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이면

악의와비극 작성일 16.07.19 12: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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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의 알려지지 않은 뒷모습

 

 

  

간디를 존경한다.
하지만 그를 신격화하거나 우상으로 섬길 생각은 조금도 없다.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말하려면 그의 장점은 물론 단점도 파악한 후 결정해야 한다. 
그의 단점과 숨겨진 이면까지도 알게 된 후에도 그를 존경할 수 있다면 진정 그를 존경하는 것이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쓴 것이다. 
 
마하트마의 유래

 

 

우리가 마하트마 간디라 칭하는 그 분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이다. 
마하트마는 주지하듯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그를 성자(聖者)의 반열로 추앙하는 후대 사람들이 붙였음직한 이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를 처음 마하트마로 칭한 것은 그 자신이다. 
나중에는 마하트마도 부족해서인지 "진정한 마하트마"라고 자칭했다.
살짝 실망했나?
아직 멀었다.
 
그는 무소유, 절대 자유, 생명사상, 비폭력, 관용, 포용, 한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간디가 처음부터 훌륭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성자로 산 삶은 그다지 길지 않다. 
게다가 그의 사상과 삶은 여느 인간처럼 모순투성이였다.  

간디식 평화주의의 오묘함

그는 인도의 악명높은 카스트 제도에 대해 "서로 조화롭게 살아라"라는 매우 모호하고 수구적인 가르침으로 일관한다. 예컨데 하루 종일 죽도록 노동하고도 품삯을 받지 못해 어린 아들을 굶겨죽이게 된 
노예 신분자가 간디에게 하소연을 할 때도 그는 "조화롭게 살아라"를 반복한다. 
목숨을 걸고 도적질이라도 해서 아들을 살려야겠다고 하면 "차라리 죽어라"라고 한다. 
이것이 그의 비폭력의 이면이다. 
기존의 질서 아래에서 큰 고통이 없는 자들에게는 매우 평화롭게 들리겠지만 착취 당하는 낮은 자들에게 간디는 그저 웃음을 띤 방관자였을 뿐이다. 간디는 귀족 출신이었으며, 대영제국의 변호사임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천민과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사상(불가촉천민 사상)의 소유자였다.
 
간디는 1917년 구자랏의 아흐메다바드에서 신생 노동조합운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이곳은 1870년대부터 면방직과 제조업이 융성했던 곳으로 영국의 맨체스터에 버금갈 정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섬유산업이 절정에 오르면서 아흐메다바드의 경기도 폭등했다. 
그럼에도 아흐메다바드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임금 삭감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들고 일어났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제조업자들은 간디에게 접근했다. 
간디는 제조업자들에게 노동자의 의무와 권리를 명시한 노동조합(Majoor Mahajan Sangh) 
결성을 지원토록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진정한 권리를 위한 갈등과 투쟁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예컨데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는 금지한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 이슬람이거나 힌두 극빈자층에 속하는 직조공과 염색공들의 권리는 
중세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MMS는 종교적·신분적 차별성을 바탕에 깐 동업조합이었지 노동조합이 아니었다 
(한겨레 21 2002년06월19일 )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간디가 죽은 후에도, 인도가 독립한 후에도 해결되지 않아 
만성적 빈곤, 빈부격차, 노동탄압으로 이어진다.

 

 

 

젊은 시절의 간디는 더더욱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보아전쟁, 줄루전쟁, 1차 세계대전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조국" 영국을 위해 참전신청을 제출했다. 
다행히(?) 늑막염으로 실제 참전은 불발.

히틀러가 체코를 침공했을 때, 그리고 유태인을 학살했을 때 
간디는 일관되게 체코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싸우지 말고 자살할 것"을 권고했다.

 

히틀러의 만행이 점차 심해지자 견디다 못한(?) 간디는 히틀러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가 편지의 효과를 묻자 "히틀러는 착한 사람이니 곧 중지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히틀러도 착한 사람이라면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가?  
간디 식의 평화주의가 학살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은 항의편지를 쓰는 것이다.
간디는 가끔 스스로 흥분될 때에는 평화주의를 살짝 포기한듯한 발언도 했다. "인도의 자유를 위해서 백만명이 희생된다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이 그 예.  


그의 순결주의

간디는 순결주의자로도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는 마치 간디가 평생을 독신으로 산 것처럼 알려져있다.
간디는 결혼했고 말년에 들어 순결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조를 실험하고 싶어했다. 
그 방편으로 젊은 처자들을 벌겨벗겨 같이 동침하는 시도를 자주 했다. 자신이 그 여성을 범하는지 안하는지 실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어떻게 지난 밤의 성적 유혹을 극복했는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처자들을 범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자신을 마하트마로 평가하면서. 
모든 남성들이 자신과 같이 순결하기를 바랬다. 그는 굳이 결혼을 한다면 일생 3~4회만 부부관계를 맺을 것을 권했고 (도올 선생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 철학자들의 임무가 부부관계의 이상적 횟수를 규정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 이상의 관계를 맺는 자들은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여성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섭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여성들이 간디를 절대적 우상으로 섬기지 않는 한 인격적 모멸감을 느꼈을 것은 자명하다. 간디 선생은 인정하기 어렵겠
만 여성에게도 인격이라는게 있다.
 
이중적 가족관 

그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할 것을 주문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매몰찼다. 
(사실 대부분의 성자들은 가족을 버리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는 부인을 "소"에 비유하며 (인도적 관습으로는 이 자체가 모욕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로 부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다고 하며 
부인을 멀리했다고 한다. 간디는 고등교육을 받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부인은 물론 모든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부인이 폐렴에 걸리자 현대의학을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부인에게 페니실린 주사조차 
놓지 못하게 하여 결국 부인은 사망했다. 
그러나 부인의 사망 직후 자신이 말라리아에 걸리자 자신은 서둘러 주사를 맞았다. 
나중에 맹장염에 걸렸을 때는 수술도 받았다.
부인의 죽음을 통해 현대의학을 수용하게 된 걸까? 
 
종교적 화해에 대한 이중성

간디는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진리와 구원이 있으니 모두 인정하고 "갈등없이" 평화롭게 살자고 주문한다. 실제로 그는 힌두교적 배경을 타고 났으나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의 통합을 주제로 한 노래도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아들이 이슬람 교도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자 극렬히 반대했다.
반대 사유는 그 여성이 이슬람 교도라는 것과 순결을 부정하고 결혼을 탐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아들은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했고, 간디는 그 아들과 절연한 후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인도의 독립

간디가 주창한 마을자치(그람 스와라즈)의 개념도 황당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것은 일종의 자치권을 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느 지배자를 막론하고 피지배국민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희석시키는 방편으로 자치권이라는 당근을 제시한다. 동시에 완전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에는 가차없는 채찍을 내리친다. 간디는 당근을 택했다.    
 
누가 간디를 우상화하는가? 

1. 당연히 제국주의자들이다.
영국을 위시한 제국주의자들은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 
기존질서에 대한 순응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매우 수월하게하기 때문이다. 
강도와 같은 지배자들에게 돌맹이 하나 던지지 않고, 
그저 자치권이나 얻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제국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인가?
이를 권장하기 위해 영국은 적당히 간디를 탄압하여 마치 간디가 최고의 독립투사인양 부각시키고 
인도인들이 간디를 중심으로 결속하도록 한다. 
간디가 민족지도자로 부각된 후에는 간디만 통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간디와 달리 완전독립을 추구한 네루는 간디의 그늘에 가리게 된다.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이론가들로 하여금 그의 사상을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격상시킨다. 
간디를 서구에 널리 알린 것은 제국주의자들이다.
 
2. 입장을 바꾸어서 

간디의 전 생애를 관장한 사상은 평화나 사랑이라기 보다는 "말썽없는" 삶이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 무엇과도 마찰없이 지내고 싶어했다.
만일 간디가 일제시대의 조선인이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지 말아라
- 내선일체에 협조해라
- 조선의 독립을 꿈꾸되 어떠한 폭력도 행사하지 말아라
- 조선의 독립이란 일본지배 하에서 자치권을 얻는 것을 의미하며, 
   그 정도면 족하다. 
- 조선인은 결혼하지 말 것이며, 아이도 낳지 말아라.
- 아이를 낳더라고 학교는 보내지 말아라.
- 조선의 노동자는 고용주에 성실히 협조해라. 노동쟁의나 파업따위는 생각도 말아라.
- 일본인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면 차라리 자살해라.

누가 이런 주장을 반기겠는가?
두 말 할 나위없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다.
이래도 간디가 존경스러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 간디를 존경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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