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 polynomial의 인간, exponential의 인공지능
이십 여 수를 앞서보고 '손해'라 불리는 교환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판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큰 실수'를 뒀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저는 포석과 형세판단에 있어 알파고의 능력을 의심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바둑을 지면서 가장 뼈아픈 것은 대마를 잡혔을 때가 아닙니다. 바둑이 무난히 흘러갔는데, 어느 순간 져 있는 때가 더 아픕니다. 대마를 잡혀서 졌다면 부분의 수읽기에서 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다보니 져있다는 것은 상대가 명백한 한 수 위라는 것입니다. 1국에서 유창혁 9단은 상대가 '실수'를 연발하자 이세돌 9단이 유리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가 계산 후 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2국에서 김성룡 9단은 '패착을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방식은 사람과 분명 다릅니다. 알파고는 정석으로부터 바둑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석 초기 단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손을 빼거나, 5선으로 밀어 상대방의 집을 굳혀주었습니다. 그래서 해설자들은 이세돌 9단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000개가 넘는 CPU를 잘 굴리면 1분 안에 두터움을 계산하는 것이 가능한가 봅니다. 우리가 헤아릴 생각도 하기 전에 알파고는 전체적인 판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경우의 수가 너무나도 복잡해 사람들이 '감'의 영역이라고 치부했던 부분을 알파고는 너무나도 자신있게 행마합니다.
바둑은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게임으로 불립니다. 기술이 발달해도 한동안은 기계가 넘보지 못할 영역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체스에서 딥블루가 인간 챔피언을 이겼을 때, 그것은 하드웨어의 승리였습니다. 인간이 10수 앞을 내다볼 때 12수 앞을 내다볼 수 있게 한 계산력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바둑은 다릅니다. 물론 엄청난 양의 컴퓨터가 동원되기는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하드웨어가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의 승리입니다. 알고리즘의 승리이고 머신러닝의 승리입니다. 이게 너무나도 무서운 점인 것입니다. 알파고는 인간 프로 기사라면 절대 두지 않을 수를 몇 차례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알파고는 인간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보로부터 알파고는 인간의 틀 밖에 있는 방법까지 찾아냈습니다. 인공지능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실패한 이유입니다. 인공지능은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배웁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속도는 인간의 그것과도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이 polynomial하게 발전할 때 인공지능은 exponential하게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이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을 훨씬 빠르게 해치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의력이라고 부르는 부분을 기계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터무니없이 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둑에서 알파고의 승리는, 언론에서 과소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능력 향상 속도에 비해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속도는 우리가 예측보다 빠를 것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것도 인간이다, 하는 시시한 논리로 인간의 이성을 방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SF영화에서나 나오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건 인간이 관리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그런 로봇윤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 이성의 쓸모에 대해 염려해야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인공지능의 윤리? 인공지능이 더 윤리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까?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보다 이는 어쩌면 인간에게 더 큰 자존심의 타격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계산기가 인간보다 빨리 계산하거나, 자동차가 인간보다 빨리 달린다는 것과 비슷하게 취급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닙니다. 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 알고보니 인공지능의 작품이었다면. 탑 저널에 논문을 냈는데 저자가 인공지능이라면. 그 좌절감을 과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그렇게 특별한 줄 알았지?"라고 알파고가 묻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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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이세돌이 마지막게임 이기고 야구빠따 꺼내서 알파고 후드려 패곤 시크하게 퇴장했으면 함. 아무말도 안하는게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