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역대급 범죄 실화(스포주의)

키토모 작성일 15.05.06 1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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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78년,
부산에서 발생했지만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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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땅콩 회항 사건’만큼이나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다. 실제로, 1978년은 세계 어린이의 해였지만 오히려 유괴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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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많은 유괴 사건들 중 이 사건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관련된 기사들이 도배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역대급 사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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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9월 15일, 부산의 한성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효주가 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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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효주는 부산에서 규모가 큰 수산업을 운영하던 기업회장의 딸이었고, 9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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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납치되자, 효주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철학관을 찾아 다녔다. 그때 김중산이라는 도사는 "효주가 살아있다"고 이야기했고, 가족들은 그에게 경찰 수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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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산 도사는 효주의 사주에는 금과 쇠가 묻어있기에, 이를 씻어낼 수 있는 ‘물’의 기운을 가진 경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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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김중산 도사는 부산 지역 경찰관들의 사주를 보았는데, 오직 ‘공길용 형사’만이 효주를 살릴 수 있는 형사라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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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김중산 도사와 공길용 형사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효주양 사건 수사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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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수사는 경찰 수사에 ‘역술’과 ‘최면술’을 더하는 다소 특이한 방법이었는데, 이것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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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왜 납치 사건 수사에 비과학적으로 여겨지는 ‘역술’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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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70년대에는 현재처럼 CCTV 등의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역술이나 최면술은 그 당시에 종종 사용되던 수사 기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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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사건 수사에 합류하게 된 김중산 도사는 당시 부산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역술가였는데, 그는 합류하자마자 놀라운 예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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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산 도사 예언
: “효주를 납치한 범인은 15일 뒤에 첫 연락을 해올 것이며, 33일째 되는 날 아이가 돌아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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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검거에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수사 기법은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된 ‘최면술’이었다. 경찰은 납치 당일, 효주와 함께 동승했던 친구에게 최면을 걸어 범인의 차량 번호판을 기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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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효주의 친구는 최면을 통해 범인의 차량 번호판 2자리(20XX)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최종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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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효주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지 178일 만인 1979년 4월 14일, 또 한번의 비극이 일어났다. 효주가 두 번째로 납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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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주는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납치 사건을 두 번이나 겪었다. 김중산 도사와 공길용 형사가 2차 납치 사건에도 참여했고, 이례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범인에게 담화문을 발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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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사 당국의 노력과 대통령의 담화문으로, 효주는 사건 발생 5일 만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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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주 유괴 사건이 더욱 특별한 점은 이영호, 개구리소년, 이윤상 유괴 사건 등 수많은 미제 납치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중 유일하게 아이가 살아 돌아온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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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두 번에 걸친 유괴에서 무사 귀환한 사례이자 세계 유괴 범죄 역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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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의 늪에서 효주를 건져 올린 주역은 바로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였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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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보통 유괴 사건의 수사 내용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기사에는 효주의 생환 보도가 대부분이었고 정작 '수사관'들의 활약상은 빛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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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정효주양 유괴 사건’은 27년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최근,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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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정효주 유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극비수사>라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 더 기대되는 점은 곽경택 감독이 연출을 맡고, 공길용 형사 역은 배우 ‘김윤석’, 김중산 도사 역은 ‘유해진’이 캐스팅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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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국내 10대 역술인으로 선정된 김중산 도사는 아직까지도 부산에 위치한 철학관을 운영하며 도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출처.피키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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