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 4월 15일에 손원일 제독의 건의로 창설된 대한민국 해군의 전략기동부대이다. 처음에는 철수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장비를 긁어모으고, 해군에서 차출한 약 380여명 정도의 병력 밖에 없었다. 이후 꾸준한 확장을 통해 현재는 2개 사단과 2개 여단, 그리고 마이너스 연대급의 부대가 있으며 병력은 대략 28,000명 정도다.
세계의 해병대 중 2위를 차지한다!!.
병력 숫자로는........
1위와 너무나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순위같아 보이지만, 3~6위와도 큰 차이가 난다.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한 상륙수송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규모이다. 이는 유사시 미 해군의 상륙수송능력에 기대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 해병대는 철저하게 대 북한용으로만 제한된 반쪽짜리 자체 상륙수송능력으로 다 감당해낼수 없는 규모의 전략기동군이다.
- 해병대 창설멤버였던 장교와 부사관들 중 상당수는 일제 시절 일본 육군과 해군 및 만주군에서 일제에 충성하던 황군 친일파들이었다.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과 2대 사령관 김석범, 3대 사령관 김대식 등도 모두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죽이던 임무를 수행하던 간도특설대 출신들이었다 . 이런 영향으로 인해 해병대는 오늘날까지도 각종 용어나 문화에서 왜색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해군이 상선사관 위주로 구성되고, 지상군 출신인 옛 일본군 경력자들은 죄다 해병대로 몰아넣은지라... 물론 육군의 창설 멤버들 중에서도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자들이 있다. 그러나 해병대는 아예 사령관 1, 2, 3대가 간도특설대 출신이었을 정도로 유독 심한 수준.
- 제주 4.3사건
제주 4.3사건때 제주지역 계엄군이었던 해병대도 민간인 학살을 벌였다. 흥미로운 점은, 6.25 당시 해병대에 제주도 출신 지원자가 유독 많았다는 것. 4.3 사건 이후 "빨갱이가 아니다!" 라는걸 증명하기 위해서 지원한 이들도 많다고..
해병 사령부의 진실
조국을 수호해야할 군인으로서 해병들이 자신들의 라이벌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특전사와 사이좋게 손잡고 5.16 쿠데타를 일으킨 과오를 범하였다. 그것도 김포 최전방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현재의 2사단) 병력을 빼돌려서 서울로 진격하게 하였다. 만약 북한이 사전에 정보를 알았거나, 쿠데타 직후 해병대 병력이 김포로 아직 복귀하지 않았을 때 이 기회에 김포쪽으로 남침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실로 큰 일이 날 뻔 했었다. 게다가, 이들은 쿠데타에 대해 상급 기관인 해군본부에 단 한 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으면서도 쿠데타 지휘부에는 자신들이 해군을 완벽하게 설득해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생구라를 치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쿠데타 성공 직후 쿠데타 세력들이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이성호 제독(중장)을 만나 약속된 협조를 요구했다가 내막을 알 리 없던 제독으로부터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반란이라니, 뭐하는 짓거리냐?"는 욕만 들어먹었고, 옆방에서 이를 듣던 육군 영관급 장교들이 "해참이 이제와서 말을 바꾼다. 죽여버리자!"며 권총을 빼들고 난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성호 제독은 상황을 읽은 부관이 그를 잡아끌고 잽싸게 차에 태워 해군본부로 피신시켜 화를 면했고, 이후 해공군만으로는 대세를 바꾸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병대 장군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상관을 죽음에 몰아넣을 뻔한 가히 하극상에 준하는 범죄를, 그것도 일종의 허위보고를 통해 저지른 것. 이 사건 이후, 해군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쿠데타 세력들이 박정희 장군에게 해군을 음해하여 감찰토록 했는데, 감찰 결과 해군이 전군에서 가장 부정이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36]. 그 때문인지, 육군 출신임에도 박정희는 재임 기간 내내 해군 함정이나 부대를 꽤 자주 방문하는 등 해군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고[37], 기어링급 구축함 등을 들여오는 등 해군의 전력도 매우 크게 향상됐다. 단 해군 산하의 해병대는 사령부를 없애고 해군의 참모부로 격하시켜 버렸는데 아무래도 5.16 쿠데타 당시 진상을 안 뒤에 괘씸죄가 걸렸을 수가 있다. 그리고 상급부대인 해군도 규모가 작았는데 그 예하인 주제에 별 4개를 해병대사령관이 달고다니는 모양새도 안좋고 이래저래 상관 팔아먹은 댓가로 해병대를 말아먹은 셈이다.
박정희 와 해병대
김포를 지키던 해병대 병력을 쿠데타를 위해 북한의 남침 위험이 상존하는 요충지인 김포를 거의 비워두고 서울로 진격한 것은 위험천만한 반역행위였으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말대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해병대 장성들은 이후 오히려 승승장구 출세를 하게 된다. 이후 해병대 출신자들의 고위간부 승진은 해병대의 독자적인 용어체계 사용 등 대책없는 병크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 국군의 주력은 육군이었으며 육사 5기생(문재준 당시 제 6군단 포병여단장, 박치옥 당시 제 1공수특전단장(후에 12.12사태때도 주력부대였다), 채명신, 김재춘 등이 있었고 육사 8기생들도 핵심 세력이었다. 후술하듯이 박정희 대통령은 좀 키워줬더니 기어오른다며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는 등[10]실권을 약화시켰고, 박정희가 해병대에 일시적으로 주었던 혜택은 사실상 생색내기 수준의 논공행상에 불과했다.
월남파병이 끝난 후, 역쿠데타를 할 우려가 있는 부대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었다. 이 시기엔 공식적으론 해병대라는 명칭조차 못썼고, '해군해병'이 정식 명칭이었다
그리고 해병대사령관은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7년에 다시 해병대 사령부가 부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웃긴 것은, 많은 해병대 출신들이 해병대사령부를 없앤 대통령이 전두환이라는 잘못된 소문을 퍼트린다는 건데, 실제론 오히려 정반대로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시켜준 게 바로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대체로 안 좋은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 비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므로 되도록이면 전두환 탓을 하고 싶은 것.
해병대 독립.
....은 자체가 병크고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해병은 해군 아니면 육군이 관리한다.원래 해병대라는 개념 자체가 해군에서 분리된 거에다 상륙 함선도 해군이 운용하며, 상륙 작전시에도 해병대가 상륙하기 전 까지는 해군이 지휘한다.
즉, 해군 지원 없이는 상륙작전은 불가능 하다는 액기.근데, 무슨 독립~
전투력.
월남전의 화려한 전과, 마초적인 본능!열악한 근무환경과 악마같은 선임들 사이에서 생존해 제대한 그들은 확실히 강하긴 하다.세계전투력 2 위라는 말은 미해병 다음으로 병력이 많다는 뜻이지 전투력을 논한게 아니다.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들은 전투력은 우수하다는 평이다.대표적인 해병 특수 수색대이며, 메스컴에 나오는 해병대 홍보영상들 속의 빡센 훈련은 거의 다 해병수색대의 훈련 모습들이다. 해병대가 워낙 해병수색대 위주로 홍보를 하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해병대 예비역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단지, 장비면에서 미군의 도움없이 원활한 상륙작전은 힘들다는 것.
그 들의 천적.
육군 헌병도 깽판치는 해병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순찰장교나 부사관이면 더욱이 그렇다만 타군은 잘 안건드리고 해병대의 상급부대인 대한민국 해군 헌병으로 넘긴다. 서울시내에서 깽판치면 근교인 인천광역시의 인천해역방어사령부로 인계해 버리고, 부산 남포동이나 영도 등에서 깽판칠 경우 3함대 부산항만방어전대나 해군작전사령부로 넘긴다. 대한민국 해군의 주둔지인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창원시, 전라남도 목포시,경기도 평택시, 인천광역시, 강원도 동해시, 대전광역시 등에 출타하는 해병대원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다니고 용모 복장도 단정하다. 왜냐하면 상부인 해군 헌병 특히 순찰장교나 군기순찰 부사관 등 간부에게 걸릴 경우 제대로 망신 당하고 욕은 기본인 폭풍 갈굼+ 수병들의 조롱까지 당하는 말 그대로 쪽팔린 꼴을 보기 때문이다. 물론 꺼내주는 행정관이나 장교 등 해병대 간부들에게도 욕 먹고 부대에서 두고두고 영구까임권을 득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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