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학살 사건

신들어라 작성일 16.04.13 19: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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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일어나기전 국민보도연맹(정식 명칭은 국민보호선도연맹, 약칭은 보련)은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 과거 좌익에 몸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이다.

 

국민보도연맹은 실제 남로당 세력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공무원들의 건수올리기 실적주의 때문에 가입에 강제수단이 포함되어 있었고 경미한 단순 동조자나 진짜 좌익 경력자가 아닌 사람들이 다수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10대인 중ㆍ고교생도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것이 밝혀짐에 따라 보도연맹 가입은 '공무원들의 실적주의'와 '반 강제적 가입'으로 인해 생겨난 경우가 있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이장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도장을 걷어다가 보도연맹 가입 문서에 한꺼번에 도장을 찍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보도연맹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완전히 전향했다고 판단되면 ‘국민’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하였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요시찰대상'으로 취급하였다. 특히 보도연맹원 등 요시찰인으로 감시대상이 된 사람들은 이승만 정권의 극우 반공주의 하에서 정치?사회적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행사도 빈발하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후, 보도연맹은 공산당의 입장에서 보면 보도연맹은 본래 공산당으로부터 전향한 조직이므로, 명백한 배신자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북한이 남한을 점령할 경우 이들의 배신행위에 대한 처벌이 있으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전쟁이 터진 후 말 그대로 순식간에 서울이 함락당했을 당시에 북한군의 처벌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일부 보도연맹원들이 앞장서서 인민재판과 남한 정부인사 및 군경 패잔병 색출에 나섰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정백. 정백은 공산당 최고참격 간부 출신으로 보도연맹 명예간사장을 맡았던 핵심간부였다. 그러나, 정백 역시 북한군에 의해 '기회주의자의 표본'으로 몰려 인민재판으로 처형당한다. 이를 근거로 오늘날 수꼴들은 '보도연맹은 두말할거없이 위장으로 가입한 좌빨들, 다 때려 죽일수밖에없다'고 변명한다

 

수도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도망간 이승만 대통령은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부역행위에 협조하거나 의용군으로 입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 측에서는 "그 빨갱이 놈들은 역시 배신자였어!!!"를 외치며 아직 확보하고 있는 남부 지방에서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크리를 벌이게 되는데, 여기서 가장 주동적으로 활동한 인물이 숙군 이창룡이다. 이승만이 CIC 특무 헌병대장 김창룡에게 지시하여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지않은 지역'에 있는 보도연맹원들을 잡아 처형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한 미군 소령이 촬영한 사진이다. 보도연맹에 관한 사진은 거의 이 미군 소령이 찍은 사진들이 유일하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에서의 학살은 너무 끔찍하고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엄청났다. 일례를 들어, 부산 경우 금정구 노포동 뒷산에서 수천명이 집단학살 당하고, 부산 전역에서 1만 5천명 이상이 학살당했으며, 경북에서는 대구 가창골 일대에 수천명이 학살당하고, 경산 지역에 코발트 광산에 약 3천 5백여명 모아두고 코발트 광산內에서 집단 학살한 뒤에 시멘트로 아예 콘크리트로 막아 철저히 사건 은폐까지 했다

 

경남 마산, 진해, 통영, 거제 일대에서 총으로 학살한 다음 학살당한 이들 손과 발을 묶어서 바다에다가 수장시켰던일이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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