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ocutnews.co.kr/news/4052658
당시 일제가 내건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현상금은 100만 원으로 김구 주석의 현상금(60만원) 보다 많았다.
당시 100만 원은 현재 기준으로 200억~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
하지만
약산 김원봉은 북한 정권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남한 역사에서 배제 되어서 훈장하나 없죠..
그러나 왜 월북을 해야 해야했나...
어느 독립운동가는 이렇게 회고했다.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끈질기게 추적해온 왜경이었으나 한번도 붙잡히지 않았던 김원봉 장군이다. 그런데 해방되었다는 조국에서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의 지휘를 받는 친일경찰에게 체포된 것이다. 이른바 좌익이라는 딱지가 붙은 독립투사들이 다 당했듯이 김원봉 또한 인격적 모욕과 함께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김원봉을 붙잡아간 사람은 노덕술이었다. 일제 때 종로경찰서 형사로 있으면서 독립운동가를 붙잡아 악랄한 고문을 하던 악질 친일경찰로, 김원봉 장군이 거느리던 '의열단의 처단 명단'에 올라 있던 자였다. '김원봉이를 반드시 잡아오라'고 특명을 내린 사람은 수도경찰청장인 장택상이다. 노덕술이 김원봉을 묶어 장택상 앞으로 끌고 갔을 때였다. 두둑한 보상금을 받고 일계급 특진까지 할 꿈에 부푼 노덕술은 '하이~'하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뜻밖에 장택상은 소리를 질렀다. '이 바보같은 놈아~ 정중히 모셔오랬지 이렇게 불경스럽게 했나?'라며 송구스럽다는 듯 묶인 것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완전히 패고 어르고 하며 독립운동가를 갖고 노는 모습이다.
수모를 당한 김원봉 장군은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는 남한을 떠날 결심을 굳힌다.
노덕술은 짱공유에서도 많이 봤죠...고문왕
또 한명의 고문왕이 있었으니 그이름은 하판락
일제 경찰로 일하며 사천과 부산의 경찰서에서 근무하였는데, 경상남도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는 일을 맡았다. 일제 강점기 말 신사 참배 강요에 앞장서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을 대거 붙잡아 고문하였고, 1943년 친우회 회원인 여경수(呂敬守)를 잡아들여 숨지게 하고 가담자들을 불구로 만들어 ‘고문귀’, ‘고문왕’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알면 알수록 친일이 많네요...애국가 작곡자도 친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