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스가야리사코 작성일 15.11.02 11: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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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두세 달에 한 번씩 조그만 곳에 컬럼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초에 부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내용을 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요즘 연세드신 분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중 함께 나누면 좋겠다 싶은 내용이 있어 적어봅니다.
Dan Sellenberger 라는 분인데(이름이 어렵죠?) 1940년생이고, MIT를 졸업하고 조지아공대를 거쳐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벤츠를 비롯한 자동차 회사에서 일했던 분입니다.

Q. 젊으셨던 시절의 미국은 어땠나요?
A. 내가 10대였던 1950년대는 2차대전 직후여서 다들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희망이 있던 세대였지.
뭐든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었거든...그래서 이탈리아 등지에서 이민자들이 계속해서 넘어왔다네.
지금은 미국 이민이 힘들지만 그때는 인력이 필요하든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였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들어봤나? 80년대까지 그런 말이 있었지...미국은 희망의 나라였으니까.


Q. 그때는 지금처럼 재화가 풍부한 시대가 아니어서 빈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A. 맞는 말이긴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행크 아론을 혹시 아나?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친구였는데, 그의 소원은 빨리 노인이 되는 것이었어...이유는 단지 포르쉐를 사고 싶어서였지.
그때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는데, 행크는 흑인이지만 명예를 지키려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
홈런왕을 2번밖에 차지하지 못하고도 통산 기록을 가질 정도니 얼마나 성실했겠나?
그는 다른 흑인 선수들과는 다르게 겸손했고, 그래서 흑인 동료들에게 '백인처럼 말하는 녀석'이라는 비난도 받았다고 해.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최고의 스타였지만 그가 어떤 옷, 구두, 자동차, 시계를 이용하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어.
알 필요도 없었지...유명인들은 그런 것들을 나타내고 싶어하지 않았고,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벤츠의 광고까지 거절했어.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하더군.

결국 빈부의 차이가 크지 않게 보였던 이유는 재화의 부족보다는 부자들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야.
80년대까지만 해도 겸손함과 절제는 소중한 가치였지.
나도 60이 넘어서야 겨우 원하는 차를 살 수 있었어...자녀들과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거든.


Q. 예전에 한국에서는 자동차는 부유한 사람들만 갖는 사치품이었는데, 자동차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A. 예전에도 땅이 넓은 미국에서 자동차는 필수품이었어.
싼 가격의 자동차 역시 많았고...그렇지만 고급차도 있었지.
그런데 예전의 고급차들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어.
사실 지금은 폭스바겐, 아우디, 심지어 벤틀리까지 같은 엔진을 쓰지...토요타와 렉서스는 정말 넌센스야.

예전에는 자동차=엔진 이었어..몇 cc, 몇 마력의 엔진인지가 중요했지.
그런데 사실 배기량이나 마력은 자동차의 달리기 성능과 별 관계가 없다고도 할 수 있어.
낮은 마력과 배기량이어도 세팅하기에 따라 큰 만족감을 줄 수 있거든.
그런데 요즘 소비자들은 얼마나 고급스러운가를 보고, 연비를 중요하게 생각해.
높은 수치에 매혹되던 순진한 소비자들이 아니거든.

예전같으면 폭스바겐 페이튼과 벤틀리에 같은 엔진을 사용할 수 없었지.
만약 사용했다면 벤틀리와 아우디의 엔진을 페이튼에서 가져다 쓴다고 광고를 해야 했을거야.
그러나 요즘은 대놓고 같이 개발해 함께 쓴다고 말해.
벤틀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격이니 뒤로하고, 투아렉과 Q7, 카이엔을 보게...사실상 포장만 다른 같은 차야.
그러나 세 차량의 갸격은 $10,000 이상씩 차이가 있어.

이해가 되나?
지금 미국의 가치는 실용성이 아닌 '얼마나 고급스러운가' 로 바뀌어 버렸어.
더 원색적으로 이야기해 볼까?
눈으로 보이는 것에 중독되어서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지.
요즘도 가끔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는데, "기술 개발을 해야지 겉치장만 신경쓰느냐?" 라고 말하면 "더이상 개발할 기술이 없어요." 라는 대답을 해.
사실 맞는 말이야...날아다니는 차를 개발하지 않는 이상, 자동차 자체의 성능 개선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라 할 수 있어.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정유회사의 로비때문에 어려움이 있고, 또 굳이 당장 고연비 엔진을 내놓지 않아도 차는 잘 팔리거든.
자동차 회사에게는 황금기지..기술 개발비는 적게 들고 이익은 크게 남으니까.

그리고 내가 젊었을 때는 10년은 기본이고 20년 된 차를 타는 것이 당연했어.
그런데 요즘은 그런 차들이 '클래식 카', '히스토릭 모델' 등으로 불리지...오래된 차는 오히려 부의 상징이기도 해.
모든 것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어.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하면 다들 그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

Q. 가치관이 변화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A. 대중 매체의 발전에서 우선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인터넷과 티비를 통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노출되니까.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어른들이 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 생각해.
우리의 자녀들 세대까지, 즉 베트남 전쟁 이전 세대는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베트남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 사회에는 불만이 쌓였고, 그 불만을 해소할 방법은 '쾌락'이었지.
뭐든지 화려한 것을 지향하게 되었고, 한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 지향적인 사회로 변해갔어.
미국의 많은 직장에서 왜 1~2주마다 급여를 주는지 아나?
한달치를 주면 다 일주일만에 다 써버리고 3주간은 허덕거리며 살기 때문에 돈을 한꺼번에 쓰지 못하도록 주급을 주는거지.
내가 젊었을 때는 집을 사고 대금을 갚아가면서 저축도 했지만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어.
다들 가난한 시절을 기억하기 싫어했고, 또 열심히 사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한 우리 세대의 잘못이지.



Q.요즘 대중매체가 어떤 식으로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고 보십니까?
A. 요즘의 유명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보여주기 바쁘다네.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이 럭셔리 브랜드를 선전하던가?
그들은 나이키 외에 자신들의 직업과 무관한 것들을 광고하지 않았어.
적어도 그때까지는 직업적 자부심이 있었지.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자네도 위블로 시계를 차고 있군...마이애미 히트 선수들은 전부 위블로의 시계를 차고 나오지.

지금은 마케팅의 시대야.
마케팅이 뭔가? 기업 차원에서 보면 바로 '포장하기' 거든.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의 명예가 있었어.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이 첫번째 과제였지만, 요즘은 어떻게 광고를 할까에 열을 올리고 있지.
기술 개발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나친 광고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
결국 그 돈이 기술개발비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니까.

얼마전 한 정치인이 얼빠진 이야기를 하더군.
남미의 마약상들과 중국의 마피아들이 밀려들어와 소비를 조장하기 때문에 더이상 이민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건 넌센스야...그런 사람들이 과소비를 하긴 하지만, 정작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비싼 물건들로 몸을 휘감고 언론에 등장하는 연예인들, 스포츠 스타들이야.
에스콰이어같은 광고성 잡지들이 쏟아지고, 심지어 기업의 CEO라는 사람들이 그런 잡지에서 비싼 물건을 감고 나오고 있어.
옷을 얼마, 구두는 얼마, 가방은 얼마, 어느 브랜드 등등을 나열하면서...그건 기업인이 아니라 광대야.
기업인은 이미지가 아닌 상품을 팔아야 하거든.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주고 옳은 길로 인도하는 유명인이 점차 줄어드는데다, 그런 사람들은 언론에서 비춰주지 않아 안타까워.
맷 데이먼과 크리스챤 베일을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아주 좋은 친구들이야.
행크 애런의 이야기를 해 줬더니 자신들도 좋은 것들을 좋아하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자제한다는군.
좋은 것들을 마음껏 하려면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줘서 감사하다며 한참 웃었어.
그 친구들이 좋은 것들을 안 하고 살겠나?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그렇지만 그런 겸손한 행동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오히려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보여.
왜냐고? 물건을 계속 팔아야 하기 때문이지 않겠어?

비싼 시계를 손목에 두른채 주먹을 불끈 쥐고 카메라에 들이대는 것은 저속한 행동이야.
베컴의 부인처럼 온갖 색상의 에르메스 백을 가지고 있다고 벽장을 열어 보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것은 혼자, 아니면 친구 몇명이 해도 충분한데 말이야.



Q. 저도 사실 시계와 옷, 구두를 좋아하고, 최근들어 그런 것들에 관계된 인터넷 포럼을 종종 읽고 있습니다. 그런 활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자동차야말로 그런 활동의 시초라 할 수 있지.
내가 젊었을 때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 만나 함께 정보를 나누고 여가를 즐기는 모임이 있었어.
회사에서 주도해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일반인들의 모임에 회사측 스파이를 보내기도 했지...요즘도 스파이들이 많이 있을거야.(마구 웃음)

그런 활동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
혼자만의 취미라 하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만 뭔가를 즐길 수는 없지..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게다가 아내들은 남자의 취미를 싫어하잖아?
친구들과 함께 들어갈 남자만의 동굴(man's cave) 이 필요하지...욕망의 탈출구같은 역할을 하니까.

그런데 인터넷 모임은 정보의 왜곡도 심하고, 우선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기 전에 행동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그리고 예전의 모임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인터넷 공간은 각층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가령 벤틀리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모임이라면, 과거에는 벤틀리 소유자들이 중심이었어.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인터넷 공간에서 아무나 가입할 수 있지.
그러다보니 가질 수 없는 사람들까지 괜한 욕심이 생기게 되고, 자신의 삶에 불만을 가지게 되기 쉽거든...원래 못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 예전에 롤스로이스에 금붙이를 두른 사람들은 무하마드 알리같은 부류, 즉 벼락스타가 된 흑인들밖에 없었어.
못 배우고, 가난에 한이 맺히고, 인종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려 했어.
그런데 요즘은 좋은 집안에서 자란 스탠포드 출신의 백인들까지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좋은 것을 갖는 것까지는 좋아...그러나 잡지에 나와 "내가 어떤 것들을 가졌다" 라고 떠들어대지는 말아야 한다는거야.

올바른 가치를 지향해야 할 언론 역시 그런 행동을 조장하고, 뉴스에서까지 간접광고를 하고 있어.
돈이 곧 명예라 생각하는 건데, 그건 옳지 않아.
살다보면 명예를 위해서는 돈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오거든...그런데 돈이 곧 명예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그런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지.
나도 그런 선택을 한 적이 있고, 지금까지 그 상황을 생각하면 후회되거든.
그런데 다행하게도 나는 한 번밖에 그러지 않았어..그때는 보편적 가치가 있었고, 비난 속에서 배울 수 있었거든.

Q. 젊은 시절에 좋은 것들을 가지고 싶은 욕구는 없으셨나요?
A. 벤츠와 금장 로렉스는 나이먹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어.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젊은이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지.
시대가 변한 만큼 그런 것들을 젊은이가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남이 가졌으니 나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

가지고 싶은 것을 얻는 기쁨만큼이나 원하는 것을 참는 기쁨도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즐거움을 보류할 줄 알면 나이가 들수록 더 큰 기쁨을 얻게 되고 후회할 일도 적어져.
리얼리티 쇼에서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가진 것들을 자랑한다고 해서 그런 행동이 올바른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해.
롬니를 봐...엄청난 부자인 것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자신은 평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
부유층 후원자들 앞에서 비공개로 말한 내용이 공개되어 곤욕을 치루는 것을 보면, 절제와 겸손함이 보편적 정서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참 아이러니해...자신은 많이 가지고 내세우고 싶어하면서 남이 그러면 싫어하잖아?
그래도 어쩌겠나, 그것이 세상 인심인 것을...

나도 젊을 때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
나라고 왜 다르지 않았겠나...그러나 많은 경우에 참아야 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지.
그렇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불필요한 일들도 많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억으로 남는 것도 많이 있었어.
자네도 젊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하지는 말게.
'나이가 들면 해보고 싶은 일'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으니까.



Q. 요즘 세대들은 예전과 확실히 다른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젊은 사람이 좋은 차를 탄다는 것 외에 다른 변화가 있다고 보시나요?
A. 예전에는 똑같은 엔진을 달고 있는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폭스바겐을 샀어.
그런데 지금은 투아렉보다 Q7이 많이 팔리지...렉서스와 토요타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예전에는 신차는 무조건 새로운 엔진을 달고 나왔어야 했어...그런데 요즘은 구형과 같은 엔진을 사용하고 심지어 외관과 내장재까지 비슷해.
'일관성있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원가 절감을 좋게 포장한 판매 전략밖에 안 되거든.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 깊이 생각해 볼 문제야.
차라리 고급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더 좋은 자세라 생각해.
고급 자재들을 사용하고, 편의사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선택여부를 결정하게 하고, 무엇보다 서비스를 강화해야 해.
속임수는 절대 안 되지.

그리고 요즘은 싫증을 너무 잘 내는 것같아.
자동차라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한 물건이어서 어느 정도 타야 자기 것이 되고, 제맛을 느낄 수 있거든.
그런데 2~3년마다 새로운 차를 사는 사람은 차와 함께하는 기쁨을 알 수 없어.
그런 사람은 '자신이 어떤 차를 가지고 있는지' 에 중점을 둘 뿐이야.



Q. 요즘은 자동화가 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도 소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된 것 아닐까요? 생산자의 측면에서 어떻게 보세요?
A. 나는 자동차를 설계하는 사람이지만, 모든 자동차를 고칠 수 있었고, 지금도 복잡한 전자장치들의 용도만 알면 모든 차를 고칠 수 있지.
당연한 일이야, 나는 엔지니어니까.
그런데 요즘 엔지니어들은 그렇지가 않아...만드는 사람 따로, 고치는 사람 따로야.
만드는 사람이 고칠 수 없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요즘은 그렇게 됐어.
모든 것이 자동화되었기 때문에 쉽게 생산하니까 힘들게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아...소수를 제외하고는 자기 파트만 알면 그만이라 생각하지.

예전에는 손으로 직접 톱니를 깎아 만들었는데, 기계는 보조하는 역할이었고 사람이 만들다보니 불량률도 높아 비용이 많이 들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손으로 만들다보면 만드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
스스로 자신의 숙련도를 높이고 싶어하지...그게 바로 장인정신이야.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
컴퓨터를 이용해서 균일한 품질의 부품들을 생산하고 사람은 불량률 관리만 하고 있어.
육체적으로 편해진만큼 생산자로서의 정신은 사라져가고 있어.

시계도 마찬가지야.
예전에는 파텍필립같은 시계는 돈을 줘도 못 구했어..워낙 소량밖에 없으니까. 로렉스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어.
그런데 요즘에는 돈만 주면 누구나 살 수 있어.
좋은 무브먼트를 만든다고 광고를 하고,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광고를 하지...인터넷 홈페이지 자체가 바로 광고야.
그렇지만 대량생산을 할만큼 많은 장인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장인을 평가하는 수준이 낮아진 것이겠지.
잘은 모르지만 자동차 생산과 비슷한 길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시계 회사들도 계속 확장을 하고 있어.
예전에는 좋은 시계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했다면,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좋은 제품을 만들다 보니 돈을 벌게 되는 것' 과 '돈을 벌기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은 달라.
간혹 소량 생산을 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 소량 생산이 마케팅 전략이야.
자동차건 시계에서건 더이상 생산자의 영혼을 느낄 수는 없어..안타까운 일이야.

요즘은 마세라티, 람보르기니까지 SUV를 개발한다지?
돈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야.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어하는 것은 저속한 일이거든.
마세라티 SUV는 직접 본 적이 있는데, 미국의 Jeep에서 생산하고 있어.
지프에서 생산한 마세라티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존중과 자부심을 버린 시장에서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 같군.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과거 롤스로이스같은 몇몇 브랜드들은 개인 차고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를 팔지 않던 시절도 있었어.
혹시 들어봤나? (아뇨...처음 들어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야..자신들이 만든 차를 방치하는 사람에게는 팔 수 없다는 자부심이 있던 때였지.
물론 그런 차를 살 정도면 대부분 차고가 있긴 했지만 말야.



Q. 그러면 현재 가장 가치있는 자동차 브랜드는 뭐라 생각하세요?
A. 아우디야.
아우디가 지금의 위치에 온 것은 10여년밖에 되지 않았어.
좋은 회사이지만 '콰트로밖에 없는' 이미지였지.
그런데 폭스바겐과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다른 독일 회사들이 '저가의 폭스바겐과 엔진과 보디를 공유한다'며 비판을 해댔어.
그렇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지...원가를 절감한 대신 디자인과 내장재를 대폭 개선한 차를 내놓았거든.
폭스바겐과 같은 엔진을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어..성능이 좋았으니까.
게다가 좋은 디자인과 화려한 내장재가 있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어?

이제는 더이상 폭스바겐과의 공유를 문제삼는 사람이 없어.
무의미한 이야기니까...그런 식으로 따지면 벤츠 S클래스가 E,C클래스와 엔진을 공유해서도 안되지..속임수거든.
소비자들은 그런 네거티브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

내가 아우디를 가장 가치있게 보는 것은 솔직함이야.
콰트로에 대해 과대광고를 하지도 않고, 엔진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때도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았어..그냥 열심히 만들어 잘 팔았지.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지도 않고 자신의 길을 갔는데 성공을 한거야.
그런 솔직함은 자신들의 회사에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거라 생각해...생산자의 자존심이 있다는 뜻이지.

내가 계속 강조하지만 기계적 성능이 정점에 달한 지금 자동차에 요구되는 가치는 편안함과 서비스야.
돈을 지불한만큼 만족감을 주려고 최선을 다해야지.
예전에는 서비스를 강화하면 다른 회사에서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어...성능 개선은 하지 않고 전략적인 서비스만 한다면서..
그때는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동급의 차량이라면 성능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거든.

장인정신은 논외로 하고 지금은 완성도와 서비스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아우디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



Q. 시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차고 계신 시계(금장 데이토나)는 언제 사셨어요?
A. 20년쯤 됐을거야. 자식들이 전부 결혼하고 난 다음에 하나 샀어.
젊었을 때부터 좋은 시계를 갖고 싶었는데 못 샀거든.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시계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어..시계를 가진다는 건 진짜 남자가 되었다는 상징이었지.
그런데 베트남전이 한참일 무렵 쿼츠 시계가 나왔고, 자동차에도 시계가 붙어 나오는 시대가 되었어.
어디서나 시계를 볼 수 있게 된거야...그것도 아주 정확한 시계를..
그래서 쿼츠 시계는 대중적인 물건이 되었고, 스위스 시계는 사치품이 되었어.

그 무렵에도 스위스 시계를 차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좋다고 하지 못했어.
정확하고 편한 쿼츠 시계가 있는데 기계식 시계를 찰 명분이 부족했거든.
지금과 달리 남보다 비싼 것을 갖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손목을 쳐들고 자랑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시계에 대한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었고, 은퇴하면 사고 싶은 목록엔 스위스 시계가 있었지.

그런데 요즘은 금으로 된 시계를 젊은이들도 좋아하는 것 같아.
예전엔 젊은 친구들은 금을 안 좋아했는데...비싸서 그런 것도 있지만, 금은 나이든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
얼마 전에도 시계 파는 곳에 가니까 젊은 친구가 금으로 된 시계를 고르고 있더군.
아시아인들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아시안들이 금 좋아하지 않나? (답: 중국인들이 좋아해요)



Q. 가치관을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을까요?
A. 나는 엔지니어지 사회학자가 아니야.
'품위'에 대한 개념이 무너져버린 지금, 다른 사람의 것을 엿보고, 내것을 보여주며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막을 방법을 알진 못해.
그렇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긴 해.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독일로 건너가 일하면서 나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어.
나는 대단한 존재인만큼 좋은 것들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프리카 기차 여행을 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
언젠가 내가 만든 자동로 아프리카의 밀림과 사막을 횡단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거든.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라구.
대자연 앞에서 내 존재는 너무나 작았고,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심지어 내가 설계한 것들 모두가 유치해 보였어.

요즘 사람들은 티비를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간접 경험이라도 하지만 우리 때는 전혀 몰랐거든.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였기 때문에 자연히 겸손해졌지.
거대한 자연은 물론 피라밋, 스핑크스까지...난 피라밋이 그렇게 큰지 상상도 못했어.

젊은이들은 여행을 많이 가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자동차를 살 돈이 있으면 여행을 가는거야.
손에 남는 것은 없겠지만, 정신적으로 큰 성장을 하게 되지...진짜 어른이 될 수 있어.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티비와 인터넷이 세상의 전부라 믿게 된다면 큰 마음을 가질 수 없어.
넓은 세상을 보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첫걸음이라 생각해.

아이가 있나? (네..4살입니다.)
디즈니랜드에만 데려가지 말고 가끔은 록키 마운틴과 그랜드캐년에도 데리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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