-5ec8f2788248_20150428184257317.jpg   

 

당시 효주는 부산에서 규모가 큰 수산업을 운영하던 기업회장의 딸이었고, 9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f99113e9-d7ea-413a-a496-09ec9c3e45a3_20150428212019754.gif   

 

아이가 납치되자, 효주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철학관을 찾아 다녔다. 그때 김중산이라는 도사는 "효주가 살아있다"고 이야기했고, 가족들은 그에게 경찰 수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19d4b45d-5692-44f2-ab43-9f734bc10972_20150428194424074.jpg   

 

김중산 도사는 효주의 사주에는 금과 쇠가 묻어있기에, 이를 씻어낼 수 있는 ‘물’의 기운을 가진 경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541010a2-feaf-4bfa-80d7-285b075e04c6_20150428193433462.jpg   

 

그래서 김중산 도사는 부산 지역 경찰관들의 사주를 보았는데, 오직 ‘공길용 형사’만이 효주를 살릴 수 있는 형사라고 예언했다.

  c49a5820-5c73-4bcc-90ea-f38ce07c3bef_20150429171120644.jpg   

 

그리하여, 김중산 도사와 공길용 형사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효주양 사건 수사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020909f9-2c76-4b2f-a8bb-63a786865357_20150428202159437.jpg   

 

이들의 수사는 경찰 수사에 ‘역술’과 ‘최면술’을 더하는 다소 특이한 방법이었는데, 이것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674cee29-aa71-42d1-939b-b41f590633ee_20150429171757931.jpg   

 

혹자는 왜 납치 사건 수사에 비과학적으로 여겨지는 ‘역술’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2d04b93e-6088-4c98-a54e-62f91c511776_20150429173015527.jpg   

 

하지만 1970년대에는 현재처럼 CCTV 등의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역술이나 최면술은 그 당시에 종종 사용되던 수사 기법이었다.

  467c70d1-8de4-4ac9-803f-80872c6e3d6a_20150429172324233.jpg   

 

한편, 이 사건 수사에 합류하게 된 김중산 도사는 당시 부산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역술가였는데, 그는 합류하자마자 놀라운 예언을 한다.

  cfd3518b-3bcd-4fc3-a7db-6e01d861b968_20150428195010046.jpg   

 

김중산 도사 예언
: “효주를 납치한 범인은 15일 뒤에 첫 연락을 해올 것이며, 33일째 되는 날 아이가 돌아올 것.”

  b3a4c074-d2cc-41f0-bb64-55f4bdc9bb9d_20150429172547114.jpg   

 

범인 검거에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수사 기법은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된 ‘최면술’이었다. 경찰은 납치 당일, 효주와 함께 동승했던 친구에게 최면을 걸어 범인의 차량 번호판을 기억하게 했다.

  0be375b9-b503-4853-94df-ca4308584cd8_20150428202827988.jpg   

 

그 결과, 효주의 친구는 최면을 통해 범인의 차량 번호판 2자리(20XX)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최종 검거했다.

  e800e77b-8b85-4fb9-8c19-973abc821d38_20150428194739062.jpg   

 

그러나 효주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지 178일 만인 1979년 4월 14일, 또 한번의 비극이 일어났다. 효주가 두 번째로 납치된 것이다.

  4ae0b2fd-30dc-4e8f-b4cc-00c66bd5ca34_20150429172812544.JPG   

 

효주는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납치 사건을 두 번이나 겪었다. 김중산 도사와 공길용 형사가 2차 납치 사건에도 참여했고, 이례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범인에게 담화문을 발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afe281c0-3ee7-4b6e-9673-e974528e771b_20150429173554008.jpg   

 

이러한 수사 당국의 노력과 대통령의 담화문으로, 효주는 사건 발생 5일 만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43e57703-3255-49ed-9fc0-00d5c9895614_20150429173931411.jpg   

 

정효주 유괴 사건이 더욱 특별한 점은 이영호, 개구리소년, 이윤상 유괴 사건 등 수많은 미제 납치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중 유일하게 아이가 살아 돌아온 사건이었다.

  b9eeb63c-7604-453b-824f-7cd2a34a1d6e_20150429174821518.jpg   

 

또한 두 번에 걸친 유괴에서 무사 귀환한 사례이자 세계 유괴 범죄 역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54dd7242-75b2-44a6-8302-2fa0e538c72a_20150429175339176.jpg   

 

그리고 죽음의 늪에서 효주를 건져 올린 주역은 바로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였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8f2cb7ed-689e-49b4-9781-1322fa91bc71_20150430201503072.jpg   

 

그 이유는, 보통 유괴 사건의 수사 내용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기사에는 효주의 생환 보도가 대부분이었고 정작 '수사관'들의 활약상은 빛을 보지 못했다.

  4414e962-6009-4957-a4ed-c282a09d389e_20150429175832952.jpg   

 

이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정효주양 유괴 사건’은 27년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최근,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8f163883-261e-4d83-bfcd-032dd471ab4a_20150429175945389.jpg   

 

바로 정효주 유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극비수사>라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 더 기대되는 점은 곽경택 감독이 연출을 맡고, 공길용 형사 역은 배우 ‘김윤석’, 김중산 도사 역은 ‘유해진’이 캐스팅되었다는 것이다.

  e8ffbd28-95a8-4da3-a8ab-f8e34f0af08e_20150429180115136.jpg   

 

여담으로, 국내 10대 역술인으로 선정된 김중산 도사는 아직까지도 부산에 위치한 철학관을 운영하며 도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출처.피키캐스트 

키토모의 최근 게시물

엽기유머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