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234시절쯤.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던듯 합니다.
뭘 알아서가 아니라 그냥 어른들하는 이야기 듣고 판단하는거 였겠죠.
더 자라면서도 우리나라는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인식이 바뀌게 된것은 뭐니뭐니 해도
88올림픽 이였습니다.
86,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어요.
중학생 이지만 나라가 이러다 망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정도로 대단했어요.
그동안 쌓여져 왔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대기업 소기업 구분없이 엄청났지요.
어진간한 도심 거리는 화염병, 전경, 백골단..
그 사이를 가방메고 매운 코 잡고 집에가곤 했어요.
정부는 방송으로...
"국가 행사인 올림픽만 이라도 잘 치루게 자제하자"는 호소가 먹혔던지 그러던 온국민은 단결해서 성공적인 개최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렸을때라 잘 모르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내용이 웃기더라고요.
머리를 기를 수 있게 해달라..
작업반장의 구타를 없게 해달라.. 뭐 이런것 부터.
간식을 지급해달라..
심지어 월급을 두배로 올려달라..
들고 일어났던 파업은 현장에 나타난 사장의 한마디에 정리되곤 했습니다.
"오케이~ 다 들어줄께~"
어쩌면 그동안 쥐어짜서 부를 일궈가던 사장님은 한발 물러나는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죠.
노동자들은 '어? 이게 아닌데?' 하며 너무 쉽게 요구사항을 들어준 사장님에 왠지 손해보는 마음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ㅎㅎ
쌍팔년도에 군 복무하던 우리형은 또 이런 소리를 했다 합디다.
"사회나가면 월급을 30만원이나 준데.. 우리 곧 부자되겠다."
물론 입대 전까지는 뼈빠지게 일해봐야 15만원 수준 이였으니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습니다.
물가가 오른 부분을 반영 한다고 해도 월급은 급격히 많이 늘었어요.
빡빡하게 살면서 조금 남으면 저축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소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게 눈에 보일 지경이고요.
후진국 이라고.. 못사는 빈국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없어졌고요.
개발도상국, 이런 표현을 많이 듣게 됐습니다.
그러다 내가 전문대를 졸업직전 IMF가 왔습니다. 정신이 없더군요.
집안에서 만원짜리 하나 구경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 죽으라는 법만 있는건 아닌지.. 아직은 젊은 무대책이 대책인 나이였는지 몰라고 잘 버텨 줬네요.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거리 열정도 느낄 수 있었던 행운의 세대라 여깁니다.
어쩌면 우리는 준선진국으로 여기며 오늘을 살고 있는듯 한데요.
청춘의 젊은 세대들의 회자되는 흙수저, 헬조선의 현재가 묘하게 엉켜서 그다지 행복한 시국만은 아닐겁니다.
생각하다보니 저도 역동의 한국사 한복판을 지나 왔군요.
어쩌면 터널을 지나고 있을 청춘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길일지라도 꾿꾿히 지나가 봅시다.
희망의 힘으로 흙수저를 딛고 밀어부치면 곧 청춘의 꽃은 피어날겁니다.
김군, 박군, 최양, 이양 모두 다 잘 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